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어진 나무 틈새에서 나를 본다

이한나 2022. 7. 5. 14:5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나무 조각' 나점수 개인전
통의동 아트스페이스3
시간 품은 나무의 존재론
무명(無名)-정신의 위치, the position of Being Nameless, 212x10x15cm(좌) 212x10x16cm(우), coloring on the wood, 2019 [사진 제공 = 아트스페이스3]
벌어진 나무 틈새는 매우 좁지만 깊은 어둠을 품었다. 그 어둠을 조용히 응시하는 시간 속에서 차분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습도나 온도에 예민한 나무로 조각하는 나점수 작가(56)의 작품 '무명(無名)-정신의 위치'(2020)다. 작가는 작품 재료가 될 나무들을 경기도 양평 작업실에 야적하고 1년을 지켜본다. 어느날 문득 나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쩍 갈라진 나무는 여름 장맛비와 겨울 눈을 거치고 벌레의 집도 되는 등 계절의 변화를 품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제시할까 작가는 고민했다. 그 산물인 목조각 20여점을 모은 개인전 '무명(無名)-정신의 위치'가 16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의동 아트스페이스3에서 열린다.

무명(無名)-정신의 위치, the position of Being Nameless, 53x30x20cm, coloring on the wood, 2020 [사진 제공 = 아트스페이스3]
작품명과 전시 제목에 쓰인 '무명'은 단순히 이름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름으로 규정될 수 없는 것들'을 의미한다. 작가는 조각이 위치한 공간 속에서 관객이 작품을 경험하고 자신만의 의미(정신의 위치)를 찾기 바란다고 전했다.

층고가 높은 전시장에 어색할 정도로 낮게 걸린 조각들은 관람객들 눈높이에 맞춰 작품을 감상하게 한다. 나무를 가늘고 길게 파내 어둠의 공간을 만든, 수직 이미지가 압도적이다. 조각 거장 알베르토 자코메티 작품도 연상시킨다. 작가도 조각에서 존재의 근원을 찾고 있다고 했다.

무명(無名)_정신의 위치, the position of Being Nameless, 255x35x16cm, coloring on the wood, 2022 [사진 제공 = 아트스페이스3]
작가는 "자코메티 조각은 흙을 붙이면서 동시에 떼낸다. 그리고 떼어낼 수 없는 어느 지점에서 멈춘다. 존재 자체의 가장 마지막에 남아있는, 가느다란 형태에서 멈추는 것이다"며 "나는 내부에 공간을 잡는데, 바깥에 얇은 판이 있어야 내부 공간이 어둠의 무게로 다가오게 된다. (작품의 어두운 부분이) 일종의 에고(자아)의 그림자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길쭉하게 패인 홈은 나무 표면에 선으로 그어진 형상이 아니다. 먼저 홈을 파낸 뒤 홈의 양쪽 면을 깎아 패인 공간의 입체감을 드러낸다. 양쪽 면의 두께는 목재의 수축과 팽창을 고려해 작품이 변형되지 않는 최소한의 범위다. 20년 이상 목조각에 전념했기에 그 뒤틀림은 예측가능하다.

나점수 작가 [이한나 기자]
작가는 철저히 혼자 작업한다. 톱으로 공간을 가를 때면 각도를 정확히 잡고 자세를 고정한 채 강한 믿음으로 내려친다. 초집중의 순간이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추상 조각이지만 젊은 시절 인생의 답을 찾으러 세계 오지를 탐험했던 작가 경험이 담겼다. 신장 위구르에서 마주친 미이라, 에디오피아 교회의 사제들 해골 등 죽음과 대면한 경험에서 역설적으로 살아있음을 강하게 자각했다고 한다.
나점수 작가 [이한나 기자]
작가는 "예술가는 관람객들에게 무언가를 던지고 묵상하는 사람"이라며 "관람객은 모르는 상태로 와서 이 조각을 보면서 빛을 자각하고 정서를 느끼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마치 단색화의 입체 버전처럼 벽에 액자처럼 걸린 조각들도 함께 제시됐다. 고즈넉히 머무는 공간을 세련되게 제시한다.

작가는 중앙대학교 조소과 학·석사를 마치고 1998년 중앙미술대전 특성 등을 수상했다. 지난 2016년에는 김종영미술관에서 올해의 작가로 뽑혀 전시한 바 있다. 작가 작품은 장욱진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포항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이한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