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복어' 박지현, 토사구팽?.. 민주당 '역린' 건드렸나 [이슈+]

김건호 2022. 7. 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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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그린벨트 결과 공유 파티 '용감한 여정'에 참석하기 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스스로의 힘으로 정치해보겠다는 청년과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이 아니면 무엇이냐.”

더불어민주당이 박지현 전 공동비대위원장의 8월 당 대표 선거 출마에 대해 ‘불가’ 결정을 내린데 대해, 박 전 위원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처럼 일갈했다.

반복되는 민주당 내 성폭력 논란과 지난 대선 패배의 원인으로 지명된 팬덤 정치를 비판한 박 전 위원장이 민주당 내 주요 세력인 586(5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 정치인들로부터 미운털이 박혔다는 게 정계 안팎의 분석이다. 지난 대선 당시 이재명 의원이 삼고초려해 모셨다는 박 전 위원장이 이제 토사구팽당할 상황에 처했다.

◆민주당 대선 때는 되고 당 대표 출마는 안된다

5일 국회 등에 따르면 민주당 비대위는 오는 8월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 출마 의사를 밝힌 박 전 위원장에 대해 출마가 불가하다고 결론 내렸다.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전날 비대위 회의에서 비대위에서 “오늘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의 전당대회 출마에 관한 사항을 논의했다”며 “비대위원들은 박 전 더불어민주당의 인재이지만, 예외를 인정할 불가피한 사유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의원이 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제398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민주당 대표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6개월 이전 입당한 권리당원이어야 하는데, 박 전 위원장은 지난 2월14일 입당해 출마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박 전 위원장은 당무위 의결로 출마 자격에 예외를 둘 수 있는 규정을 들어 출마를 허가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비대위는 이를 거부했다.

박 전 위원장은 즉각 반발했다. 그는 4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대선에서 2030 여성의 표를 모으고, 당내 성폭력을 수습한 전직 비대위원장이 당에 기여한 바가 없냐”면서 “어느 정도 당에 기여를 해야, 어느 정도 ‘거물’이어야, 6개월이 되지 않은 당원이 당직의 피선거권을 가질 수 있냐”고 물었다.

박 전 비대위원장은 또 “이재명 의원께서 피선거권도 없는 제게 수차례 전화를 걸어 공동비대위원장에 앉힌 바로 그 조항이, 그때는 공정이었지만, 지금은 불공정이라고 한다”면서 “이와 같은 결정이 자가당착”이라고 비판했다.

박 전 위원장은 “저를 출마시켜 달라는 게 아니다”면서도 “민주당이 책임정당이라면, 오늘의 결정에 정말 자신이 있다면 정식 절차를 거쳐 의결하라”고 요구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두 번째)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
◆민주당은 왜 ‘아기복어’의 당 대표 출마를 반대하나

이런 민주당 지도부와 박 전 위원장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박 전 위원장의 당 대표 출마 불가 결정은 어느 정도 예정돼있었다는 분석이 많다.

민주당은 당헌·당규에 따른 결정이라고는 하지만 박 전 위원장이 그간 당에 쓴소리하고,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586′ 용퇴를 주장한 데 이어 최근에는 이재명 의원까지 비판해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다.

박 전 위원장은 지난 지방선거 전인 5월25일 민주당 선대위 합동회의에서 “국민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586세대 정치인 용퇴를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주의 정착을 시대적 사명으로 한 586세대 정치인들은 역할을 완수했기 때문에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구체적으로 지난 대선 당시 했던 약속대로 같은 지역구 4선 이상 의원들은 출마를 금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민주당 내 기득권 세력인 586 정치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비공개회의에선 회의장 밖까지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성이 오갔고, 당시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과 전해철 의원, 박홍근 원내대표 등이 박 위원장에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n번방 성착취’ 문제를 처음 공론화한 ‘추적단 불꽃’ 활동가 출신인 박 전 위원장에게 있어 여성인권은 양보할 수 없는 절대 가치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페이스북에 젠더 이슈 관련 내용을 다룰 때 페미니즘을 독이 든 복어 요리에 비유한 뒤, 상대적으로 어린 그에게 ‘아기복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내에서 잇따라 일어나는 성비위와 이에 대한 미온적인 대처는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 결국 박 전 위원장은 자신을 영입한 이 의원을 겨냥해 “대선 때 디지털 성범죄나 성범죄 문제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할 것을 몇 번이고 저와 약속을 했는데, 제가 비대위원장 시절 (이 의원이) 박완주 의원 제명이나 최강욱 의원 사건 등에 대해 거의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의 불만 제기가 민주당 내 역린을 불러온 꼴이다. 

◆“민주당은 박지현을 결국 토사구팽하려는가”

박 전 위원장은 대선을 한 달 남기고 이 의원이 영입했다. 국민의힘이 이준석 대표를 앞세워 20~30대 남성 유권자 민심을 얻어가자 그를 영입해 이른바 ‘이대남’과 ‘이대녀’ 대립 구도를 형성했다.

대선 후 그는 공동비대위원장을 맡아 당 쇄신을 주장했다. 변치 않는 내로남불과 반복되는 성범죄,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팬덤 정치를 없애자는 그의 말은 민주당 내 인사들과 달리 일반 국민에게 공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당 주류인 운동권 출신과 일부 극성 지지층의 반발로 쇄신안은 번번이 좌절됐다.

민주당의 박 전 위원장에 대한 당 대표 선거 출마 ‘불가’ 결정에 민주당 내부에서조차도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원욱 민주당 의원은 이날 “민주당은 박지현을 토사구팽하려는가”라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이날 오전 자신의 SNS를 통해 “박 전 위원장의 당 대표 출마자격 조건 성립에 대해 불가 결정을 내리려면 최소한 사전에 박 전 위원장의 의견은 들어봤어야 한다”며 “그는 당의 위원장직을 수행한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제기하고 싶은 핵심적 단어는 ‘토사구팽’이라”며 “박지현이 말할 수 있었던 것은 특권이 아니라 민주당의 요청이었다. 어쩌면 당이 청년을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존재로 여기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가”하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한 재선의원도 “박 위원장에 대한 평가는 나뉠 수 있지만 그가 민주당 내 역린으로 불렸던 각종 구태정치 등에 대해 목소리를 낸 것은 신선한 시도였다”며 “결국 당 대표 출마조차도 거절하는 당의 모습을 보면 또다시 대선과 지선의 패배를 답습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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