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판 중대재해법으로 기소된 기업 절반 부도..영세 중소기업 처벌 몰려"

최정훈 2022. 7. 5.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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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보건 강조주간 세미나서 '기업 과실치사법' 英전문가 발표
"영국 '기업 과실치사법' 처벌은 대부분 영세 중소기업 위주"
"법 자체가 산재 사망사고 줄인 효과 있었다 장담 어려워"
"유족 위로 프로그램 개발해야..직접 소통체계 구축 필요"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올해 1월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과 유사한 영국의 기업 과실치사법으로 기소가 된 기업의 절반이 부도가 났다는 영국 전문가의 주장이 나왔다. 산재 사망사고로 기업을 직접 처벌할 경우 로펌 등의 대응을 적절히 할 수 없는 영세 중소기업에 처벌이 몰리는 게 현실이라는 설명이다.

빅토리아 로퍼 영국 노섬브리아대(大) 교수가 5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산업안전보건 강조주간 행사 세미나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5일 빅토리아 로퍼(Victoria Roper) 영국 노섬브리아대 교수는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산업안전보건 강조주간 행사 세미나에서 “영국의 기업 과실치사죄를 분석해봤을 때 기소된 기업들의 절반이 부도가 났다”며 “이 법을 통해 기업들이 고사하거나 경제에 해를 가해서는 안 되지만 일부 기업은 영세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영국 노섬브리아대 로스쿨에서 재직 중인 빅토리아 로퍼 교수는 영국의 기업 과실치사 및 기업살인에 대한 법률 분야의 박사다. 또 호주 빅토리아주(州) 등에서 기업 살인법 자문관과 잉글랜드 및 웨일즈 법률학회 교육 및 훈련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영국은 2007년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기업 과실치사법)이 제정된 뒤 시행되고 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부주의로 사망사고를 야기한 회사나 기타 법인 등 조직에 형법상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으로 올해 1월 우리나라에서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과 유사한 법이다.

로퍼 교수는 기업 과실치사법 제정 전에도 이론상 중과실치사 혐의로 기업에 유죄를 선고할 수 있었지만, 기업이 실제로 유죄를 받기는 매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근무 중 근로자가 사망하는 비율이 높았고, 이러한 사고 대부분은 사전 예방이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기업의 명백한 책임에도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이 법 제정의 배경이 됐다는 게 로퍼 교수의 설명이다.

기업 과실치사법의 주요 벌칙 규정은 무제한 벌금형으로 벌금 산정과 관련된 양형 기준은 조직에 매출액에 따라 결정한다. 14년 동안 유죄 판결은 33건, 부과된 벌금 중 최고 수준은 200만 파운드(한화 약 31억원)이다. 부과되는 벌금 액수는 점점 높아지는 추세고, 유죄 판결을 받은 조직은 전부 기업이었다.

그러나 유죄 판결을 받은 기업 대부분은 영세 중소기업 위주였다고 로퍼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영국에서 이 법이 받는 비난 중 하나는 영세 기업에 적용하기 쉽고 대기업에는 적용은 어렵다는 점”이라며 “대기업은 소송할 때 풍족한 자원과 유능한 변호사 데리고 유리한 판결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로퍼 교수는 이어 “다만 이 법의 취지는 고위 임원이 안전에 관해 의지를 가지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라며 “임원진에서 안전 절차와 규정을 마련하면, 안전보건체계가 잘 구축되어 있으면 기업 과실치사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특히 로퍼 교수는 이 법이 영국의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줬는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법이 도입된 뒤 산재 사망사고 비율은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지만, 산업 구조의 변화 등의 다른 요인의 영향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영국은 건설업 중심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바뀌면서 사망률 감소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면서도 “기업과실치사법이 도입되면서 용납되지 않는 기업 행동에 대한 인식을 제고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다만 로퍼 교수는 “법 도입 초기 산업안전 보건 기준을 준수사는 게 경제적으로 높은 비용을 초해한다는 오해가 있었다”며 “현재는 산재 예방을 하는 게 사후에 사망사고 일어났을 때 보다 비용 절감된다는 사실을 기업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로퍼 교수는 산재 사망사고의 유족에 대한 의례를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산재 사망사고의 경우 유족들은 기업 과실치사로 기소가 될 것으로 기대하다 기소가 되지 않으면 정신적 고통을 받는다”며 “유족에게 언론을 통해서 기소 등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하는 것보다 직접 소통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정훈 (hoonis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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