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급생 단체 채팅방 '험담' 봤더니 '디지털성폭력'이었다
연합뉴스 사건 기사로 다루며 모욕죄만 언급
'디지털성폭력' 본질 언급 않고, 학교 부실대처 못다뤄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이게 어떻게 험담인가요?”
피해자의 가족 ㄱ씨의 말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연합뉴스가 낸 '지인들에게 타인 험담, 자칫하면 '모욕죄' 처벌 받는다' 제목의 기사를 지목했다.
기사의 부제목은 '경찰, 단체 채팅방서 동급생들 험담한 고교생 7명 입건'이다. 기사는 “지인들에게 타인에 대해 험담을 할 경우 자칫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로 시작한다. “경기 군포시의 한 고등학교에서 재학 중인 A군 등 남·여학생 7명은 지난 4월 동급생 10여명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몇몇 학우들의 외모나 행실을 비하하고 욕설하는 등 험담을 지속했다”며 피해 학생의 학부모들이 A군 등을 고소했다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기사만 보면 친구들을 험담하고 욕설을 했다는 이유로 학생들이 고소를 당했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피해 학부모들이 보여준 채팅은 '단순 험담'으로 볼 수는 없는 내용이었다.
피해자 가족 측이 제공한 메시지 등을 종합하면 피해자가 없는 대화방에서 여학생을 향해 신체 일부에 성적 폭력을 뜻하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썼다. 가학적인 성적 표현으로 위협을 넘어 2차 피해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내용이다. 심지어 여학생 사진까지 올려놓고 성적으로 지칭한 표현도 썼다.
이는 '사이버 폭력' '디지털성폭력'으로 규정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 같은 대화방 내용으로 인해 피해자들과 가족들은 피해를 호소했으나, 학교에서 즉각 처분이 이뤄지지 않아 법적 대응이 이어지게 됐다.
“보통 험담이라고 하면 '쟤는 저렇게 말하는 게 별로다'라고 말한 정도로 이해되는데 아이들에게 성적인 내용에, 조롱, 비하, 혐오하는 발언들을 했다. 이걸 험담이라고 표현한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 제대로 취재를 안 해보고 기사를 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ㄱ씨의 말이다.
피해자 가족들은 “'자칫하면'이라는 제목과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는 기사 내용에도 이의를 제기한다. ㄱ씨는 “마치 실수를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으니 뒷담화 조심하라는 식으로 비친다. 피해자 시점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실수를 방지하라는 내용 같다”고 지적했다.
ㄱ씨는 해당 기사를 쓴 연합뉴스 기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ㄱ씨는 메일을 통해 가해자가 전원 남성이라는 점을 짚은 뒤 “채팅방 안에서는 모욕 뿐 아니라 여성을 혐오하고 비하하는 성적 내용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고 반박했다. 구체적인 발언을 언급한 다음 “이 말들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증거 사진이 필요하시면 연락주십시오. 다소 기사의 내용이 사실보다 많이 부족하여 글을 드렸습니다”라고 밝혔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수사기관 취재 결과 '모욕죄'로 송치를 한 것이고, 성희롱적 내용이 없다는 (수사기관측) 판단을 듣고 관련 내용을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피해자 가족이 보낸 메일과 관련 이 기자는 “해당 메일을 확인한 바 없어 당사자측 입장을 파악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기사가 나간 후 한국경제TV 등 다른 언론에서도 대동소이한 기사가 나왔다. ㄱ씨는 “이 문제가 초기에 제대로 보도됐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연합뉴스 등 언론이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지 않으면서 '중요한 문제'를 외면한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와 가족들은 사건 자체 못지 않게 '학교의 부실한 대처'를 문제로 보고 있다. 이는 피해자와 가족들이 직접 언론에 제보하고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올린 이후인 6월 말에야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단톡방 디지털성폭력 등으로 인한 '학폭'이 '신고'된 시점은 지난 4월 27일이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50일 가까이 가해자와 같은 반에서 생활해야만 했다. 이 기간 동안 피해자들은 학교에 피해를 호소했지만, 학교는 '지속적 폭력' '전치 2주 이상 상해'가 없는 한 분리조치는 어렵다고 했고, 피해 학생들은 함께 수업을 받아야 했다. 상황을 모르는 교사들이 같은 조에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을 한 조에 묶는 일도 있었다.
한 피해자의 삼촌은 국회동의청원을 통해 “억울한 사이버 폭력 피해자 학생들을 도와 달라”고 했다. 그는 학교장이 피해자를 긴급하게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가해자 출석정지 등의 조치를 취했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청원에 따르면 밝혀진 피해자 규모는 학생 28명, 교사 6명이지만 학교는 다수의 피해자 및 가족에게 이를 알리지도 않았다. '학교폭력심의'도 사건 두달 후인 6월27일에서야 열렸다.
이 학교의 교장은 지난 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분리조치, 출석정지 등은 무조건적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사안에 따라 요건에 부합하는지 판단을 한다”며 “상급 기관의 자문을 받고 이를 종합해 내린 결과”라고 설명했다.
한편 피해자측은 공론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피해를 입고 있다. 기사 댓글과 인터넷 커뮤니티 글 등을 통해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가 이어진 것이다. 피해자 가족들에 따르면 '사건을 구체적으로 다룬 후속 기사를 요청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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