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 에너지의 귀환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일시적인지, 근본적 변화인지에 촉각
(시사저널=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2021년 11월 영국에서 개최된 제26차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6)의 핵심 주제는 석탄화력발전의 단계적 폐지 및 관련 투자 중지 서약이었다. 대표적인 석탄 소비국인 폴란드와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40개 이상의 COP26 참가국이 석탄화력발전소의 단계적 폐지와 신규 건설 중단이 명시된 COP26 협정에 서명하는 것으로 이 의지는 구체화됐다. 서명에 참가한 국가들은 자국 내외의 신규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투자를 지양할 것을 약속했다. 아울러 선진국은 2030년대, 개발도상국은 2040년대까지 석탄화력발전을 중단하겠다는 목표 시한까지 설정했다.
영국에서는 마지막 석탄화력발전소가 이르면 올해 문을 닫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의 대형 석탄기업인 피보디 에너지(Peabody Energy)는 5년 만에 두 번째 파산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독일의 경우 녹색당과 사회민주당이 주도하는 연정을 통해 203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폐지를 약속했다. 메르켈 총리 시절 목표로 했던 2038년을 8년 앞당긴 것이다. 석탄을 시작으로 화석연료의 퇴장이 머지않은 것으로 여겨지던 것이 불과 2년 전의 일이었다.
미운 오리에서 백조가 된 석탄화력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상황이 급변했다. 화석연료의 40%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하던 EU(유럽연합)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선언하면서 에너지 가격은 급등하기 시작했다. 가스 부족에 따른 에너지 위기에 직면한 독일은 최근 유휴 상태로 있던 석탄화력발전소를 재가동하기로 결정했다.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영국과 함께 가장 적극적으로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던 독일이 기존의 에너지 정책을 대폭 전환한 것이다. 녹색당 출신의 로베르트 하벡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은 "현재 상황에서는 천연가스 사용을 줄이는 것이 더 급선무"라고 언급하면서 석탄화력발전소 재가동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녹색당 출신의 장관이 석탄화력발전소 재가동을 지시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대규모 갈탄 광산이 존재하던 지역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비상사태 대비용이라는 명분으로 관리만 하던 석탄화력발전소가 재가동될 것으로 예상했던 사람들은 없었다. 독일의 계획에 따르면 현재 유휴 상태에 있는 10GW 용량의 석탄화력발전소를 재가동할 경우 독일의 석탄화력발전소 시설용량은 기존의 31.4GW에서 30% 확대된 41GW 수준을 기록하게 된다.
독일뿐만이 아니다. 2020년을 마지막으로 모든 석탄화력발전소 가동을 중단했던 오스트리아 역시 최근 재가동을 결정했다. 네덜란드의 경우 시설용량의 35%까지만 발전하도록 한 법률 규제를 향후 2년간 폐지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가스 채굴 과정에서 지진이 발생하면서 가동을 중지할 예정이었던 흐로닝언 가스전의 가스 생산도 재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10년여 전 생산량이 정점에 달했을 때 500억 입방미터 이상의 가스를 생산하던 흐로닝언 가스전은 16만 건 이상의 손해배상 청구로 이어진 지진으로 올해 9월말 폐쇄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러시아가 EU에 공급하는 3년분을 대체할 수 있는 가스전을 현재의 위기상황에서 폐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여론도 변화하고 있다. 흐로닝언 주민의 3분의 2가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가스 생산을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네덜란드 국민 10명 중 8명 이상은 네덜란드가 러시아 가스 수입을 중단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자국 내 가스 생산을 지속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대통령 취임 직후 파리기후변화협약 복귀를 선언하고, 행정명령을 통해 연방정부 소유 토지의 석유·가스 채굴을 중지시켰던 바이든 대통령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최근 급등하고 있는 석유 가격을 낮추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석유 증산을 요청하고 있다.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부족 사태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화석 에너지의 부활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까지는 아직 수십 년이 남아있지만 에너지 부족으로 인한 추위와 단전이라는 문제는 당장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가스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개발을 확대하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대안이지만 현실적인 한계 또한 명확하다.
공급이 수요 못 따라가는 기현상도
하지만 공급이 화석 에너지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2050년까지 '탈탄소' 흐름이 명확한 상황에서 10년 이상 소요되는 화석 에너지 탐사나 개발 등에 대한 투자를 꺼려왔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화석 에너지에 대한 투자 및 자금지원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ESG 경영 흐름 역시 환경과 기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화석연료 사업에서 철수하거나 중단하는 흐름에 불을 댕겼다. 상황은 크게 변화했지만 과거부터 진행되던 관성은 그대로 남아있어 화석 에너지를 둘러싼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당장의 문제 해결을 위한 화석연료의 사용 증대가 탈탄소 및 에너지 전환 흐름을 바꿔놨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견이 있다. 독일의 경우 석탄화력발전소 재가동을 결정했지만 대체 가스 공급원을 확보할 때까지만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2024년 3월31일까지 가동한 이후에는 폐쇄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203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폐지 공약은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독일 이외의 유럽 국가들 역시 일시적으로 화석연료 사용을 증가시키고 있지만 단기적 조치임을 밝혔다. 체코의 경우 2033년까지 석탄을 철폐하고, 루마니아는 당초 2032년에서 2030년으로 앞당겨 석탄 사용을 중단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로서는 일시적으로 석탄을 사용하지만 천연가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REPowerEU 계획의 실행을 통해 탈탄소 이행은 오히려 더 빨라질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EU 회원국들은 이제 천연가스를 탈탄소 시기까지의 안정적인 에너지원으로 간주하지 않고 있다. 가능한 한 빨리 석탄과 가스 모두를 단계적으로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2050년까지 탈탄소를 이행할 것임을 공약한 바 있다.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단계적 폐지 역시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는 화석연료의 귀환은 정책 당국이나 기업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궁극적으로 탈탄소 이행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에 대해 좀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지, 화석연료의 회귀를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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