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광대들은 왜 이 섬에 왔을까"..경계없는 연대를 꿈꾸는 이들에게
7월 5일부터 1~3층 전시실과 옥외 등.."소수자 삶 주목"
우노 론디노네 27점 구매후 소장품으로 전시 첫 사례
5개 테마공간서 7명 작가..주제 관통하는 작품 전시
웬 사람들이 널부러져 있나 했습니다.
실제 인체 사이즈로 저마다 포즈를 취하고 바닥에 앉거나 혹은 누워 휴식 중인 27명의 광대들이 무덤덤하게 관람객들을 맞이합니다.
화려하고 경쾌한 옷차림과 화장과는 대조적으로 어딘가 지쳐 보이는 이들은 혼자 있을 때 행동을 표현하는 단어를 이름으로 갖고 있습니다.
낮잠, 한숨, 꿈, 방귀, 바라다, 읽다, 옷 입다 등 제각각 ‘고독한’ 시간들을 대표하는 단어로 지칭됩니다.
눈을 감고 뿔뿔이 각자의 ‘섬’으로 흩어졌다, 모여들면 하나의 풍경을 이룹니다.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의 ‘고독한 단어들’(2016)로, 일상의 관계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소수자를 끌어안는 작가의 메시지를 만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더구나 이들 ‘광대들’은 전시를 위해 포도뮤지엄측이 직접 구매하면서 소장작으로 분류돼 있습니다.
전시가 끝나도 상설전으로 이어갈 여지는 생겼지만, 고가의 작품을 사들여 전시에 나선 사례는 국내에서도 드문 경우로 꼽히고 있습니다.
“소수자의 삶·현실 직시”..현지 제작 나서기도
다국적 작가들이 참여한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 기획전이 개막했습니다.
제주 포도뮤지엄이 5일부터 일 년간 전시를 이어갑니다.
최형준 작가의 동명 산문집 제목에서 따온 전시 주제는 ‘디아스포라와 세상의 모든 마이너리티’입니다.
앞서 론디노네와 작품에서 보듯, 작가와 작품에 걸쳐 다양한 이유로 자신에게 주어진 지리적, 정서적 경계를 확대해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있는 존재들에 주목합니다.
이배경, 리나 칼라트(Reena KALLAT), 알프레도&이자벨 아퀼리잔(Alfredo & Isabel AQUILIZAN), 강동주, 정연두, 요코 오노(Yoko ONO), 우고 론디노네 등이 여러나라 작가들이 참여해 미디어아트, 설치, 회화, 영상, 조각 등 다양한 매체 작업들을 선보입니다.
전시를 위해 제주에 머물며 제주 자연과 이야기를 신작에 담은 강동주와 정연주 작가를 비롯해, 알프레도&이자벨 아퀼리잔은 자녀들과 함께 제주를 찾아 노동 집약적인 대형 설치 작업을 직접 진행했습니다.
이배경과 요코 오노 작업은 전시 공간에 맞게 새로 설치돼 감각적 효과를 극대화했고 리나 칼라트의 대표작 ‘짜여진 연대기’, 여기에 우고 론디노네의 ‘고독한 단어들’은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경계의 확장 그리고 ‘말’들의 행진
수없이 많은 백색 육면체들이 일렁이는 인공의 바다 한가운데로 관객을 맞이합니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멀어지는 파도로 ‘경계’라는 개념을 허무는 작가. 수많은 개별 조각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파도처럼 움직이는 장면은 우리의 마음에 확산과 포용의 감각을 일깨웁니다.
실험적인 미디어 설치로 구축한 공감각적 환경과 그 안에 선 관객의 신체를 연결하는 작업을 선보이는 이배경 작가의 ‘머물수 없는 공간’(2022)입니다.
이주노동자 비롯, 공동체 삶 조명
가느다란 전깃줄로 직조한 대형 세계 지도, 리나 칼라트의 ‘짜여진 연대기’(2015)입니다.
마주 보고 있는 ‘디파처보드’와 더불어 공항에 온 듯한 같은 기시감을 일으키는 작품입니다.
작가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주 노동의 경로와 패턴을 추적하고 이 비가시적인 흐름을 색색의 전기선으로 철조망처럼 엮어 보여줍니다.
사람들의 삶이 만든 동선이 국경 위를 넘나들며 세계를 연결하고 지도 위의 스피커에서 그 지역의 소리가 나옵니다.
세계사 속에 가려진 역사와 작은 목소리로서, 또다른 의미의 집합체인 세계지도가 재편됩니다.
필리핀 출신의 부부 작가인 알프레도&이자벨 아퀼리잔의 50x50x50㎝의 정육면체 택배상자 140개를 쌓아올려 만든 지붕없는 집 ‘주소’(2008)입니다.
대형 설치 작품으로, 필리핀 우체국에서 해외로 물건을 보낼 때 세금이 면제되는 일정한 박스 규격을 모았습니다. 필리핀 이주 노동자들이 해외로 떠날 때 보낸 생활용품, 고향에서 가족들이 보내온 소중한 물건들로 가득 찼습니다.
택배 상자 하나하나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으로, 이들이 빼곡히 집결해 커다란 집을 형성하면서 이주민 공동체의 고단한 삶으로 대치됩니다.
제주를 ‘그리다’ 또는 ‘거주하다’..과거와 현재, 교차 제시
제주라는 땅의 기록, 흔적입니다.
‘땅을 딛고 바다를 지나’(2022)를 위해 작가는 제주도의 항구와 포구 44곳을 방문했습니다. 먹지 위에 눌러 기록하는 방식으로, 먹지의 색이 빠져 종이 위로 옮겨지면서 검게 남은 자리가 대칭을 이루는 방식입니다.
제주라는 특수한 땅, 장소와 시간성을 담아내면서 이동과 연결에 대해 추상적인 사유를 이끄는 작품입니다.
강동주 작가는 자신의 신체로 받아들인 풍경, 고정된 것 같지만 미세하게 변화하는 풍경의 흐름을 포착해 기록하는 과정에서 장소가 가진 시간성을 드러냅니다
그렇게 장소의 질감을 눌러 종이에 표현하고 먹지를 이용해 흔적을 옮기는데서, 추상적 이미지와 명암이 서로 자리를 바꾸며(전치), 화면 안에서 작품으로 구현됩니다.
세계적 아티스트인 정연두 작가는 전시를 위해 지난 2월부터 제주에 거주했습니다.
20세기 초 하와이로 이주한 7천여 명 조선 노동자의 아내들인 '사진 신부'(2022)에 주목합니다.
17~18세 한창 나이에 흑백 사진 한 장을 들고 태평양을 건너간 여성들. 용기있는 이들을 맞이한건 뜨거운 사탕수수밭과 밤낮없는 혹독한 노동이었고, 작가는 직접 제주에서 사탕수수를 키우고 노동의 과정을 겪으며 그 삶을 체감합니다.
제주 현지 고등학교 학생들과 워크숍에서 나눈 이야기가 영상으로 접목됩니다.
오래전 하와이 ‘사진 신부’ 그들과 현재의 제주, 우리가 영상으로 연결되고 작가가 직접 설탕공예로 배워 조각한 ‘신부’들의 단단하지만 연약한, 모순된 초상이 관객 앞에 고스란히 재현됩니다.
관람객 참여 유도..‘마이너리티’ 혹은 나에게
요코 오노의 ‘채색의 바다(난민 보트)’(1960/2022)는 열린 공간으로 제공됩니다.
관람객이 푸른 물감으로 적어 내려갈 희망의 메시지를 기다리면서, 작가는 세상의 모든 ‘마이너리티’에게, 혹은 어딘가에서 소외감을 겪었던 자기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남겨 줄 것을 요구합니다.
벌써 몇몇 관람객들은 푸른 물감을 들어 자신의 이야기, 속엣말을 적기 시작합니다.
1년에 걸쳐 관객들이 써내려 갈 평화와 연대의 메시지로 푸른 물결을 이룰 ‘채색의 바다’에서 혼자 외롭게 놓인 보트가 새로운 여정을 찾아 항해할 그날을 괜스레 기대하게 만듭니다.
기획 테마 전시 주목..서사구조 연계 배치
포도뮤지엄은 앞서 개관전인 ‘너와 내가 만든 세상’ 때부터 ‘테마공간'이라는 미술관 자체 기획 공간을 운영했습니다.
테마공간은 오랜 리서치와 오감을 자극하는 미디어 설치를 통해 전시에 풍부한 서사를 부여하고, 현대미술을 보다 쉽고 친근하게 이해하게끔 하는 교두보 역할을 합니다.
이번에도 5개 테마공간을 선보입니다.
우리나라에 사는 이주민 주소들을 직접 본인 동의까지 받아 수집해 미디어 아트로 만든 '주소터널'부터 다양한 연령과 국적의 사람들을 그림자로 담아낸 ‘이동하는 사람들', 흑백의 드로잉 애니메이션과 창작 음악을 접목해 누구도 한쪽 편에만 속한 이는 없다는 걸 얘기하는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그리고 각기 다른 이유로 삶의 터전을 떠난 이들의 60개 증언을 교차한 ‘디파처보드’, 사막의 이정표처럼 생명줄을 상징하는 러버덕으로 공감과 배려를 유도하는 ‘아메리칸드림620’이 전체 전시 주제를 수렴하면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전시와 테마공간 기획을 담당한 김희영 총괄 디렉터는 “사회적 조건에 의해 주류, 비주류로 구분되기 이전에 수많은 공통점을 가진 우리의 모습을 기억하고자 마련한 전시”라며 “이를 통해 다양한 정체성이 공존하는 세상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기획 의도와 기대를 밝혔습니다.
“2023년 7월 3일까지 전시”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이긴 하지만, 다양한 작가군만큼이나 다채로운 작품들과 참여 프로그램까지 더해지면서, 관람객들에게 보고 즐기는 묘미를 더해줄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친근하게 전시와 콘텐츠를 접할 수 있게 한·영·중·일어 등 외국어와 배리어 프리 등 7가지 버전의 오디오가이드도 준비됐습니다.
한국어 버전은 파친코의 젊은 선자를 연기한 김민하 배우가, 일본어는 빌리의 츠키, 중국어는 NCT 샤오쥔 등이 참여해 듣는 재미도 더했습니다.
운영시간은 오전 10시부터 6시까지. 내년 7월 3일까지 추석과 설 연휴를 제외한 화요일은 휴관입니다. 유료 입장입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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