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성추행은 사과하면 끝?..'권력형 성비위' 또 눈 감는 윤석열 정부
대학원생들 "명줄 쥔 교수 성폭력 공론화 어려워"
성희롱 당시 학교 징계 피했단 이유 임명 강행 비판
송옥렬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의 제자 성희롱 논란에 대해 대통령실이 “당사자가 직접 사과해 일단락된 사안”이라고 반응한 것을 놓고 상하관계에서 발생하는 ‘권력형 성비위’의 특성을 가볍게 본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송 내정자는 2014년 1학년 학생 100여명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만취한 채 학생들에게 “넌 외모가 중상, 넌 중하, 넌 상”이라고 외모 품평을 하는가 하면 여학생들에게 “이효리 어디 갔다 왔느냐” “너 얘한테 안기고 싶지 않으냐”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당사자인 송 내정자는 5일 기자간담회에서 “너무 죄송하고 지금도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그것 때문에 (공정위원장) 자격이 없다고 하시면 담담하게 받아들이자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재차 사과했다. 그런데 정작 대통령실은 전날 “당시 참석자들에게 사과했고 그것으로 일단락된 사안으로 학교의 별도 처분이 없었던 점을 고려했다”며 ‘사과했으니 문제될 것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이에 대해 서울대 학생인권단체인 ‘권력형 성폭력 인권침해 문제 해결을 위한 서울대인 공동행동’ 권소원 대표는 “로스쿨은 전문대학원 특성상 (대학원) 일이 장래 직업과 평판에 직접적으로 연관돼 즉시 공론화 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졸업 후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며 “사건 발생 당시 정식으로 학교에서 이의제기가 이뤄지지 않았으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식의 태도는 공직자로서 자격을 의심케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대학원생 총학생회 전문위원인 A씨도 “(송 내정자 사건은) 흔히 볼 수 있는 권력형 성폭력이자 인권침해 사건”이라며 “문제제기를 하는 순간 피해자가 감당해야 하는 위험이 크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장치도 부족해 공론화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대학원생 B씨는 “대학원의 경우 졸업과 논문 지도에 (교수가) 불이익을 줄 수 있어 신고를 하기가 쉽지 않다”며 “수업 시간에 ‘신고할 게 있으면 나한테 먼저 말하라’며 으름장을 놓는 교수도 있었다”고 했다.
고위 공직자의 성비위 문제를 가볍게 보는 듯한 대통령실의 태도는 처음이 아니다. 대통령실은 윤재순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이 검찰 재직 시절 두 차례에 걸쳐 성비위로 징계성 처분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으며, 정식 징계 절차가 아니었다”면서 별 일 아니라는 듯 넘어갔다.
안소정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성비위를) 결격사유라고 판단했다면 이렇게 논란이 될 이력이 있는 사람들을 공적 자리에 중용하기 어려웠을 텐데 오히려 이 사람들이 요직에 오르고 있다”면서 “(현 정부의) 성폭력에 대한 문제의식, 감수성이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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