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중심' 에너지 정책 공식화, 탈석탄·재생에너지 확대는 빠져
정부가 5일 발표한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은 윤석열 정부의 원자력발전 확대용 로드맵으로 요약된다. 실현가능하고 합리적인 에너지원 활용을 내세웠지만 주로 당장 쓰기 편한 원전은 늘리고 재생에너지 확충은 등한시 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RE100(재생에너지 100%)·탄소국경세 등 규제가 도입되는 상황에서 석탄화력 발전 비중에 대한 축소 없이 원전만 확대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기업에 부담을 주는 등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에너지정책 방향을 통해 공론화 작업도 건너뛴 채 신한울 3·4호기의 건설부터 재개하겠다고 공식화했다. 12월 공개되는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반영한 이후, 법령상 인허가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박일준 산업부 2차관은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을 마련하면서 대국민 공청회 등 20여차례의 간담회와 토론회 등을 통해 각계 의견을 수렴했다”면서 “추가 공론화 작업은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탈원전의 상징으로 인식된 신한울 3·4호기의 건설 재개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약집에서는 물론 현장 방문과 간담회 등에서 수차례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집권 즉시 재개하겠다고 강조해왔다. 지난달 22일에도 신한울 3·4호기의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 현장 방문해 2025년까지 1조원 이상의 일감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의견 수렴없이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은 “정권에 따라 원전 건설 재개 등 에너지정책 방향을 쉽게 바꾸기보다 국민에 대한 충분한 설득 작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건설 중인 원전도 예정대로 준공될 수 있도록 관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신한울 1호기는 올해 하반기, 2호기는 내년 하반기 준공이 예정돼 있다. 신고리 5·6호기는 각각 2024년 하반기, 2025년 하반기 공사가 마무리될 계획이다.
계속운전 심사를 위한 안전성 평가보고서 제출 시기도 확대해 가동 원전 숫자는 2021년 24기에서 2030년에는 28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노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고, 신한울3·4호기를 신규 건설할 경우 2030년 원전 비중은 36%에 달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석탄 감축과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 제시는 빠졌다. 한 소장은 “장기 에너지 수요전망치를 먼저 제시하고 이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가용한 에너지가 무엇인지에 대한 대안 모색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그런데 반대로 원전 비중 목표치를 제시한 것은 원전 자체가 목적이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에너지정책 방향이 재생에너지 공급을 확대하는 국제적인 흐름과 역행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환경운동연합은 “원전 비중이 늘어남에 따라 줄어든 것은 석탄 화력발전소의 발전 비중이 아니라 오히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라며 “세계가 장기적 안목으로 재생에너지를 강화하는 마당에 한국만 역행하고 있다”고 했다.
당장, 2050년까지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RE100’에 가입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이 부품을 납품받을 때부터 RE100을 요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장다울 그린피스 정책전문위원은 “RE100과 탄소국경세 등 글로벌 탄소 규제가 강화되는 현실에서 재생에너지 목표치를 사실상 하향 조정한 것은 수출 경쟁력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안보가 부각되는 만큼 안정적인 전력수급을 고려해 균형있는 에너지 정책을 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내연기관 자동차가 전기차로 바뀌는 등 전력수요가 많은 업종으로 산업구조가 재편되는 상황에서 하나의 에너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는 없다”며 “재생에너지 산업 생태계 활성화와 함께 원전의 역할도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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