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맙시다"..세종시 공무원 극단적 선택에 동료들 공분

정재훈 입력 2022. 7. 5. 14:42 수정 2022. 7. 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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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힘들면 안 하면 돼요”가 세종시의 조직문화 수준을 보여줬습니다. 참 자랑스러웠습니다.
이 조직은 희망이 없다는 것을 온 국민에게 보여줬습니다.
-세종시청 내부게시판 (2022.06.29)


지난달 26일 세종시 공무원 28살 A 씨가 자택에서 숨졌습니다.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A 씨에 대해 유족들은 격무와 과로, 그리고 직장 내 괴롭힘 때문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2월부터 석 달간 A 씨는 매달 50시간 넘는 초과근무를 해왔습니다. 동료 공무원들도 세 사람 몫을 떠맡아 일했다고 말합니다. A 씨가 지인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는 과장에게 깨졌고 앞에서 울음을 터트리기까지 했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본인이 힘들면 안 하면 돼요”

A 씨가 지목한 과장을 찾아가 물어봤습니다. 과장 B 씨는 과중한 업무나 괴롭힘은 없었다고 해명하며 직원들이 맡은 업무인 ‘사무분장’ 문서를 꺼내 적절히 배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말로 서류상으로는 모든 업무가 공정히 배분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다른 사람에게 적혀있던 업무를 A 씨가 맡은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사업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다시 물어봤습니다. 처음은 부정하던 과장 B 씨는 A 씨가 본인이 맡은 업무 외에도 다른 사람의 업무를 맡아 일을 했다고 다시 말을 바꿨습니다.


초과 근무가 몰렸던 점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과장은 다른 사람들도 그만큼 일을 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본인이 관리해요, 시간 외 근무 일정을.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힘들면 안 하면 돼요.”라고 말했습니다.


■휴직하면 승자... 남은 사람은 죽도록 일

사건 이후 세종시 내부에서 공분의 목소리가 들끓었습니다. 세종시 직원 내부게시판에는 지난달 29일 “휴직한 사람이 승자고 남은 사람만 죽도록 일하고 일하는 사람에게만 일을 몰아주는 행태가 비극을 낳았다”는 게시물이 올라왔습니다.


세종시 동료 공무원들은 이 게시물에 130여 개가 넘는 답글을 달았습니다. 특히 ‘본인이 힘들면 안 하면 된다’는 세종시 과장의 인터뷰에 대해 공분했습니다.

“명언을 남기셨는데 이젠 따라줍시다. 힘들면 안 하면 된다, 맞는 말씀하셨네요. 과장님 업무가 총괄이신데 직원들이 업무 과다로 못한 일은 과장이 마무리 하시겠다는 거 아닌가요. 그동안 그 몹쓸 책임감에 우리가 말을 안들은 것뿐.”

“책임감으로 힘들어도 묵묵히 일 해왔던 직원 격려와 위로는 못 할망정 힘들면 안 하면 된다... 이제부터 우리 직원들은 버겁고 고된 일 생기면 못한다고 하시고 칼퇴합시다.”

“본청 들어가는 게 두렵습니다. 일도, 사람도 힘든 게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경악하지만, 관리자 중에 B 과장님처럼 생각하시는 분 많으실 걸요. 저번에 과로로 돌아가신 직원분 언급하시면서 책임자로서 뭔가 얘기를 하실 줄 알았는데 자기 몸은 자기가 챙겨야 합니다. 이러시고.”

“ㅇㅇㅇㅇ과에서도 '그러면 일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던 직원이 생각나네요. 지금도 ㅇㅇ과에 있던데.”

“B 과장님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세종시라는 조직이 이렇게 망가졌다는 것을, 괜히 내 아까운 인생만 여기서 허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았어요! 의원면직(사직)한 후 어떤 일을 할지 이제 슬슬 찾아봐야겠네요!”



■내팽개쳐진 업무... 책임은 모두 말단

격무와 과로, 그리고 세 사람 몫을 떠안았을 수밖에 없었던 원인에 대해서도 성토하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아무리 결원이 생겨도 관리자들은 업무를 안 가져간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직원들끼리 업무를 나눠 가진 뒤 업무 과부하에 문제가 터지면 오로지 담당자가 책임을 떠안는 구조라고 지적합니다. 또 다른 공무원은 업무 분담에 대한 문제점을 지목했습니다. 시청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거꾸로 일을 안 하는 게 답이라는 자조 섞인 글도 눈에 띕니다.

“인력공백이 생겨 업무분장을 다시 하자고 모이니 다들 휴직 낸다고 합니다. 소리지르고 나갑니다. 결국은 배짱부리는 사람들의 뜻대로 업무분장이 되었습니다. 윗사람 뿐 아니라 옆직원들도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중앙부처에서 10년 일하고 세종시 전입자로 있어 보니까 여긴 답이 없어요. 일을 좀 한다면 불러다가 뺑뺑이 돌리고 계장과 과장 승진에 기계처럼 써먹다가 근무 평가하고 승진할 때는 한직에 있는 지역사람 뒤에서 챙기고 있더군요.”

“전입자로서 바라본 봐 세종시는 인력관리 조직관리 개판 오 분 전입니다. 이건 광역도 아니고 조직만 좀 커진 시·군보다 못한 곳입니다. 저도 결원으로 1년을 X 같은 곳에서 버텨왔더니 몸과 마음이 다 지쳤습니다. 내년에 휴직 내려고요. 저도 위너(승자) 놀이 좀 해봐야죠.”

“세종시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냥 일 안 하고 못하면 돼요. 그럼 알아서 일을 최소한으로 주거나 좋은 자리에 보내주죠. 힘든 자리 주면 그냥 휴직 들어가면 되고 공백 메꾸느라 매일 초과근무하며 애써서 일해도 근무평가 승진은 언제나 서열순.”

■진상규명과 업무개선

세종시 공무원들은 이 비극에 대해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상급자가 하급자만을 평가하는 구조를 벗어나 다면평가제도를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일정기준 이하로 평가되는 자질 없는 간부들, 윽박지르고 핀잔주고 결재는 안 하시고 각종 보고서 자기가 고칠 생각 안 하시고 만날 고쳐오라는 간부들 등에게는 일정 기간 보직을 박탈하고 일반 직원으로서 업무를 하는 제도 같은 것을 도입하면 좋겠습니다.”

특별전담반(TF팀)을 구성해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많았습니다. 같은 세종시 공무원으로 구성된 감사위원회 조사로는 진상규명이 힘들 수 있다는 겁니다. 위에 올라온 글처럼 인력 운영은 시·군보다 못하다는 평을 내리면서 재발 방지를 위해선 인력관리와 조직관리를 개선하라는 요구도 빗발쳤습니다. 이번 기회에 갑질 신고를 대대적으로 받자는 이야기도 오갔습니다.

이에 대해 세종시 운영지원과에 물어봤습니다. 운영지원과 측은 “세종특별자치시가 광역지자체 업무와 기초지자체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다 보니 직원들 사이에서 업무량이 많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육아휴직을 지속해서 신청하는 사례 등 결원이 110여 명이나 발생하고 있다. 타 기관 전입, 신규 채용을 통해 결원을 해소하려 한다”고 답변했습니다. 또, 공무원 평가제도에 있어 다면평가는 검토하지 않고 있으며, 인사 후속조치는 감사위원회의 감사결과 이후에나 진행될 예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와 관련해 정의당 세종시당이 논평을 냈습니다. 정의당은 숨진 A 씨가 전입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3월에 매주 16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했고, 단순 계산으로도 매일 밤 10시가 되어서야 집에 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과중한 업무에 대해 지적했습니다. 특히 해당 부서장인 B 씨가 평소 힘들어하는 모습을 느끼지 못하고 힘들면 일을 안 해도 된다는 식으로 이번 사건에 대해 해명했다며, 근무여건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결과를 개인이 버거운 일을 버티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일로 치부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정의당은 또, 세종시 조직문화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며, 사람을 공무를 수행하는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세종시 공무원들은 말합니다.

“일이 터질 징조들은 많았다. 그러나 수년간 조직이 묵인하고 외면했을 뿐. 또 외면하면 또 터지겠지. ”
“사인이 괴롭힘이나 업무 과중이라면 우리는 모두 간접 살인자.”
“계장님들, 과장님들, 국장님들 이번 기회에 스스로를 돌아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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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기자 (jjh119@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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