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거래 때 '미신고' 원칙으로 개편"..정부 '新외환법' 만든다

세종=박소정 기자 2022. 7. 5.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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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新외환법 제정방향 세미나' 개최
자본거래 시 사전신고 의무→未신고 원칙
개별 금융기관의 외국환 업무 범위 확대
'예외의 예외'까지 두는 법령 체계 단순화
해외 기업에 취직한 A씨는 출국 전 은행에 월세 보증금을 포함한 정착 비용으로 7만달러에 이르는 해외 송금을 요청했다. 그런데 은행은 ‘5만달러 이상’, ‘사용 목적 확인 불가’ 등의 이유를 들어 해외 송금을 거절했다. A씨는 결국 ‘신고 예외’가 인정되는 1만달러만 휴대해 출국했는데, 나머지 6만달러 송금을 위해 어머니가 대신 한국은행에 신고했다. 결국 송금까지 1~2개월 이상이 소요됐고, 매매신고서·재직증명서 등 최소 11개 이상의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잇따랐다.
태국 소재 기업의 지분 50%를 취득한 국내의 B기업은 추가로 4만달러 상당의 기계를 현물 출자하면서 사전신고를 누락했다. 신고의무 위반으로 B기업에는 과태료 100만원이 부과됐는데, 이와 별개로 투자 후 매년 사후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의무도 주어졌다. B기업 관계자는 “해외 투자 과정에서 법규를 위반할지 모른다는 우려와 사후보고에 따른 부담감이 상당하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자본거래 때 사전신고 원칙을 의무화한 외국환거래법을 23년 만에 폐지하고 새 외환법 제정에 나선다. ‘미신고 원칙’을 토대로 외환거래 과정을 개편해, 해외송금이나 해외 투자에 잇따르는 불편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5일 ‘신(新)외환법 제정방향 세미나’를 열고 이같은 개편 방침을 밝혔다. 해외송금과 증권투자 등 거래 수요는 대폭 늘었으나, 이를 위한 법규는 현행법이 제정된 1999년에 머물러 있단 지적에 따른 것이다. 많은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해 모르는 사이 법규를 위반해 과태료를 물거나, 해외직접투자 시 매년 연간 사업실적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등 기업에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하는 부작용이 잇따랐다.

김성욱 기재부 국제금융국장은 “그간 외국환거래법을 개편해 규제 완화를 해왔지만, 그 과정에서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이유는 외국환관리법 시절부터 ‘외화 유출 금지’ 철학이 녹아있었기 때문에 기본 뼈대를 바꾸지 않고서는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웠다”며 “법체계를 그대로 두고 부분, 부분 개편을 하다보니 너무 복잡해진 측면이 있었다”면서 기존 법 폐지와 새 외환법 제정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차관이 5일 서울 여의도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열린 '신(新) 외환법 제정방향 세미나'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토론에 참여한 김응철 우리은행 외환그룹 부행장은 “지난해 외환업무로 고객이 당행에 문의한 총 8만건 중 외환규정에 대한 문의가 5만여건으로 66%였다”며 “주로 이주비나 재외동포 재산 반출, 유학생 송금 등에 관한 개인의 거래 상담이 25%, 해외직접투자 등 자본거래 상담이 38%의 비중을 차지했으며, 간단한 송금 관련 문의도 잇따랐다”고 설명했다.

우선 정부는 자본거래 및 지급·수령 단계에서의 사전신고 의무를 폐지하기로 했다. 현행법은 사전신고가 원칙이며, 규모·상대방·국경간 자금이동 여부 등에 따라 신고 여부나 주체·접수 기관이 모두 다르게 규정됐다. 예로 거주자가 비거주자로부터 외화자금을 차입 받으려는 경우, 3000달러 이하 규모면 지정거래외국환은행장에, 3000달러를 초과하면 기획재정부 장관에 신고가 이뤄지도록 규정돼 있다.

새 외환법은 이를 개정해 미신고를 원칙으로 하되 신고 대상을 열거하는 식으로 바뀔 예정이다. 사전에 인지를 못 했을 때 중대한 경제적 영향을 미치는 일부 거래에 대해서만 신고제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사전 신고 ▲사후 보고 ▲신고 예외 등 세 유형으로 분류하기 위해 필요성·시급성·지속성에 따른 기준을 마련할 예정이다.

해외직접투자 사후보고서 예시. /기획재정부 제공

정부는 또 ‘동일 업무·동일 규제’ 원칙을 바탕으로, 개별 금융기관의 외국환 업무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업권 구분에 따라 외국환 업무의 범위가 차등화돼 있다. 은행이 독점해 온 일반 환전이나 송금 업무를 여타 금융업권인 증권사, 보험사, 핀테크 등에도 허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합리화하는 등 기준을 재정립하겠다는 것이다.

복잡한 법령 체계도 손 본다. 기존 조문은 ‘원칙(금지)’을 명시한 뒤 ‘예외’와 ‘예외의 예외’를 두는 체계로 복잡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금융기관이 매번 정부에 유권해석을 의뢰하거나, 기재부 외환제도과에 일반 국민의 질의 문의가 빗발칠 정도였다. 이에 정부는 ‘원칙’과 ‘예외’ 구조로 법령 서술체계를 단순화하기로 하기로 했다.

이 밖에 가상자산처럼 새로운 결제방식·지불수단 등 사전 규율이 어려운 거래에 대한 포괄적 대응 방안 마련, 단계적인 원화 국제화 기반 마련, 해외직접투자 규제와 거주자의 해외증권취득과 관련한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하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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