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1만원에 대중교통 무제한 시행 한 달
한 달에 9유로(약 1만2000원)로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독일에서 두 달째 시행되고 있다. 독일 정부가 고유가와 물가 상승에 대응해 6~8월 한시적으로 실시하는 정책이다. 대중교통 이용객이 늘면서 혼잡이 더 심해졌다는 불만도 나오지만, 9유로 정기권이 지난달 2100만장 팔리는 등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요금을 올려서라도 올여름 이후에도 계속 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독일에서는 한 달 동안 독일 전역의 버스, 지하철, 경전철, 트램 등 대중교통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정기권이 9유로에 판매되고 있다. 기존 정기권의 절반 이하 가격이다. 이용 기간은 6월1일~8월31일까지다. 독일 장기 체류 중인 외국인과 관광객도 이용할 수 있다. 기존 정기권 이용자는 차액을 환불받을 수 있다.
앞서 독일 정부는 지난 5월 고물가 대책을 발표하며 9유로 정기권 운영에 25억유로를 투입한다고 밝혔다. 폴커 비싱 독일 교통부 장관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이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고 탄소중립 목표를 이루는 데 기여하고 있다”며 제도 도입 취지를 설명했다.
9유로 정기권은 도입 전 논란을 빚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대중교통 이용객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정기권이 많이 팔리지 않아 자칫 정부 예산만 쓰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도시로 이동할 경우 환승이 복잡하고, 시설에 대한 투자도 많이 이뤄지지 않아 이용객들의 대중교통에 대한 불만이 쌓여 왔다는 점도 걱정거리였다.
뚜껑을 열어보니 판매량으로는 대성공이었다. 독일운송사업자협회(VDV)에 따르면 지난달 9유로 정기권은 2100만장이 팔렸다. 기존 독일 철도 통근자 수(1300만 명)의 두 배 가깝게 팔렸다. 기존 정기권 구매자들 1200만명까지 합하면 독일인 3명 중 1명이 정기권을 이용한 셈이다.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에 따르면 독일 철도공기업인 도이체반 이용객은 10% 증가해 펜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이전에는 대중교통을 사용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효과도 컸다. 베를린에서는 무임승차로 적발된 사람들의 수가 10분의 1 규모로 대폭 줄었다. 세바스티안 슐리젤베르크 베를린 좌파당 법률정책 대변인은 “9유로 정기권이 도입되면서 무임승차 벌금을 못 내 감옥에 가게 된 사람들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지역방송 RBB에 말했다. 도심 교통체증도 크게 개선됐다.
9유로 정기권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철도 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발트해 등 인기 관광지로 향하는 노선의 이용객들이 크게 늘었다. 독일 언론은 앞다퉈 ‘9유로로 떠날 수 있는 관광지’ 등의 기사를 내놓고 있다.
대중교통 혼잡도가 많이 증가해 불편해질 것이라는 우려는 현실화했다. 특히 지하철의 경우 이용객이 늘어난 반면 열차 운행이나 기관사 증원이 이뤄지지 않아 혼잡이 심해졌다. 기차에는 자전거 탑승이 제한됐다. 하지만 불편에도 불구하고 대중교통 이용객은 많이 늘었다. 9유로 정기권이 인플레이션 시대 방패막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중교통 확대를 주장해 온 사람들은 9유로 정기권의 흥행에 고무돼 있다. 독일 사민당은 2019년 기후위기 대응책으로 ‘연 365유로 정기권’을 제안했다. 하루 1유로씩 한 달에 30유로로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하자는 것으로, 오스트리아 수도 빈 등에서 도입한 정책을 참고했다. 하지만 이 정책은 당시 지나치게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데다 대중교통이 혼잡해져 오히려 이용객들이 떨어져나갈 것이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9유로 정기권을 체험하면서 요금이 비싼 정기권 도입 찬성 여론도 높아졌다.슈피겔이 지난 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4%가 연 365유로 정기권 도입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얀 슐루터 튀빙겐 대학 연구팀 설문조사에 따르면 독일인들은 더 나은 대중교통 개선을 위해 월 39~79유로를 지불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MDR방송이 전했다.
아돌프 바우어 독일사회협회장은 “9유로 정기권은 지역의 대중교통 수요가 얼마나 큰지 보여줬다”며 “정치는 이제 대중교통과 지역 교통시스템을 개선하고, 모든 사람이 저렴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만들고 장기적인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타게스샤우에 말했다.
독일 정부는 9유로 정기권 정책은 기존 계획대로 다음 달까지만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올라프 숄츠 총리는 4일(현지시간) ARD와 인터뷰에서 “9유로 정기권은 연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정에 참여하는 자민당은 예산상 이유로 연장에 특히 반대하고 있다고 독일 언론들은 전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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