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 비밀'이 뭐길래..삼성 vs LG 올레드 기술 유출 7년 전쟁 마무리 [오현아의 판례 읽기]

2022. 7. 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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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D, LGD 협력사 페이스실 기술 자료 넘겨 받아
1심 유죄→2·3심 "영업 비밀 요건 안 돼" 무죄

[법알못 판례 읽기] 

삼성디스플레이 충남 아산캠퍼스 전경. 사진=한국경제신문



독창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이에 대한 법적 보호는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통상적으로 특허권을 등록하는 방법과 영업 비밀을 유지하는 방법이 있다. 특허는 발명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대가로 출원일 후 20년간 발명에 대한 독점권을 가질 수 있다.

반면 정보를 공개하는 것보다 비밀로 관리했을 때 얻는 이익이 많은 경우에는 영업 비밀로 정보를 관리한다. 대표적인 예가 코카콜라다. 코카콜라의 재료 배합비는 극소수의 관계자만 알고 있을 뿐 130년간 철저히 영업 비밀에 부쳐 왔다.

언뜻 보면 영업 비밀로 유지하는 것이 기술을 더 오래 유지하는 방법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업 비밀은 그 ‘비밀성’을 유지하는 것이 까다롭다. 특히 대기업은 기술에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고 영업 비밀이 유출되는 것을 미리 막기는 더더욱 어렵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는 기업이나 국가의 원천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영업 비밀 유출 등을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형사 처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인정받기가 어렵다. 영업 비밀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정보가 다수에게 알려지지 않았는지(비공지성) △정보의 경제적 가치가 있는지(경제적 유용성) △정보가 비밀로 관리됐는지(비밀 관리성)를 모두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대법원은 LG디스플레이(이하 LGD)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을 삼성디스플레이(이하 삼성D) 측에 빼돌린 혐의로 재판을 받던 협력 업체 사장과 삼성D 직원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 사옥에 게양된 삼성 깃발. 사진=한국경제신문



 

 1심 “자료에 ‘기밀 사항’ 표시 있어”

사건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 씨는 2006년께부터 2010년까지 LGD의 의뢰를 받아 페이스실(face seal) 합착기를 개발해 납품해 왔다. 페이스실은 OLED 소자에 대한 공기 접촉을 막아 디스플레이의 수명을 늘릴 수 있는 기술이다. A 씨는 LGD와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하며 ‘이 과정에서 취득한 각종 영업 비밀을 제삼3자에게 공개하지 않는다’는 계약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A 씨는 이후 납품 거래처를 확대하기 위해 삼성D 측과 접촉했고 이 과정에서 A 씨는 2010년 3∼4차례에 걸쳐 삼성D 측에 LGD의 페이스실 관련 기술을 설명한 혐의로 2015년 재판에 넘겨졌다. 삼성D 직원 7명도 A 씨를 통해 LGD의 영업 비밀을 빼낸 혐의로 함께 기소됐다.

핵심 쟁점은 A 씨가 넘긴 자료를 ‘영업 비밀’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법정에서 A 씨와 삼성D 측은 “해당 기술은 업계에 이미 알려져 있는 기술”이라며 “부당하게 취득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들은 “LGD 협력 업체가 보유한 기술을 구매할지를 두고 프레젠테이션을 들은 뒤 관련 자료를 건네받은 것일 뿐”이라며 “해당 기술을 구매하지도 않아 경제적 이득도 없다”는 취지로 무죄를 주장했다. 앞서 말한 영업 비밀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영업 비밀과 관련된 요건이 복잡한 만큼 하급심의 판단도 엇갈렸다. 1심은 기술 자료 일부가 영업 비밀로 인정된다면서 피고인들에게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은 A 씨가 작성한 ‘페이스실 주요 기술 자료’다. 1심은 주요 기술 자료 중 자료 하단에 ‘기밀 사항(confidential)’ 표시가 돼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A 씨가 이 자료를 삼성D 측에 메일로 보내면서 ‘민감한 부분은 삭제했습니다’라고 표현한 점 역시 근거로 들어 “A 씨는 주요 기술 자료에 포함된 LGD의 영업 비밀에 관한 인식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재판부는 A 씨와 삼성D 직원들에게 징역 4∼6개월에 집행 유예 1∼2년을 선고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LG트윈타워에 게양된 LG 깃발. /사진=연합뉴스


 

 2심 “이미 업계에 알려진 사실”

이 판단은 2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재판부는 “A 씨가 작성한 주요 기술 자료의 내용을 보면 수년 전부터 업계에 이미 알려진 기술”이라고 판단했다. 기술 자료에 있는 대부분 내용이 이미 논문이나 일본의 필름 제작 업체가 업계에 배포한 자료 등에 상세하게 포함돼 있다는 판단이다.

더욱이 재판부는 “페이스실의 주요 기술 자료는 A 씨 회사 홍보 자료로, LGD가 영업 비밀 원천 자료라고 주장하는 자료와 비교해 봤을 때 구체적인 내용이 생략됐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A 씨 독자 개발 기술이 주요 기술 자료에 혼재돼 있는 점도 참작됐다. 재판부는 또 “A 씨가 만들어 건넨 자료가 LGD의 기술 정보를 정확히 표현하고 있지 않고 자료 속 내용을 LGD 측이 영업 비밀로 관리해 왔다고 볼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도 2022년 6월 16일 이런 2심 판단에 법리 오해 등 문제가 없다고 보고 원심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삼성D와 LGD의 기술 유출전은 7년 만에 마무리됐다.

[돋보기]

 

 삼성 OLED 패널 대형화 기술 빼돌린 직원들은 ‘유죄’ 확정

삼성디스플레이(이하 삼성D)와 LG디스플레이(이하 LGD)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을 두고 법적 분쟁을 벌인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19년에는 반대로 삼성D의 OLED 패널 대형화 기술을 LGD에 빼돌린 사건이 있었다. 당시 LGD로 기술을 빼돌린 전 삼성D 연구원과 이를 건네받은 LGD 임원 등 3명은 모두 유죄가 확정됐다. OLED 기술 유출에 대한 법정 다툼에서는 삼성이 완승한 셈이다.

전 삼성D 연구원 조 모 씨는 2011년 5월~2012년 1월 삼성D 설비개발팀장으로 일했다. 조 씨는 자신이 일하는 동안 업무 수첩에 적어 놓은 정보나 회사 재직 당시 알게 된 설비개발팀 직원에게 정보를 얻어 삼성D의 OLED 패널 대형화의 핵심 기술 정보를 수차례에 걸쳐 LGD에 넘겼다.

당시 OLED는 휴대전화·스마트폰 등 작은 모바일 기기 등에서 주로 쓰였고 패널 대형화 기술은 TV 시장에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평가되던 만큼 핵심 기술로 판단되고 있었다.

결국 조 씨는 산업 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됐다. 기술을 넘겨받은 LGD 측 임원 김 모 씨와 협력 업체 임원 박 모 씨도 함께 기소됐다. 결국 이들은 하급심과 대법원에서 모두 유죄를 확정받았다.

1심은 “조 씨는 영업 비밀 보호 서약을 했음에도 내부 자료를 반납하지 않고 소지하다가 유출한 점이 인정되고 김 씨와 박 씨는 경쟁 업체의 동향을 살피는 업무를 하던 중 조 씨를 통해 삼성D의 내부 자료를 취득했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조 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 유예 2년, 김 씨와 박 씨에게는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2심 역시 이들의 혐의를 유죄로 봤다. 다만 삼성D 측이 이들과 합의해 처벌을 원하지 않았던 점 등을 반영해 형량을 낮췄다. 이에 조 씨는 징역 8개월에 집행 유예 2년으로, 김 씨와 박 씨는 벌금 500만원형으로 감형했다.

검찰은 상고했지만 당시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상고심에서 원심을 확정지었다. 한편 이들을 포함해 삼성D와 LGD의 전현직 임직원 11명과 LGD 및 그 협력사도 함께 기소됐다. 하지만 나머지 7명과 LGD·협력사에 대해선 1·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무죄가 확정됐다.

오현아 한국경제 기자 5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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