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깡' 망치 소리 잃은 세계 최대 선박 작업장 [르포]

강승우 2022. 7. 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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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가 임금 인상 30% 등을 요구하며 점거 농성으로 진수가 중단된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 1도크. 사진 강승우 기자
“깡~깡~깡!”

5일 오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이곳은 세계 최대 규모 조선소답게 작업 현장 곳곳에서 요란한 망치가 쉬지도 않고 울려 퍼졌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현재까지 26척의 선박을 수주했다. 이는 올해 목표치의 70% 수준이다. 조선 침체기였던 2016~2020년 한해 평균 31척을 수주한 것에 비하면 나쁘지 않은 실적이다.

코로나19 위기를 겪고 최근 조선업 경기가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옥포조선소에서 가장 많은 배를 만들어 메인 독(main dock)라고 할 수 있는 1독은 조용했다.

대우조선해양에는 총 7개의 독이 있다. 각 독에서 선박을 만드는데 이 중 1독은 길이 530m에 너비 131m로, 축구장(7140㎡) 9개가 들어가고도 남는 6만 8900㎡ 면적을 자랑한다.

선박 4척을 동시에 건조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 선박 작업장이다.

그런데 이곳에는 투쟁 중인 노동자들의 구호 소리와 탄식이 망치 소리를 대신했다.

1독에서 작업이 멈춘 지 보름이 넘었다.

배를 물에 띄우는 진수 작업이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이하 하청지회) 소속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조의 점거 농성에 가로막히면서다.

하청지회는 임금 인상 30%, 노조전임자 상근요구, 단체교섭 인정 등을 요구하며 지난 달 2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사내 협력사 대표들과 실무교섭을 진행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자 하청지회는 파업 수위를 높였다.

지난 달 18일 선박 진수 작업을 방해한 데 이어 지난 달 22일에는 1독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하청지회 6명은 1독에서 초대형 원유운반선 원유 저장 시설 난간(높이 15m)에서 고공 농성 중이다.

유최안 하청지회 부지회장은 이 바닥에 가로·세로·높이 각 1m 크기의 철 구조물에 들어가 14일째 농성하고 있다.

이 구조물 출입구는 용접을 해서 막혀 있다. 스스로 나오지 못한다.

유 부지회장은 결사항전의 각오로 투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현장 전화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은 기본적으로 노동자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데 하청노동자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현실의 벽은 너무 높고 멀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청업체는 하청업체 뒤에 숨어 갈등을 키워 논란거리만 만들고 있다”며 “실질적으로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산업은행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 부지회장은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강대강의 대치 밖에 없다”며 “노조를 인정하고 대화로 풀어가자고 했지만 사측이 이런 식으로 대응해서 유감이다”고 말했다.

5일 오전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가 임금 인상 30% 등을 요구하며 점거 농성으로 진수가 중단된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 1도크. 사진 대우조선해양
장기간 진수 작업이 중단되기는 1973년 대우조선해양 창립 이래 처음이다.

진수 중단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았지만 대우조선해양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발만 동동 구를 뿐이다.

하청업체 노사 문제에 원청업체가 나서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면 관련법 위반 소지가 있어서다.

하청지회 파업이 한 달 넘게 장기화되면서 상황은 점점 최악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1독 진수 중단 여파로 이에 따른 유·무형의 손실이 천문학적으로 커지고 있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에 따르면 1독에 건조 중인 초대형 원유운반선(30만t급) 3척이 진수를 못해 독에 발이 묶였다.

3척 중 1척은 70% 공정을 마쳐 독 밖에서 진행할 외업(外業)만 남겨뒀는데 이 작업에도 수개월이 걸린다.

이 1척은 올해 11월 선주 측에 인도하기로 계약됐는데, 현재 그 날짜를 맞추기 불투명하다.

이 때문에 대우조선해양은 파업이 길어질수록 지체배상금 등 손실액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대우조선해양은 하청지회 파업으로 일주일에 1250억원 매출 손실과 2주 지연에 따른 고정비 560억원, 선박 인도 지연에 대한 지연 배상금 최고 130억원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선주사의 신뢰 상실 부분”이라며 “지금 건조 중인 20여 척뿐만 아니라 3년치 수주한 130여 척에까지 파업 여파가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이어 “우리 회사는 과거 공적자금이 투입돼 기사회생했는데, 하청지회 파업 장기화로 상황이 악화돼 또다시 공적자금이 투입된다면 선주뿐만 아니라 국민 신뢰도 잃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내 협력사 한 대표는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직원이 1만1000여명인데, 실제 이번 파업에 참여하는 인원은 120여명으로 1% 수준에 불과한데, 과연 이들이 노동자 대표성이 있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하청지회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그 여파가 옥포조선소 1독을 넘어 지역사회로 번지는 분위기다.

인근 상인들은 코로나19 이후 모처럼 살아나는 지역 상권이 다시 활기를 잃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옥포시장에서 30년 가까이 장사를 했다는 한 상인은 “코로나 이후 경기가 다시 회복하는가 싶었는데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다”며 “거제지역은 조선 경기가 살아나야 하는 곳이다. 빨리 평화롭게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오후에는 대우조선해양 현장책임자 연합회와 협력사 대표들이 경남경찰청을 찾아 하청지회 파업 해결을 촉구하며 거제시민 1만명 서명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청업체 노사 간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면서 거제지역에는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거제=강승우 기자 ks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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