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휴수당 달라니 "차도 안 타면서 주유수당 왜?"라는 병원들
30년 경력 인정 못 받고 신입 월급
연차·휴일수당 등 임금체계 미비
방사선사에게 투약 준비시키거나
조무사에 X레이 촬영 맡기는 불법도
"작은 병원 원장님은 '신'..못 따져"
“같은 의료인으로 대우한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요?”
방사선사 송아무개(28)씨는 최근 첫 직장을 그만뒀다.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한 작은 동네 의원에서 일한 지 2년, 송씨의 업무는 근로계약서 없이 시작됐다. ‘그래도 기본적인 법은 지키겠지’ 생각했건만, 송씨의 근무 환경은 ‘법 밖’에 있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6일 근무는 기본이었다. 노동절이나 선거일 등 ‘빨간 날’ 출근에, 추석과 설 연휴를 제외하면 1년에 개인 휴가를 쓸 수 있는 날은 여름휴가 3일이 전부였다. ‘수당’도 없었다. 쉬지 않고 일하며 환자들의 엑스레이를 찍은 결과는, 직업병인 허리 디스크로 돌아왔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지난 4월15일부터 5월17일까지 대형병원(500병상 이상)을 제외한 중소 병·의원 에서 근무하는 방사선사(50%), 간호사·간호조무사(26%), 임상병리사·물리치료사·작업치료사(15.5%) 등 4058명을 대상으로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5일 발표했다. 2022년도 1분기 요양기관 종별 인력현황을 보면, 송씨처럼 중소 병·의원에 전체 의료기관 간호보조인력 중 56.1%가 일하고 있다. 중소 병원 11만5716명(11.9%), 요양병원 10만6139명(10.9%), 의원 21만4984명(22.1%), 정신병원 1만3270명(1.4%) 등이다. <한겨레>는 8~70명 규모 병·의원의 전·현직 의료노동자 4명에게 근무 현실을 들어봤다.
휴일수당·연차 ‘개념’도 없어
모든 사용자는 근로계약서를 작성·교부해야 하지만 송씨가 함께 근무한 7명의 직원 중 근로계약서를 체결한 이는 없었다. 수당이나 연차 등에 대해 문의하면 원장은 ‘네트제’ 계약이기 때문에 해당이 안 된다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네트제는 고용주가 4대 보험 및 소득세를 대신 부담하고 세후 금액만으로 계약하는 변칙적 급여 제도인데, 수당이나 퇴직금 산정에 문제 되는 경우가 많다. 2021년 11월부터 임금명세서 교부가 의무화됐지만, 송씨는 이 또한 받아본 적이 없다.
보건의료노조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거나 교부하지 않는 경우’가 36%에 달했다. 응답자 중 16.3%는 ‘임금명세서를 받지 못한다’고 답했다.
기본적인 임금 체계도 갖춰지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다. 경력 30년 차 간호조무사 이아무개(56)씨는 작년 3월 직장을 옮기며 신입 수준의 월급을 받고 ‘10개월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계약이 끝난 올해 1, 2월에는 일이 적다는 명목으로 쉬라더니 다시 “도와달라”고 했다. 나머지 2개월을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근무했는데, 1년간 일하면 줘야 하는 퇴직금 정산을 하지 않기 위한 꼼수였던 셈이다. 아르바이트로 일할 때 주휴수당 등을 왜 안 주냐고 물어보자 병원 행정직원은 몰라서 그러는 건지 모르는 척을 하는 건지 “차도 안 타시면서, 주유수당은 왜요?”라고 되물었다. 근로기준법에서는 1주일에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을 보장해 주휴수당을 지급하도록 하고, 단시간근로자도 1주 동안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이상일 때는 주휴수당을 주도록 한다.
보건의료노조 조사 결과 임금이 생활임금(2021년 기준 서울시 연2684만616원) 미만 수준인 응답자는 13.1%에 달했다. 2000만원대 연봉은 의원급에서 가장 많았다. 동네 의원의 수입이 적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지만, 보건복지부가 2019년 12월 발표한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를 보면, 의사 중에서도 동네 의원 의사의 월평균 수입이 1510만원으로, 상급종합병원(977만원), 종합병원(1166만원) 의사보다 수입이 많았다.
유산한 직원도 하루 쉬고 근무
중소 병·의원 노동자들은 ‘쉬지도 못하고’ 일했고, 그러면서도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 근로기준법상 휴일근무의 경우 8시간 이하 근무 땐 통상시급의 150%, 8시간 초과분에 대해선 200%를 가산해 지급하게 돼있다. 하지만 보건의료노조 실태조사 응답자 4058명 중 40.7%는 ‘휴일근무수당을 지급받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응답자 중 절반에 가까운 48.6%는 ‘휴게시간 사용에 제약이 있다’고 답했다.
직원 50명 규모의 정신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이아무개(53)씨도 매일이 전쟁이다. 2명의 간호사가 같은 층 100명의 환자를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씨가 일하는 병원은 쉴 만한 휴게실도, 탈의실도 없다.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어요. 환자들 사이에 빈대가 옮겨 다녀서, 옷은 비닐에 꽁꽁 싸서 화장실 옆 수납함에 보관해놓습니다.”
환경이 이렇다 보니, 코로나19 당시에는 100명의 환자 거의 대다수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 병실을 밖에서 열쇠로 잠가 놓고, 약을 먹이고 밥을 가져다줄 때마다 병실에 들어갔다. 차라리 빨리 코로나19에 걸려서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감염 뒤에도 이씨는 온전한 휴식을 보장받지 못했다. 병원은 격리 기간에 이씨가 본인의 오프(휴일)를 사용하게 했다. 유급휴가를 받지 못한 노동자는 국가에 ‘코로나19 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지만, 병원은 “쉬는 동안 월급을 깎은 적이 있냐. (코로나19 지원금) 신청을 하면 쉰 날만큼 월급을 깎겠다”며 지원금 신청도 못하게 했다. 출산·육아의 영역에서도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기도 하다. 응답자 중 14.8%는 ‘출산휴가를 보장받지 못한다’, 20%는 ‘육아휴직을 보장받지 못한다’고 답했다.
의료진 불합리한 처우는 ‘환자 서비스’ 저하로
의료인력에 대한 부당한 처우는 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 송씨는 “작은 병원에서는 직역간 구분 없이 업무를 나눠 맡는 일이 흔하다”고 설명했다. 방사선사인 송씨는 주사 준비를 돕는 업무까지 해야 했다. 어쩌다 송씨가 자리를 비우면 다른 직군 직원이 송씨 대신 엑스레이를 찍기도 했다.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는데, 주사 환자를 위해 약을 타놓는 일을 했어요. 주변 병원에서는 그렇게 하다가 실수가 생겨서 환자가 죽기 직전까지 갔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불안했지만 “목소리를 내면 잘리니까” 시키는 업무를 거절할 수 없었다. 간호조무사 ㄱ씨는 “개인 병원들은 원장님이 거의 ‘신’급”이라며 “말을 하면 법이 되기 때문에, 부당하다 싶어도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열악한 근무환경에, 이직률도 높았다. 송씨가 일하는 2년 동안 일하며 동료가 4명이나 바뀌었다. 사람이 계속 바뀌다 보니 일의 효율도 떨어졌다.
임금 체계 개편 시급
<한겨레>가 인터뷰 한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안정적인 임금 체계와 근속 인정 시스템을 만드는 게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간호조무사 ㄱ씨는 “개인 병원은 특히 노동력을 착취 당하고, 그만큼의 보상을 못 받는 수준”이라며 “여전히 월급 150만원 공고도 많다. 노조 있는 병원과 없는 병원, 개인 병원과 종합 병원의 임금 격차를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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