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떠돌이 장인' 신세.. "길게 버티면 10년"
● ‘제2의 세운’으로 통한 문래동
● “쫓겨난 사장님들 다 이리로 왔다”
● “넓은 공실 없어 짐 줄여야 했다”
● 아예 끊긴 거래선, 희귀해진 부품
● 이미 물밑 작업… “또 이 짓 반복”
3년 전 숙련공 중 수십 명이 이곳을 떠났다. 세운지구 일부 구역에서 시작된 재개발 때문이다. 빨간 조끼를 맞춰 입고 반대 시위까지 벌였지만, 시공사로부터 통장 압류 압박을 받고 법원까지 드나들어야 했다. 세입자 신세에 더는 버틸 수 없던 사람들은 살길을 찾아 점포 이전을 결정했다. 필자는 그중 8할 이상이 향했다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과 구로구 신도림동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세운지구와 이별한 후 소공인들이 밟아온 삶의 궤적을 추적했다.
2019년 12월은 쫓겨난 이들에게 혹독한 겨울이었다. 시위도 하고 언론에 호소도 해봤지만 재개발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새로 정착할 곳을 찾는 방법밖엔 남지 않았다. 제조업자들에겐 제품 제작에 필요한 부품 및 자재 조달과 협업이 생명이다. 다양한 분야의 숙련공과 희소한 부품이 즐비한 세운지구 내 점포는 최적의 선택지였다. 일부 소공인은 중구 산림동 일부 건물로 자리를 옮겼다. 재개발로 아파트가 건설되는 세운지구 3-1구역 코앞에서 시보리 공장을 운영하는 박춘삼(63) 씨는 "산림동 쪽으로 간 사람들이 조금 있다"며 "원래 있던 곳과 가까우니까 그리로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발품 팔아 다시 뭉친 '세운지구 사장'들
정밀기계를 제작하는 김영남(71) 씨도 같은 생각이었다. 세운지구에서만 30년 넘게 일한 김씨는 3년 전 어렵게 도림천 근처 대로변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가 공업지역이니까 쫓겨난 사장님들 다 이리로 오셨죠. 처음엔 힘들었어도 어떻게든 다들 자리를 잡긴 했어요."
김씨 외에도 20여 개 업체가 문래동으로 넘어왔다. 공실을 찾고 건물주를 설득하는 고된 과정을 거쳤다. 용접 기술로 프레임을 제작하는 권영문(68) 씨는 문래동에 자리를 잡겠다며 부동산을 다섯 군데나 돌아다녔다. 한 달 동안 발품을 판 끝에 어렵사리 공실을 찾았다.
"나는 겨우 옮겼지. 문래동이 유일한 선택지였는데 다른 데 어디를 가겠어. 다른 사장들이랑 같이 와야지."
신도림동에서 주물 공장을 운영하는 김학률(66) 씨도 주말에 시간이 날 때마다 돌아다니면서 공실을 찾았다. 30평 규모의 큰 공장을 옮길 장소는 마땅치 않았다.
"넓은 공실이 없어서 짐을 줄여야 했어요. 수천 개 되는 소중한 제품 샘플 중 80%를 녹여버렸죠. 그러고도 주물 공장이라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는 곳도 있었어요. 불이라도 나서 건물이 망가질까 걱정돼 그런 거죠."
김씨는 2020년 7월에야 겨우 신도림동에 공실을 구했다. 문래동 대로변과는 도보로 20여 분 떨어진 외진 곳이다.
"헤어지기 싫어서 일부러 이렇게 자리를 잡았지. 같이 온 사람들하고야 맨날 밥도 같이 먹고 계속 얼굴 보면서 지내고, 일 없으면 앉아서 얘기도 좀 하고…."
하루면 되던 일도 며칠씩 걸려
"제가 만들어준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손해를 감수하고 그냥 밤새워 다시 만들어주기도 했어요. 그렇게 쌓은 신뢰로 물리적으로 멀어진 지금까지 거래를 지속하는 거죠."
김씨는 지금까지도 일주일에 한 번은 세운지구에 들러 만든 제품을 납품한다. 문래동 업체들과 협업 관계를 형성하거나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존 고객들로 버티는데, 결국 지속성이 문제예요. 하도 외진 데 있어서 사람들이 찾아오질 않아요."
모든 소공인이 김학률 씨 같은 것도 아니다. 일부 업자는 아예 거래선이 끊겨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김영남 씨는 "대부분은 어떻게든 적응하긴 했는데, 몇몇 업체는 예전만 못하다"고 설명했다. 김씨도 알고 지내던 친구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거래선을 개척했지만, 인근 도금업체들이 사라지며 곤경에 처했다. 800평에 달하는 도금단지가 팔리면서 수십 개 도금업체가 쫓겨난 것이다. 이후 김씨가 생산한 금속 제품에 필수적인 피막, 도금 작업이 어려워졌다. 김씨는 도금 한 번 하겠다고 인천 남동공단이나 경기 시화공단까지 오가야 하게 생겼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사람들 다 가고 나면 여기서 하루면 되던 걸 또 이틀 사흘 걸려가면서 해야 해요. 시간도 들고, 돈도 더 들고, 점점 불편해지는 거죠."
부품이나 특수 자재를 구하는 것도 세운지구에 있을 때보다 훨씬 어렵다. 세운지구에서는 걸어서 10분이면 살 수 있는 부품도 문래동에선 쉽게 구할 수 없어 여러 점포를 찾아 헤매야 한다. 특수 자재는 아예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다반사다.
"오죽하면 다시 청계천을 간다니까. 거기서 발로 뛰어다니는 게 더 나을 때도 있어요."
"높은 사람들은 새로 짓는 게 맞는 줄만 알지"
어렵게 문래동에 정착했지만, 수년 후면 도금업자들처럼 또다시 쫓겨날 처지에 놓일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문래동1, 2, 4가 일부 지역은 2013년 7월 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그중 문래동4가에서는 2019년 재개발조합설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됐다. 2021년 9월에는 재개발 주민동의율이 71%를 넘어서 재개발조합 설립 요건인 75% 목전에 다다랐다. 현재도 토지 및 건물 소유주를 대상으로 재개발 수요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현대건설, GS건설, 포스코건설, DL E&C 등 다수 건설사 관계자들은 문래동4가 지역을 방문해 토지소유주들과 물밑에서 접촉하고 있다. 이희영(48) 문래부동산 대표는 "주인들은 대체로 찬성하는 여론인데, 다만 보상이 어떻게 이뤄지느냐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땅 주인들과 달리 제조업자들은 다시 생업의 터를 잃게 될까 걱정이 앞선다. 김영남 씨도 재개발 이야기가 나오자 한숨부터 쉬었다.
"아직 찾아오지는 않는데, 땅 매입하는 물밑 작업은 이미 돌아가고 있어요. 상황 돌아가는 거 보면 여기도 얼마 안 남았지. 난 길게 버티면 여기서 앞으로 10년 봐요."
권영문 씨도 재개발 소식에 걱정이 태산이다.
"세운에서 나올 때도 집주인이 방 안 뺀다고 계속 불러대 법원을 몇 번을 갔어. 또 이 짓을 반복한다니. 하여튼 높은 사람들은 좀 낡고 낮은 건물은 다 때려 부수고 새로 짓는 게 맞는 줄만 알지."
제조업자 대부분은 건물 세입자 신분이기 때문에 재개발과 관련해 의사를 표현해도 반영되지 않는다. 다시 재개발이 시작되면 보상비 책정 절차를 거쳐 세운지구의 전철을 밟는 수밖에 없다. 이 대표는 "재개발에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건 집과 땅 주인이니 당연히 세입자 권리는 보장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뿌리 산업, 이대로 죽일 순 없잖아?"
권영문 씨는 35년 동안 철제 프레임을 만들어왔다. 흔한 기술처럼 보여도 본인이 하면 정밀함이 다르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완벽하게 할 수 있는 건 나처럼 나이 먹은 기술자들밖에 없어. 이런 게 장인정신이지. 젊은 친구들 해놓은 거 보면, 허, 도저히 내가 일을 그만둘 수가 없어. 100살까지라도 해야지."
김영남 씨도 금속 부품 제작과 가공 기술로 50년째 일하고 있다. 김 씨는 일요일에도 왕복 세 시간 걸려 출퇴근하는 '열혈 장인'이다.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박사가 우주로 가져갔던 '등고선 촬영기'도 김씨의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일요일 점심시간에도 김씨는 요트에 들어가는 금속 부품을 3D 모델링하고 있었다. 0.0001㎜ 단위의 매우 정밀한 작업을 요구하기에 꼼꼼함은 필수 소양이다. 김씨의 오랜 단골 고객인 최원태(78) 씨는 경기 양평 양수리에서부터 먼 길을 달려 코일 부품 샘플을 받으러 왔다. 최씨는 김씨의 꼼꼼함에 아직도 거래를 이어가고 있다.
"코일 샘플 만드는 데는 정확도가 생명이거든요? (김씨는) 참 정확하고 꼼꼼한 분이라 믿고 맡기죠."
문래동 소공인 중 88.6%는 김씨와 권씨처럼 10년 이상 경력을 보유한 숙련공이다. 평균 경력만 22.7년. 이들의 고급 기술을 전수받을 사람은 턱없이 부족하다. 3D 업종이라 여겨지는 금속제조업에 젊은 세대가 관심을 두지 않는 데다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후 외국인 노동자들마저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실제 현재 문래동 소공업체들의 종업원 수는 평균 1.29명에 불과하다. 적지 않은 나이에 공장을 이전하면서도 소공인들이 계속 일하려는 이유다.
올해 칠순인 김씨는 앞으로도 계속 일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쓴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일할 사람이 없으니까 우리가 암만 버텨도 이대로라면 대안이 없어. 그래도 뿌리가 되는 산업을 이대로 죽일 순 없잖아? 나라도 힘닿는 데까지 해야지."
진현준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jhj980912@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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