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 사태: 비판 실종된 공동체는 어떻게 몰락해가나
시가총액 50조원이 증발된 ‘테라·루나 사태’가 초대형 사기 의혹 사건을 넘어 가상통화 업계 전반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한때 가상통화 시가총액 10위 안에 들었던 발행사 테라폼랩스는 수사 대상으로 전락했고, 그에 못지 않게 ‘큰손’으로 불리는 동종 기업들에서도 유사한 사고가 이어져 업계 전반이 신뢰의 위기에 봉착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연방준비위원회가 잇달아 금리를 올리면서 탈중앙화금융(디파이) 시장 전체가 된서리를 맞았다.
‘가장 민주적인 금융’을 표방한 탈중앙화금융 시장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전문가들은 테라가 겉으로는 탈중앙을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폐쇄적인 중앙집권 공동체’로 운영된 점을 지적했다. 관련 업계 종사자들도 “테라는 탈중앙화를 한 적이 없었다”며 “이참에 탈중앙화금융의 옥석을 가려야 한다”고 말한다. 테라 사태는 건전한 비판과 위험 신호를 묵살하는 공동체가 어떤 결말을 맞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금융권력에 대한 반발, 가상통화를 낳다
테라 사태의 맥락을 이해하려면 탈중앙화금융과 가상통화의 등장 배경부터 이해해야 한다. 수차례의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일각에선 강력한 중앙집권 정부와 중앙은행, 월가로 대표되는 금융권이 ‘화폐’에 관한 권한을 독점하는 데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디지털 금융기술 발전과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불신을 키웠다. 문제는 중앙집권적 권력 없이 화폐의 필수요건인 ‘신뢰’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국가권력이 ‘어디서나 같은 가치를 가지도록’ 담보해야 화폐로 통용될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리먼브라더스 사태 한 해 뒤인 2009년 발행된 디지털 화폐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은 중앙집권적 주체의 관리감독을 철저한 ‘분권’으로 대체했다. 특정 주체가 디지털 화폐의 정보를 독점한다면 신뢰를 담보할 수 없지만, 만약 모든 사람이 화폐의 거래 내역을 함께 나눠 가진다면 화폐의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였다. 모두가 같은 내용의 장부를 갖고 있다면 누군가 장부를 조작해도 금방 들통나는 원리이다. 전세계적으로 PC가 보급돼 있기 때문에 조작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분산 저장’ 매커니즘이 ‘블록체인’이다.
비트코인이 탈중앙적 화폐라는 아이디어를 현실에 구현하면서 업계도 성장하기 시작했다. 비트코인보다 더 ‘오픈 소스’에 가까운 이더리움이 나오고, 가상통화를 기반으로 하는 탈중앙화금융 ‘디파이’도 등장했다. 가상통화의 가치에 주목한 투자자들과 새 조류를 읽은 개발자들이 몰려들면서 ‘판’이 커졌다.
■투자 광풍에 올라탄 ‘자격미달’ 사업가들
탈중앙화금융은 2020년 컴파운드라는 플랫폼이 ‘이자 농사(Yield Farming)’ 열풍을 주도하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맞았다. 투자자들이 탈중앙화금융 생태계에 자산을 예치해 유동성을 공급해주고, 시스템은 그 대가로 고이율의 이자 수익을 제공하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저금리 기조가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 자산 투자 광풍 시대에 은행보다 훨씬 높은 이율을 보장한다는 탈중앙화금융으로 돈이 몰려들었다. 수백%대 이자를 약속한 서비스들이 등장했다.
시장이 급격히 팽창하자 ‘악덕 업주’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들은 탈중앙화금융의 기본 가치인 ‘투명성’을 도외시하고 폐쇄적으로 시스템을 운영했다. 분권과 정보공개 대신 ‘나를 믿으면 고수익을 약속하겠다’며 사람들을 현혹했다. 이들의 행각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과열된 투자 광풍에 묻혔다.
테라·루나의 발행사 테라폼랩스도 그 중 하나였다. 테라폼랩스 핵심 관계자들과 일부 투자사들은 테라 생태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비영리단체 ‘루나파운데이션가드(LFG)’를 구성했다. LFG는 테라 생태계 운영을 비밀스럽게 좌지우지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묵살하거나 조롱했다. 권도형 대표는 한 경제학자의 문제제기에 “나는 가난한 사람과 토론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율 19.6%의 이자 농사 시스템 ‘앵커 프로토콜’ 관리도 사실상 LFG가 독점했다. 이들은 시스템 붕괴 징조를 알면서도 투자자들에게 안정성을 홍보하다가 투자자들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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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폼랩스는 내부 개발자들에게조차 정보를 통제했다. 테라 초기 개발자로 앵커 프로토콜의 불안정성을 지적했으나 묵살당하고 퇴사한 강형석 스탠다드프로토콜 대표의 말은 당시 테라폼랩스 내부 분위기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대로는 시스템이 무너진다고 여러 차례 말했는데 제대로 전달조차 되지 않았고 권 대표는 답변도 하지 않았어요. 하도 안 들으니 결국 사무실에서 소리까지 쳤는데 돌아온 대답은 ‘너는 아이비리그도 안 나왔는데 어떻게 아냐’는 말이었죠.” 강 대표는 “탈중앙화금융은 자산에 관한 의사결정을 투표로 결정하는데, 회사 생활 당시 80%의 투표율은 테라폼랩스에서 온다는 이야기도 있었다”며 “말만 민주적이었지 규칙을 세워놓고 마음대로 다 고쳤다”고 했다. 가장 민주적인 금융 서비스를 표방한 탈중앙화금융이 가장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된 것이다.
■“우리가 옳다”는 식의 독선이 낳은 결말
테라 사태로부터 두 달이 지난 지금 피해는 업계 전체로 번지고 있다. 대형 탈중앙화 대출 플랫폼인 ‘셀시우스’에서도 지급 중단 사태가 벌어졌고, LFG의 일원이던 쓰리애로우즈캐피털은 파산 절차에 돌입했다. 셀시우스 역시 테라폼랩스처럼 코인을 일괄적으로 관리하며 투자자들에게 심각한 위험을 제대로 공지하지 않은 의혹을 받는다. 설상가상으로 미 연준이 저금리 기조를 버리고 잇달아 금리를 올리는 바람에 업계에 들어왔던 자금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가상통화의 ‘대장’ 격인 비트코인조차 올 상반기 가격이 60% 가까이 주저앉았다.
전문가들은 테라폼랩스 등이 탈중앙화금융의 기본 원칙을 저버린 것이 사태의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강 대표는 “테라는 탈중앙화금융이 아니었다. 이자율을 마음대로 결정하는 등 완전히 전산화된 중앙은행처럼 행동했다”며 “셀시우스도 ‘은행에서 벗어나라’고만 외쳤지 정작 운영 방식은 은행이랑 다를 바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일부 설립자들은 그저 탈중앙화금융이라는 흐름에 타서 돈만 받고, 정작 블록체인이 만들려는 구조를 완전히 잊거나 만들 실력도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탈중앙화금융은 투명성·민주성으로 자산 가치를 통제하는데, 이 원칙을 배반하는 순간 ‘통제장치 없는 사기극’을 막기 어려워진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탈중앙화는 단순히 이익을 나눠갖는 게 아니라 협동조합처럼 모든 코인 소유주가 경영에 참여하고 이익을 나눠갖는 것”이라며 “테라는 구성원들의 경영 참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권 대표의 개인 회사처럼 돌아갔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거래 당사자가 거래와 신원증명 등에 대한 주권을 완전히 갖는 ‘자기주권’ 등의 개선책도 연구되고 있다.
테라 사태는 비판과 위험에 눈을 감는 ‘우리만 옳다’는 식의 태도가 얼마나 위험한지도 보여준다. 강 대표는 “(최근 1~2년은) 시스템이 어떻게 내 자산을 보호할지 여부가 아니라 ‘돈 복사’라는 욕망이 지배했던 것 같다. 이 욕망이 권 대표 같은 이들을 만들었고 그들이 벌인 일은 끔찍했다”며 “이참에 탈중앙화금융도 옥석을 잘 가리고, 투자자들은 다시 ‘불장’이 오더라도 그런(위험한) 곳에 손을 주지 말았으면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권 대표를 한국의 일론 머스크로 칭송한 일부 매체와 위험성을 경고하지 않은 애널리스트들도 책임이 있다”면서 “협동조합처럼 돌아가는지 아닌지, 자산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의결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어떤 안전장치가 있는지 등을 잘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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