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거문고 듀오의 '뜻밖의 만남' "리마이더스는 E, 달음은 I"
'여우락'으로 만나 새로운 실험
팀이면 솔로 연주자로의 음악 구축
"네 명 모두가 세계 속 하나의 점"
수십년 이어온 전통음악의 진화
도전과 시도, 변화 뒤에 온 세대
거품 거친 뒤의 지속가능성 고민해야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너무도 한국적인’ 두 악기가 만났다. 열두 줄의 가야금과 여섯 줄의 거문고. 두 악기는 독특하다.
“현악기의 장점이자 단점은 지속음이 짧다는 거예요. 부는 악기나 활로 켜는 악기처럼 풍성하게 이어가지 않아요. 그래서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점’ 악기라고 불러요.” (달음 황혜영)
온전히 존재했던 ‘하나의 점’은 또 다른 점을 만나 확장된 음악 세계를 만들었다. 과거를 답습하리라 지레 짐작했던 전통악기의 음악은 새로운 세상을 향해갔다. 여성 가야금, 거문고 듀오인 리마이더스(가야금 박지현(28), 거문고 김민영(31))와 달음(가야금 하수연(30), 거문고 황혜영(30))이다.
‘뜻밖의 만남’이다. 같은 편성으로 서로 다른 음악을 하는 두 팀의 ‘대범하고 위험한’ 만남이 성사됐다.
“사실 다른 악기도 없이 같은 편성의 악기를 연주하는 두 팀을 붙여두는 건 꽤 힘든 일이에요.” (리마이더스 박지현)
두 팀의 만남은 ‘2022 여우락 페스티벌’을 통해 이뤄졌다. 네 사람은 스스로를 ‘네 개의 점’(7월 6일, 달오름극장) 명명, 지금껏 본 적 없는 무대를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최근 국립극장에서 만난 이들은 “그 힘듦을 뚫고 네 사람이 뭔가를 해내고 있다”며 “네 개의 점을 빼곡히 채우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같지만 다른 가야금·거문고 듀오의 만남
서로의 존재야 모를 리 없었다. 같은 악기 편성의 팀이 흔치 않다 보니, 일찌감치 호구조사도 마쳤다. “학교는 어디 나왔고,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영상도 찾아보고요.(웃음)” (리마이더스 김민영) 그러다 ‘인친’이 됐다. 서로가 서로에게 반했다.
네 사람은 4월 말경 공연 구성 회의를 시작, 석 달 넘게 머리를 맞댔다. 가장 고민한 부분은 두 개의 팀, 네 명의 연주자가 온전히 존재하며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리마이더스 박지현은 “무대 위에서 각자가 어떤 기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공연은 다양하게 구성된다. 이 무대를 통해 창작한 다수의 신곡이 관객과 만난다. 리마이더스, 달음 각각의 팀 무대는 물론 네 팀이 다 함께 하는 무대도 있고, 같은 악기끼리 꾸미는 무대까지 마련됐다.
“처음 공연을 기획할 때 리마이더스와 달음의 컬래버레이션으로 갈 것인지, 그 이상의 무대를 꾸밀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서로 다른 두 팀의 협업이면서, 네 연주자 개개인의 세계도 보여줄 수 있는 무대를 마련했어요.”(김민영)
이상적인 무대를 위한 출발은 ‘탐색기’였다. 두 팀의 만남은 탐색기부터 시작됐다.
“서로 어떤 작업방식과 음악을 좋아하고, 어떤 음악색이 나오는지, 성격은 어떤지. 그런 것을 알아가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어느 정도 파악을 마치고 생각을 공유한 뒤에야 직접적인 결과물이 나오게 됐어요.”(황혜영)
리마이더스와 달음이 바라보는 서로의 음악은 전혀 다르다. “저희 기준에선 포지션은 겹치지만 각 팀의 음악적 결이나 지향점은 많이 달라요. 연습할 때마다 달음은 저희를 신기하게 바라봐요. 저흰 좀 ‘부수는 음악’이거든요.” (박지현)
“굉장히 다이내믹하고, 역동적이에요. 리마이더스의 연주를 보면 ‘와! 저러다 거문고 부수겠는데’, ‘현이 남아나나?’ 싶더라고요. 특히 가야금의 소리 색이 두 팀의 차이가 커서 정말 재밌었어요. 달음은 리마이더스와 상반되게 섬세한 부분이 있어요.”(황혜영)
“저는 부수고 있을 때, 달음 혜영 씨의 연주를 들으면 거문고 소리가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생각해요.(웃음) MBTI로 치면 리마이더스는 E(외향형), 달음은 I(내향형) 음악의 표본이에요.(웃음)”(김민영)
같은 악기로 전혀 다른 음악을 하게 된 것은 두 팀의 연주자들이 걸어온 길과 해온 음악이 달랐기 때문이다.
달음의 하수연 황혜영은 서울시청소년국악단에서 만나 2018년 팀을 꾸렸다. 사실 달음은 가야금과 거문고의 만남을 시도한 첫 주자다. “관현악단에서 음악적 실험을 이어온” 두 사람은 “현악기 두 대의 콘셉트가 유니크하다고 생각해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그게 바로 달음의 출발이다.
“연주자가 현악기를 바라보는 시선과 작곡가가 현악기를 바라보는 시선 차이의 궁금증에서 출발했어요. 처음엔 배운게 전통적 어법이라 그런 요소가 많이 들어갔고, 음악을 해오며 점차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도 있어요.” (황혜영)
리마이더스는 2015년 ‘여우락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열리는 아카데미에서 처음 만났다. 그 때의 만남을 계기로 “즉흥음악 기반의 창작을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어 음악적 교류”를 이어가다 2020년 팀으로 데뷔했다. 박지현은 “리마이더스는 즉흥음악을 기반으로 새로운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그것을 기반 삼아 창작하고 연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 올해 ‘여우락’ 무대는 물론 ‘여우락 아카데미’ 멘토로까지 참여하게 됐다. 이 축제가 신진 음악가의 발굴과 육성 역할까지 한 것이다.
“관현악단 출신의 달음은 작곡가적 기질”(김민영)을 가진 반면 리마이더스는 “창작을 하지만 악보가 존재하지 않는 즉흥음악 기반”이자 “연주자 중심의 음악”(김민영)을 이어간다.
■ ‘현악의 신세계’…네 개의 점이 만난 ‘네 개의 세계’
같은 편성을 가진 두 팀의 만났기에 흥미진진한 상상도 많이 나온다. 공연 기획 단계에선 서로 멤버를 바꿔 연주하는 구상도 나왔다. “멤버를 바꿔 연주하는 것도 구상했는데 안 하게 된 이유가 있어요. 모두가 달음과 리마이더스를 알지 못하니, 관객들에게 혼동을 줄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웃음)” (박지현)
그러면서도 상대 팀의 멤버에게서 비슷한 성향을 발견했다. 달음의 황혜영(거문고)과 리마이더스 박지현(가야금)은 “비교적 이성적이고, 비교적 현실적인” 멤버다. 두 사람은 그래서 팀 내 ‘정리’ 담당이다. 반면 달음 하수연(가야금)과 리마이더스 김민영(거문고)은 끊임없이 풀어놓는다.
“전통음악에서 메기고 받는 형식이 있어요. 한 사람이 주면 다른 사람이 이어 받는 거죠. 저랑 수연씨는 잘 메기는 스타일이고, 지현씨와 혜영씨는 받는 스타일인 거예요. 그러니 한 팀이 되면 한쪽은 메기기만 해서 정리가 안되고, 다른 팀은 주야장천 정리만 해서 곡이 안 나오는 거예요.(웃음)” (하민영)
네 사람의 무대에선 서로의 다름과 같음이 큰 축이 된다. “달음과 리마이더스가 너무나 다른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도 서로 다른 것이 섞여 교집합처럼 나왔어요.”(박지현)
김민영은 “네 대의 거문고와 가야금의 만남은 현악의 신세계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 악기를 가지고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평소 하지 않던 주법을 실험적, 도전적으로 만들고 있어요.”(김민영)
최근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거문고 연주자들의 주법이 한 곡 안에 담긴 것도 파격이다. “피치카토, 타악기적 요소는 물론 활을 켜거나, 음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 복잡한 연주를 해요. 어떻게 보면 조금 조잡해 보일 수 있다고 생각이 들 수 있는 주법이지만,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할 수 있는 무대이기에 모두 담았어요. 그게 저에겐 도전이기도 했고요.”(황혜영)
가야금도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한다. 박지현은 “연주하는 동안 계속 코드가 바뀌고 변화하도록 시도했다”며 “지금까지 가야금 주자로서 해왔던 음악과는 다른 음악이 나왔다”고 말했다.
그 과정을 거치자 “서로 다른 네 명의 연주자, 그러면서도 닮은 점을 가진 네 명의 현악주자들만의 무대”(김민영)를 만들게 됐다.
“개개인의 세계가 온전히 구축돼있어야 협업을 했을 때도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아요. 서로가 생각하는 좋은 점이 각 팀의 음악으로 발현됐고, 네 명이 만난 음악으로 나오게 됐어요.” (박지현)
“사람들에겐 성격이 하나만 있진 않잖아요. 혼자 작업할 때와 함께 작업할 때 나오는 음악이 다른 것처럼, 넷이 만나니 또 다른 음악이 나오게 됐어요. 칸딘스키가 ‘점은 하나의 세계’라고 했어요. 우리 네 사람은 네 개의 세계예요. 각자 세계 속의 하나의 점이면서 또 다른 하나의 형태를 이뤄가는 과정에 있는 점이죠. 그 점이 연결과 해체를 반복하며 네 개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김민영)
■ 우리 음악의 새로운 세대…“거품 거치고 지속성 생각할 시기”
지금의 전통음악은 트렌드와 힙(HIP)함의 상징이다. 비빙, 바람곶에서 시작된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한 실험은 지금의 이날치, 블랙스트링, 악단광칠, 해파리로 이어지며 무수한 변화와 진화를 겪었다. 나이로 치면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 리마이더스와 달음은 우리 음악의 미래를 끌어갈 새로운 세대다.
“대학 입시 논술을 볼 때만 해도 국악의 대중화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가 시험의 주제였어요.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평생 고민해야할 주제가 아닐까 생각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어느 정도 국악의 대중화가 이뤄졌어요. 이젠 우리 세대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중요한 기점이라고 생각해요.” (김민영)
두 팀은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한다는 부담, 대중에게 사랑받아야 한다는 강박을 품던 이전 세대와 달리 음악을 대하는 태도 역시 쿨하다. “애써 현대적 해석에 몰두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음악을 그들이 가장 잘 연주하는 악기”로 만들어가니, 세상은 ‘새롭다’고 말한다. 그 시도를 꾸준히 이어갈 따름이다.
김민영은 “전통음악에 대한 시선은 거품이 끼었다가 가라앉는 시기가 올 것”이라며 “그것이 아마 우리 세대이지 않을까 예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고민은 ‘지속가능성’이다. 급진적 변화와 성공 뒤에 따라오는 세대는 성장이 어렵다. “이미 다 나왔기에” 할 수 있는 것도 적다. 새로움의 끝을 달려봤기에, 그 이상의 새로움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박지현은 “지금은 많은 음악들이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하지만, 너무 얕게 건드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생각보다 많은 연주자, 작곡가들이 엄청나게 다양한 코드나 다양한 박자골을 알지 못해요. 세계엔 다양한 것이 있으니 더 공부하고 연구해 우리 것으로 녹이는 시도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박지현) 황혜영도 동의했다. 그는 “수직적인 교육 구조 안에서 다채로운 음악 기법을 배우기는 쉽지 않지만, 양질의 교육을 통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국악이 되게 멋있었지’, ‘고리타분하고 지겨운게 아니라 힙하고 멋졌지’, 그렇게 생각하는 지금의 시선을 어떤 식으로 이어갈 것이냐가 중요한 때가 됐어요. 또 저희가 무언가를 만들어가야 할 중요한 세대이고요.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시도와 협업이 끊임없이 일어난다면 지금의 풍요로움을 이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김민영)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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