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금속 다량 검출..주민들은 제철소를 바라봤다
농작물도 납 기준 초과.."암 환자 많은 마을로 알려져 속상"
평화롭던 시골 마을에 성분을 알 수 없는 ‘먼지’가 날아들었다. 이 마을의 흙에 자석을 들이대면 까만 쇳가루가 달라 붙는다. 주민들은 기관지염 등 각종 건강 이상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자 마을에서 생산된 농수산물도 외면 받았다. 주민들은 인근 제철소를 의심하고 있지만 수년째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답답하다. 전남 여수시 묘도 온동마을 이야기다.
5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온동마을 주민들의 몸에서 카드뮴 4배, 수은 2배 등 전국 평균보다 높은 수준의 중금속이 검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환경부 소속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해 5월부터 1년간 온동마을 주민 86명(총 197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다. 국립환경과학원은 광양제철소와 여수산단 등의 유해환경오염물질 노출 저감 방안 마련 등을 위해 이번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온동마을 주민들의 몸에서 검출된 생체 카드뮴 농도는 1.71 ㎎/gcr(크레아티닌)으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실시된 전국 단위 조사(0.39mg/gcr)보다 4배 높았다. 카드뮴은 건전지나 페인트 등의 제조에 주로 쓰인다. 공기나 물 등으로 체내에 축적되면 간과 신장 등 장기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석연료 사용이 주요 배출원인 수은 농도도 전국 단위 조사(0.3㎎/gcr)보다 2배나 높은 0.62㎎/gcr으로 나타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민들은 갑상선 자극호르몬 검사에서 7명이 정상 범위를 넘었고, 10명은 암 환자 경과 관찰에 사용되는 암태아성항원 검사에서 정상치를 초과, 정밀 검진이 필요한 것으로 파악됐다.
깻잎 등 마을 농작물에서도 중금속이 검출됐다. 납은 엽채류 허용기준을 초과했으며, 수은과 카드뮴은 허용 기준보다는 낮지만 국내 유통 채소류보다는 높은 수치를 보였다. 환경과학원은 지난달 14일 설명회를 갖고 이런 조사 결과를 주민에게 알리기도 했다.
온동마을 주민들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기관지염 등을 지속적으로 앓아왔고 암으로 숨진 주민이 유독 많다는 점을 들어 중금속과의 연관성을 의심해 왔다. 1987년 마을에서 바다 건너 1.5㎞ 떨어진 곳에 광양제철소가 들어선 이후 이 마을 주민 26명이 원인 모를 암이나 희귀질환으로 숨졌다는 주장도 있다.
국립환경과학원도 대기에 중금속 등이 높다는 점을 근거로 광양제철소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환경과학원 관계자는 “보고서를 통해 (광양제철소의)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추정한 것일 뿐, 직접적인 판단을 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더 많은 조사를 통해 신중히 접근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기를 원한다. 김석준 온동마을 통장은 “우리 마을이 ‘암 등 각종 질환이 많은 곳’으로 알려져 속상하다”며 “어패류나 채소까지도 모두 오염됐다고 전해지면서 주민들이 생업 수단도 잃게 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어 “하루 빨리 해결책을 마련해 주던지 아니면 직접 광양제철소에 따지도록 행정 구역 자체를 여수시에서 광양시로 옮겨 해결책을 빨리 찾았으면 한다는 게 주민들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여수시는 “국립환경과학원과 접촉해 향후 대책 등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조치가 금방 이뤄지면 좋겠지만 환경 요인의 피해 구제가 쉽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신중하게 접근해 방안을 찾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이달 말까지 최종 보고서를 작성해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광양제철소 측은 보고서 내용을 확인한 뒤 대책 마련에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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