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에 모기향" 사랑벌레와의 전쟁
상인 "벌레 들어갈라" 노심초사
시민 "방역해도 계속 나와"
당근마켓엔 퇴치법 게시글도
"국내 우단털파리로 자생종 추정
약 치는 등 방역만이 능사 아냐"
“출근 후 새 일과가 스프레이 뿌리고 앞치마 털기예요. 기어 다니는 벌레 보고 좋아할 손님이 어딨어요. 요즘 안 그래도 힘든데 벌레까지....”
4일 헤럴드경제가 찾은 서울 은평구 신응암시장. 반찬가게를 하는 60대 김모 씨는 대화 중에도 불판에 앉은 ‘사랑벌레(러브버그)’를 치우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서울 은평구와 고양시를 중심으로 1㎝도 되지 않은 검은 모양의 벌레떼들이 갑자기 출현하면서 상인과 주민 등 시민들이 일주일 가까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사랑벌레는 파리과의 한 곤충으로 짝짓기를 하는 두 마리가 함께 공기 중에 붙어서 날아다녀 이런 별칭이 붙었다.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사랑벌레가 무더기 돌발 출현하면서 시민들은 혼란 속에 사랑벌레와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다.
인근 대림시장에서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탁명화 씨는 “진열장 안 작은 틈새로도 벌레가 들어간다”며 “손님들도 이제 저 벌레를 알아볼 지경”이라고 말했다. 탁씨는 모기향을 두고도 대화 내내 파리채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열어둔 불판에 떡볶이 등 분식류를 파는 이모(51) 씨는 “폭염 속 불 앞에서 요리하는 일도 더운데 계속 서 있으면서 벌레까지 잡아야 하니 신경이 너무 쓰인다”라고 토로했다.
사랑벌레는 은평구 뿐만 아니라 인근 서대문구까지도 내려오며 시장·단독주택·아파트를 가리지 않고 있다. 아침마다 불광천에 산책하러 나가는 주민 도윤선(72) 씨는 “새벽 6시에 나갔는데 안경에도 사랑벌레가 붙었다”면서 “새까맣게 날아다니는 벌레들이 현관 앞문을 열면 기다렸다는 듯이 안으로 들어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은평구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40대 시민 이연화 씨는 “단지 전체가 3번 방역을 했는데도 어디선가 또 들어온다”면서 “식초를 이용해 자체 스프레이를 만들어 뿌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런 탓에 동네 기반 중고거래 앱인 당근마켓에는 “모기향을 피우면 괜찮다” 등 ‘러브버그 퇴치법’ 게시글까지 등장했다.
은평구청에 따르면 지난 3일까지 1000여건의 사랑벌레 관련 민원이 접수됐다. 은평구 관계자는 “지역주민과 구청 직원 등 100여명이 1일부터 긴급 방역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상인들에 따르면 구청·보건소 등의 방역이 골목골목과 시장 내부까지 이뤄지지는 못하고 있다.
사랑벌레는 다행히 인간에게 해를 가하는 곤충은 아니며 오히려 생태계에 이로운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한호연 연세대 생명과학기술학부 교수는 “(사랑벌레는) 땅속에서 유기물을 먹고 자라다 비 등이 오면 한꺼번에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이 유기물을 분해해 줘야 토양 형성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 교수는 “파리들은 몇 년에 한 번씩 대발생하는 경우도 있다”며 “또 반복될지에 대한 예측은 어렵지만 너무 오래 지속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은평구 일대 산 등 생태계 균형이 깨졌다며 방역이 능사가 아니라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한영식 한숲 곤충생태교육연구소 대표는 “(사랑벌레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일종의 마이너 종인데 대번식할 수 있는 기후 환경에 이르렀다는 의미”라며 “한 가지 종류가 너무 많이 생긴다는 건 ‘생태계의 평형’이 깨졌다는 건데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무조건 이 벌레를 잡겠다고 약을 치며 다른 천적까지 사라질 수 있고 또 다른 돌발 생물의 대발생도 가능하다”고 우려했다.
사랑벌레의 정체가 국내 있던 자생종이 온도 변화 등 환경이 달라지며 급증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박종균 경북대 곤충생명과학과 교수는 “국내에 기록된 적이 있는 계피우단털파리 또는 우단털파리로 추정이 된다. 가뭄 지속 후 고온 다습이 되는 시기가 이 곤충의 최적 발생기로 된 거 같다”며 “이런 대발생은 기후변화로 인해 자주 일어날 소지는 있다”고 말했다. 이어 “태풍 등 날씨 변동으로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향후 돌발생물로 인한 국민 혼란을 막기 위해 범국가적인 대책위원회 등을 꾸릴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희량 기자
hop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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