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 오른 윤희근 경찰청장 내정자..'식물청장' 우려부터 당면 과제 '첩첩산중'
윤석열 정부 첫 경찰청장에 내정된 윤희근 경찰청 차장(54·경찰대 7기)의 앞길은 첩첩산중이다.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 등 정부의 경찰 통제 시도와 이에 대한 경찰 내부의 반발이 당장 풀어야 할 숙제이다. 정부와 경찰 사이에서 조정력을 발휘해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올바른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 역할을 하려면 그만한 권한이 주어져야 하는데, 여건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부가 경찰국 신설이라는 ‘정답’을 제시한 채 받아쓰기를 강요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직진 행보’부터 부담이다. 취임하자마자 경찰 통제의 고삐를 바짝 죈 이 장관은 갈수록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 장관은 5일 ‘일선 경찰의 반발’에 대해 “일선 경찰의 반발이 아니라 (경찰) 직장협의회의 야당 주장에 편승하는 듯한 정치적 행위”라고 했다. ‘직협과 대화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직협이 다양한 목소리를 다 대변할 수 없어 직접 전국을 다니며 현장 목소리를 들어보려 한다”고 했다. 직협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는 경찰들을 ‘정치집단’으로 낙인 찍고 있다”며 “이런 발언은 갈등을 키워 내부 수습에 나서야 하는 차기 경찰청장에게 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초고속 승진한 윤 내정자를 두고 ‘친정부 인사’라는 말도 나온다. 이런 경찰 내부 평판은 윤 내정자가 조직을 다독이고 통솔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윤 내정자에게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다. 행안부는 이달 말 경찰국 신설을 완료할 방침이다. 그 전까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 정부와 경찰, 시민사회를 설득해야 한다.
‘검찰 수사권 축소법’의 후속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과제이다. 법무부가 주도하는 검경협의체는 지난달 30일 첫 회의를 열었다. 친검찰 성향 인사가 절반 이상 포진해 법무부와 검찰이 정한 방향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경찰 안팎에서 나왔다. ‘정보통’으로 수사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윤 내정자가 이 문제에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는 ‘정보경찰 기능 범위 조정’과 ‘경찰대 개혁’을 장기개혁 과제로 제시한 터인데, 이 과제의 이행은 정보통이자 경찰대 출신인 윤 내정자의 ‘자기 부정’일 수 있다.
윤 내정자는 이날 국가경찰위원회에서 경찰청장 임명제청 동의안이 통과된 후 기자들과 만나 행안부의 경찰 통제 시도에 대해 “우리 현장 직원들이 염려하고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후보자로서 충분히 공감한다”면서 “다만 일련의 행동들이 국민들께 더 큰 우려를 드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다. 내정자 신분이지만 경찰청장 직무대행 입장에서 현장의 소리를 최대한 경청하면서 합리적인 방법으로 의사를 표시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식물청장이 될 것이라는 지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경찰청장은 분명히 인사 추천권을 갖고 있고, 청장의 인사권과 장관의 제청권이 충분히 협의를 거쳐 조화롭게 행사된다면 청장의 인사권이 형해화된다는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을 분명히 드린다”고 했다.
윤 내정자 지명을 두고 경찰 내부에선 “예상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윤 내정자는 내부에서 신망이 있고 직원들 평가도 좋다”면서도 “행안부와의 의견 조율 과정에서 경찰 조직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 금세 역풍을 불러올 것”이라고 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잘해야 본전이라고 본다”며 “험한 길만 앞두고 있다”고 했다. 이날 경찰 내부망 ‘폴넷’에선 경찰국 신설에 대한 일선 경찰의 반발이 국민에게 우려를 줄 수 있다는 윤 차장 발언에 항의하는 ‘댓글 삭제 릴레이’가 이어졌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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