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첫 필즈상 수상] 허준이 교수 "수학은 '자유로움'을 학습하는 일..얽매이지 않고 생각해야"

이채린 기자 2022. 7. 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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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수학연맹의 도움을 받아 6월 15일 허준이 교수와 3시간 동안 화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수학동아DB

한국 수학의 역사가 새로 써졌다. 허준이 고등과학원 석학교수 및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가 한국 출신으로는 처음 ‘수학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거머쥐었다. 필즈상은 수학 역사가 깊은 서구에서 대부분 수상자가 나올 정도로 벽이 높다. 허 교수는 초등학교부터 대학원 석사까지 한국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완전히 다른 두 수학 분야인 ‘조합론’과 ‘대수기하학’을 연결해 중요한 수학 난제들을 풀어내는 수학자다. 박사 과정 졸업 전인 2012년, 60여 년 동안 풀리지 않던 조합론 문제인 ‘리드 추측’을 풀어내 수학계에 이름을 제대로 알렸다. 이후 연구를 발전시켜 여러 수학자들과 함께 ‘로타 추측(Rota's conjecture)’, ‘다우링-윌슨(Dowling-Wilson) 추측’, ‘오쿤코프(Okounkov) 추측’ 10여 개의 수학 난제를 척척 해결해냈다.  필즈상 시상식이 열리기 전인 6월 그를 화상으로 만났다.

○ “낯설고 무게감 느껴져”

Q. 과거 인터뷰마다 필즈상을 ‘아주 높은 확률’로 받지 못할 거라고 했다. 수상 소감이 궁금하다.

A. 좋아하는 일을 하며 의미 있는 상을 받게 되어 기쁘다. 분수에 넘친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Q. 브레이크스루상 뉴 호라이즌, 삼성호암상 과학상 등 여러 상을 받았는데 필즈상 수상의 의미는 무엇인가. 

A. 나의 수학적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즈상 수상자 목록에 있는데, 그 밑에 내 이름이 오르게 된다니 낯설고 무게가 많이 느껴진다. 수학을 막 시작할 땐 필즈상을 받아야겠다고 바란 적은 없다. 다만 ‘수학자라는 직업으로 돈을 벌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바랐는데 그땐 지나치게 원대한 꿈이라고 생각했다.

Q.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

A. 수상 사실을 시상식 전에 외부에 공개하는 것이 금지다. 그래도 아내한테는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아내가 자고 있어서 깨워서 말해줬다. 그랬더니 아내가 “그럴 줄 알았다”고 하고 다시 잤다(웃음).

Q. 필즈상 수상으로 인해 한국 수학계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 같나.

A. 특별한 변화는 없을 것이다. 이미 한국 수학계가 너무나 발전해 있다. 젊은 수학자들이 만들어내는 연구 결과가 정말 훌륭하다. 올해 우리나라가 국제수학연맹으로부터 가장 높은 등급인 5등급을 받기도 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 수학과 거리가 있었던 학창시절

Q. 학창 시절 수학과 거리가 멀었다고 들었다.

A. 맞다. 한자리에 앉아 오래 수업을 듣고 문제 푸는 걸 무척 어려워했다. 오히려 중학교 때 글쓰기를 좋아하는 단짝 친구를 만나 책 읽기와 시 쓰기에 푹 빠져있었다. 심지어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지내는 대신 자유롭게 글을 쓰면 그럴듯한 작품을 금방 써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그땐 시 쓰기가 ‘의미 있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의미’에 집착하는 것이 어린 시절의 특권이자 한계라고 생각한다.

Q. 자퇴를 하고 나서 계획대로 됐나.

A. 아니다. 막상 자퇴하고 온종일 자유시간이 생기니 아무것도 안 했다. 학교 끝나는 친구들을 기다렸다가 같이 PC방에 가서 신나게 게임 했다. 게임할 때는 재밌게 하는데, 게임이 로딩되는 동안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정신 차리고 학원에 등록해서 수능을 쳤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건 힘들었는데, 수능은 전부 객관식이라 게임하는 것 같기도 해서 재밌게 공부했다. 이때도 수학 과목이 제일 힘들긴 했다.

Q. 물리천문학과에 진학했다.

A. 글을 쓰다 보니 전업 작가에 비해서 내 능력이 너무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좋아하는 과목인 과학을 더 공부해서 과학기자가 되면, 과학 이야기를 글로 쓰며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물리천문학과에 진학했다. 물리천문학과가 멋져보이기도 했다(웃음).

국제수학연맹의 도움을 받아 6월 15일 허준이 교수와 3시간 동안 화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수학동아DB

Q. 대학 시절은 어떠셨는지 궁금하다.

A. 막상 대학에 가니 수업 듣기 힘든 것도 여전했고, 공부도 너무 어려웠다. 목표도 점점 잃고 방황하다, 결국 3학년 1학기에 모든 과목에서 D와 F를 받았다. 8개월간 집에만 틀어박혀 있을 정도로 우울증에 걸렸다. 그래서 대학교를 6년이나 다녔다.

Q. 대학 때 수학 수업을 언제 처음 들었나?

A. 처음 들었던 과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위상수학’ 수업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졸업은 해야겠고, 한번 손을 놨던 전공과목들은 자신이 없어서 새 출발 해야겠다는 생각에 수학 수업을 신청했고 시간표가 맞아 위상수학을 들었다. 도넛과 컵이 수학적으로 같다는 걸 알려주는 위상수학은 굉장히 재밌는 학문인데, 위상수학책 첫 장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당시 마음이 복잡했던 내게 딱 맞는 공부였다. 마음을 비우고 집중했더니 오히려 정신이 평안해졌다. 힐링이었다.

○ 단 하나의 수업이 바꾼 운명

Q. 학부 마지막 학기 때, 서울대학교 석좌교수로 초빙된 일본의 세계적인 수학자이자 1970 필즈상 수상자인 ‘히로나카 헤이스케(広中 平祐, Heisuke Hironaka)’의 수업을 들으면서 수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들었다.

A. 네. 중학교 때 히로나카 교수님의 <학문의 즐거움>이란 책을 인상 깊게 읽었다. 워낙 유명한 수학자니까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 먼저 다가갔다. 나중엔 거의 매일 점심 식사를 함께했다. 이때 제게 교수님은 순서 없이 수학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전까지 수학은 아래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려야만 배울 수 있는 과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교수님은 언제 어떻게 쓰일지 모를 퍼즐 조각을 하나씩 주는 방식으로 가르쳐줬다.

Q. 퍼즐 조각이라니 단어가 재밌다.

A. 히로나카 교수님의 권유로 학부를 마치고 서울대 수학과 석사과정에 들어갔다. 전공은 역시 히로나카 교수님과 같은 대수기하학이었다. 실제 히로나카 교수가 준 퍼즐 조각 중 하나인 ‘특이점’을 응용해서 석사 논문을 썼고, 그게 훗날 여러 추측을 해결하는 기반이 됐다.

Q. 미국 대학교 박사 과정에 진학하려고 12곳에 지원했는데, 딱 한 곳만 됐다.

A. 처음엔 다 떨어졌다. 그래도 필즈상 수상자(히로나카 교수)의 추천서가 있는데, 어딘 되겠지 했는데, 합격 이메일이 하나도 오지 않았다. 합격 발표가 나는 기간 동안 자다가도 일어나서 메일 창을 계속 새로고침 하고 계속 조마조마했다. 그래도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말하자면 추가 합격 이메일이 나중에 와서 너무 기뻤다.

Q. 박사 과정 졸업 전인 2012년에 석사 전공인 대수기하학의 도구를 이용해 조합론의 난제를 해결하는 논문을 냈지 않나. 조합론을 원래 좋아했나?

A. 부끄럽지만,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할 쉔크((Hal Schenck) 교수를 만나면서 조합론을 처음 배웠다. 그때 조합론의 여러 난제들을 알게 됐다. 그런데 문제를 듣자마자, 석사 시절 특이점 이론에서 밝혀낸 어떤 패턴이 있었는데, ‘어? 그 패턴을 여기에 적용해서 문제를 풀어볼까?’라는 생각을 했고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Q. 그러다 어떤 계기로 미국 미시간대학교로 자리를 옮긴 건가?

A. 미시간대로부터 내가 쓴 논문 내용을 발표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때 굉장히 신났다. 책에서 보던 유명한 수학자들이 미시간대에 많았는데, 그들 앞에서 강의를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강의가 끝난 뒤, 자리를 옮겨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Q. 2018년엔 2명의 수학자와 함께 ‘로타 추측’까지 해결했다.

A. 내 논문을 보고 에릭 카츠(Eric Katz)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 교수가 연락을 먼저 해왔다. 내가 발표한 내용을 이용하면 다른 추측도 해결할 수 있으니 함께 논문을 써보자는 메일이었다. 그때 난 그냥 대학원생이었고, 카츠는 당시 박사후 연구원으로 경험 많은 수학자였다. 혼자 내 논문을 보고 연구 결과를 낼 수도 있었는데, 함께 연구를 제안해준 것이다. 너무 고마웠다. 이후 한 학회에서 만난 동료도 합류해 함께 결과를 냈다.

Q. 수학자라고 하면 혼자 열심히 문제를 푸는 모습이 그려진다. 수학자들도 공동 연구를 많이 하나.

A. 당연하다. 내가 최근에 쓴 논문은 모두 공동 논문이다. 제 모든 연구 결과들은 뛰어난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다. 어떤 때는 제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잠시 머물다가는 그릇 같다. 생각이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겨 다니며 점차 풍성해지는 것이 신기하다. 마음이 맑은 날에는 제가 거대한 구조의 아주 작은 일부라는 것이 잘 느껴진다. 공동연구가 훨씬 더 멀리 갈 수 있고 훨씬 더 깊이 갈 수 있다.

 

국제수학연맹의 도움을 받아 6월 15일 허준이 교수와 3시간 동안 화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수학동아DB

○ 우연이 비결 

Q. 수많은 추측을 해결했는데, 그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A. 수학자치고 배우는 게 느려서 모든 연구가 쉽지 않았다. 어떤 내용을 들으면 소화하는 데 오래 걸리는 편이다. 그래서 동료들에게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한다. 내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건지, 다들 차근차근 대답해 준다. 그런데 재밌게도 같은 질문인데 매번 다르게 답을 해준다. 그러면서 나는 지식을 완전히 소화하게 되고, 상대방도 지식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던 같다.

Q. 도전한 문제가 안 풀려서 괴로워하는 수학자들이 많다. 문제가 안 풀리면 어떻게 하나.

A. 나는 문제가 안 풀리면 포기한다. 일종의 직관인데, ‘내가 이걸 조금 노력하면 몇 달 안에 풀겠다, 아니다’처럼 판단이 필요하다. 잘 포기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종류의 문제들은 개인이 이해할 준비가 안 됐거나, 인류가 이해할 준비가 안 된 걸 수도 있다. 그걸 붙잡고 있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다.

Q. 문제를 잘 푸는 비결이 궁금하다.

A. 흠, 사실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수학자는 본인이 어떻게 문제를 푸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다른 과학 분야를 보면 인류 지식의 진보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대충은 납득이 되는 설명이 있지 않나. 예전에는 우리가 사용할 수 없었던 현미경, 망원경이 새로 개발되어 더 작은 것을 볼 수 있게 되고 더 멀리 보고 새로운 과학 이론이 생긴다. 그러면 기존의 과학 이론이 보정되고. 뭐 이러한 납득할 만한 설명이 있다.

그런데 수학은 100, 200, 300년 전에 살았던 수학자에 비해서 현재의 수학자들은 특별한 이점이 있는 게 아니다. 컴퓨터를 제외하고 종이와 펜을 들고 있다는 점에서는 완전히 대등한 조건이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수학자들보다 현대 수학자들이 현상을 더 깊이 빨리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것이 굉장히 신비로운 일이다.

크게 종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개인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더라도 나라는 사람이 똑같은 지식을 가지고 생각하는데, 지난주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해법을 상상할 수 없었는데. 오늘은 갑자기 생각이 난다.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끊임없이 이런 순간이 일어난다. 지능, 지식처럼 주어진 조건은 크게 바뀌지 않는데 말이다. 그때는 알 수 없었던 것을 이제는 알 수 있는 일들이 항상 일어난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결국엔 우연인 것 같다. 우리 두뇌에서 끊임없이 다양한 종류의 ‘랜덤 커넥션’이 일어날 텐데. 이게 어떠한 패턴으로 일어나는지에 따라서 우리가 소위 이해라고 부르는 현상이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기도 하는 것 아닐까.

Q. 한국엔 수학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많다. 수학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수학의 매력은 자유로움이다. 수학엔 논리가 맞아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그런데 그 규칙의 엄격함 때문에 다른 면에서 자유롭다. 어떤 대상을 연구할 것인지, 어떻게 이해하고 풀어야 하는지 정해진 규칙이 하나도 없다. 수학은 자유로움을 학습하는 일이다. 그래서 어렸을 땐 얽매이지 않고 많은 생각을 자유롭게 하는 훈련을 하면 좋을 것 같다.

Q. 그렇다면 수학이 대중적일 수 있을까?

A.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글쓰기가 처음 발명되고 ‘대중화’되는 데 얼마나 걸렸을까? 보수적으로 잡아도 수천 년은 되겠다. 현재 진행 중인 수학의 대중화는 훨씬 빠르게 이루어질 거다. ‘보통 사람’이 10억, 100억처럼 상상하기도 힘든 큰 수의 사칙연산을 부담 없이 다루고 일상에서 ‘확률’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지금의 일상을 10세대 전의 우리가 생각할 수 있었을까?

Q. 학창시절 글쓰기를 좋아했다. 수학과 예술이 얼마나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나.

A. 수학은 글쓰기나 음악 같은 예술의 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언어의 종류가 다를 뿐 모두 표현하기 어려운 대상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같다. 첫째인 7세 아들은 음악에 관심이 많다. 요즘 한국 가요와 미국 팝송에 푹 빠져 있다. 함께 음악에 맞춰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기도 한다.

Q. ‘수학을 잘한다’라는 건 뭘까.

A. ‘수학을 잘한다’라는 건 100미터 달리기 기록처럼 정량화할 수 없다. 사람 성격처럼 수학을 하는 스타일도 다양하기 때문에 수학적 재능이 정확히 무엇인지 말하기도 어렵다. 우리 두뇌가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 있고, 각 부분의 뇌세포가 하는 역할이 다르다. 그래서 ‘두뇌의 어느 부분이 더 똑똑하냐’고 묻는 게 무의미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수학을 잘하고 있는지는 개개인이 아니라 전체로서 평가해야 한다. 

Q. 하루 일과가 궁금하다.

A. 거의 똑같다. 오후 9시쯤 자녀들과 함께 잠을 잔다. 그러고서 새벽 3시쯤 일어난다. 그땐 아무 음악도 틀지 않고 조용히 앉아서 명상을 하거나, 조깅을 한다. 오전 6시가 되면 오늘 하루를 준비한다. 곧 자녀들이 일어나면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기관에 데려다 준다. 그러고서 나는 9시에 학교에 도착한 뒤, 연구하는 데 오전 시간을 다 쓴다. 점심식사를 한 뒤, 낮잠을 한 번 잔다. 그리고 오후에 이메일 보내기, 수업 준비 같은 일을 끝낸 뒤에 5시에 퇴근한다.

허 교수는 필즈상을 받은 후에도 “이 일상이 많이 바뀌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지금껏 수학자로 살아온 삶이 너무 만족스럽기 때문에 계속 연구를 하는 데 집중하고 싶다는 의미다.

국제수학연맹의 도움을 받아 6월 15일 허준이 교수와 3시간 동안 화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수학동아DB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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