독일 대중교통 월 1만2000원에 무제한..혼잡해졌지만 "좋아요"
한시적 '9유로 정기권' 실험
시민 3명 중 1명 이용 '흥행'
높은 대중교통 수요 확인해
한 달에 9유로(약 1만2000원)로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독일에서 두 달째 시행되고 있다. 기존 정기권의 절반 이하 가격으로, 독일 정부가 고유가와 물가 상승에 대응해 6~8월 한시적으로 실시하는 정책이다. 대중교통 이용객이 늘면서 혼잡이 더 심해졌다는 불만도 나오지만, 9유로 정기권(사진)이 지난달 2100만장 팔리는 등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앞서 독일 정부는 지난 5월 고물가 대책을 발표하며 9유로 정기권 운영에 25억유로를 투입한다고 밝혔다. 폴커 비싱 독일 교통부 장관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이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고 탄소중립 목표를 이루는 데 기여하고 있다”며 제도 도입 취지를 설명했다.
9유로 정기권은 도입 전 논란을 빚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대중교통 이용객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정기권이 많이 팔리지 않아 자칫 정부 예산만 쓰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판매량으로는 대성공이었다. 독일운송사업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9유로 정기권은 2100만장이 팔렸다. 기존 정기권 구매자 1200만명까지 합하면 독일인 3명 중 1명이 정기권을 이용한 셈이다.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에 따르면 독일 철도 공기업인 도이체반 이용객은 10% 증가해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이전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효과도 컸다. 도심 교통체증도 크게 개선됐다.
대중교통 혼잡도가 많이 증가해 불편해질 것이라는 우려는 현실화했다. 특히 지하철의 경우 이용객이 늘어난 반면 열차 운행이나 기관사 증원이 이뤄지지 않아 혼잡이 심해졌다. 하지만 불편에도 불구하고 대중교통 이용객은 많이 늘었다. 9유로 정기권이 인플레이션 시대의 방패막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중교통 확대를 주장해 온 사람들은 9유로 정기권의 흥행에 고무돼 있다. 독일 사민당은 2019년 기후위기 대응책으로 ‘연 365유로 정기권’을 제안했다. 하루 1유로씩 한 달에 30유로로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이 정책은 지나치게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데다 대중교통이 혼잡해져 오히려 이용객들이 떨어져나갈 것이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9유로 정기권을 체험하면서 요금이 비싼 정기권 도입 찬성 여론도 높아졌다. 슈피겔이 지난 1일(현지시간)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4%가 연 365유로 정기권 도입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얀 슐루터 튀빙겐대학 연구팀 설문조사에 따르면 독일인들은 더 나은 대중교통 개선을 위해 월 39~79유로를 지불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MDR방송이 전했다.
아돌프 바우어 독일사회협회장은 “9유로 정기권은 지역의 대중교통 수요가 얼마나 큰지 보여줬다”며 “정치는 이제 대중교통과 지역 교통시스템을 개선하고, 모든 사람이 저렴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장기적인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타게스샤우에 말했다.
독일 정부는 9유로 정기권 정책은 기존 계획대로 다음달까지만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요금을 올려서라도 계속 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올라프 숄츠 총리는 4일 ARD 인터뷰에서 “9유로 정기권은 연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정에 참여하는 자민당의 경우 예산상 이유로 연장에 특히 반대하고 있다고 독일 언론들은 전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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