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순택 개인전, 17일까지 학고재 갤러리에서

이한나 2022. 7. 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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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광 사진 속에서 모순된 현실을 읽다
어둠 속에 묻혔더라도 세부는 남아있다
현실참여 작가의 초현실적 사진
흑백논리 만연한 사회에 질문
검은 깃털-오쇠리(2016). 장기보존용 잉크젯 안료프린트, 162x108cm [사진 제공 = 학고재]
거대한 괴물이 일어서는 것 같다. 역광에서 오는 흑백의 대비가 강렬하다. 가까이 다가가니 검은 부분 안에서 미묘하면서도 다양한 명암과 형체가 올라온다.

국내 다큐멘터리 사진을 대표하는 작가 노순택(51)이 경기도 부천시 중구 고강동 오쇠리에서 2016년에 찍은 사진 '검은 깃털-오쇠리’이다. 김포공항 인근 소음에 시달리던 주민들의 집단이주로 폐허가 된 이 마을에 전신주만 남았다. 문명의 이기인 전기를 이어주던 이 기둥을 타고 야생 덩굴식물이 자라 거대한 식용 식물 같다. 인간이 떠난 자리를 장악한 자연의 반격을 보여주는 듯 싶다.

검은 깃털-세종문화회관 옥상(2017). 장기보존용 잉크젯 안료프린트 108x162cm x4 [사진 제공 = 학고재]
노순택의 개인전 '검은 깃털'이 서울 학고재 갤러리에서 17일까지 열린다. 작가가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작업한 '검은 깃털' 연작 중심으로 19점을 선보였다.

작가는 사진에서는 피해야 할 원칙 중 하나인 역광을 십분 활용했다. 지네나 파리 같은 작은 미물과 인물의 뒷모습 등 우리가 현실에서 놓쳤던 장면들이 강렬하고 새롭게 해석됐다. 현실참여 작가의 초현실적인 사진이다.

노순택 작가는 "십수년 전부터 해왔던 작업이지만 특정 스타일을 한꺼번에 모아 보여주고 싶었다"며 "비현실적이고 연극적인 느낌을 주고 싶어서 낮에도 플래쉬를 터뜨려 사진을 찍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배경을 날리고 흑백 대비가 또렷한 역광 사진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흑백논리 혹은 극단주의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는 장치다. 작가는 작업노트에서 "세부가 어둠에 묻혔다 해서, 세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깃털이 윤곽에 갇혔다 해서, 무게가 달라진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백족도-남풍리(2019). 장기보존용 잉크젯 안료프린트, 81x54cm x5 [사진 제공 = 학고재]
전시장에서는 특히 4~6장이 함께 배치된 연작들이 흥미롭다. '백족도-남풍리'(2019)는 흑백 비율이 다른 단색화 같은 작품 4점이 나란히 진열돼 절묘하다. 다가가니 나무 창틀 사이 그늘에 매달린 지네가 있다. '백족'은 지네의 한자어다. 작가는 "같은 높이에서 수평으로 조금씩 이동하며 찍었다"며 "어찌 보면 흑백을 나누는 양극단이 아니라 이도 저도 아닌 곳에서 우리네 삶이 펼쳐져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검은 깃털-시흥(2015). 장기보존용 잉크젯 안료프린트, 162x108cm [사진 제공 = 학고재]
'검은깃털-시흥'(2015)은 경기도 시흥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드릴링머신이 바스라지며 흙 한줌이 떨어지는 장면을 포착했다. 수직 이미지가 마치 9·11테러 때 뉴욕 무역센터에서 몸을 던져 탈출하려던 이들을 연상시킨다. 각종 갈등과 폭력의 현장이 전혀 뜻밖의 장면에서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2009년 당시 야당 당수들(정세균·강기갑·문국현·노회찬)이 연설하는 뒷모습을 역광으로 찍은 연작도 십수년 뒤 너무도 달라진 이들 행보에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중간접착제-대학로 야당당수들(정세균 강기갑 문국현 그리고 노회찬)(2009). 장기보존용 잉크젯 안료프린트 162x108cm x6 [사진 제공 = 학고재]
정치학을 전공하고 사진작가가 된 노순택은 분단체제에서 파생된 정치적 갈등과 폭력 문제를 사진과 글로 표현해 왔다. 지난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 오늘의 작가에 선정됐고, 2009년 독일 미술전문출판사 하체 칸츠에서 출간한 사진집으로 '올해의 독일 사진집' 은상을 수상했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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