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줄 마른 한전, 회사채 이어 기업어음도 돌려막기
만기 1~3개월짜리 수두룩.. '빚 폭탄' 터질수도
탈원전과 전기요금 인상 억제로 천문학적 적자를 내고 있는 한국전력(015760)이 만기가 1년도 채 되지 않는 기업어음(CP)을 발행량을 대폭 늘리며 자금 돌려막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계적 긴축 기조로 유동성이 축소되고 있는 만큼 시장이 한전 CP를 소화하는 데 한계를 보일 수 있고, 이 경우 빚을 갚지 못하는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까지 내몰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 들어 15조원이 넘는 회사채를 발행해 시장을 혼란에 빠트린 한전이 단기금융시장까지 왜곡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5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한전의 CP 잔액은 2조9500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말 1조500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80% 이상 증가한 것이다. CP란 기업이 상거래와 관계없이 단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자기신용으로 발행하는 융통어음을 말한다. CP와 비슷하지만 전자 형태로 발행되는 전자단기사채(전단채)까지 합한 잔액은 5조5000억원으로, 역시 전년 말(2조4000억원) 대비 두 배 이상 늘었다. 이는 국내 기업 중 신한카드(6조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한전 CP의 만기는 대부분 1~3개월짜리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에 따르면 한전의 미상환 CP 잔액은 3조1500억원인데, 이중 잔존 만기 30~89일짜리 CP가 1조400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이 11~29일짜리(1조1500억원), 1~10일짜리가 6000억원이었다. 기업 중 CP·전단채 잔액이 가장 많은 신한카드의 경우 미상환 CP 잔액 5조4600억원 중 대부분인 4조8300억원이 만기가 1년 이상 남았다.
한전과 같은 공기업은 원자재 대금 결제일과 회사채 만기가 어긋날 때 CP를 발행해 공백을 채우곤 한다. 그러나 최근 한전 적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CP 물량이 단기간에 크게 늘어나는 상황은 한전의 자금 조달 능력이 한계에 달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짧은 시간 안에 갚아야 할 빚이 늘어나는 만큼 자금 조달의 질이 낮아지는 것을 감수한다는 것이다. 대출이나 회사채 대신 CP를 선택하는 기업은 이미 재무적인 압박을 느끼기 시작한 이후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전은 올해 들어서만 15조원이 넘는 회사채를 발행했다.
위기가 닥치면 만기가 돌아온 CP를 갚기 위한 차환 발행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리 인상으로 유동성이 축소되는 국면인 만큼 돌려막던 ‘빚 폭탄’이 결국 터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김종용 NH투자증권(005940) 연구원은 “만기 1~3개월짜리 단기 CP는 한전에 분명한 부담”이라며 “현재 한전의 유동성은 아직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영업 적자가 계속되면 압박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준수 키움증권(039490) 연구원은 “기업이 발행한 CP는 증권사가 받아 개인 투자자 등 리테일 수요로 돌려 흡수하는데, 증권사의 단기자금 여력이 안좋아질 경우 CP 소화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전이 CP 발행량을 더 늘리거나 만기가 긴 CP를 발행할 경우 단기금융시장까지 교란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전은 정부 보증을 앞세워 트리플A(AAA) 초고우량 회사채를 쏟아내며 4%에 육박하는 금리를 제공해 시중 자금을 모두 빨아들였다. 그 결과 한전보다 신용등급이나 금리가 낮은 회사채는 시장의 외면을 받았고, 기업들은 자금 조달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한전이 왜곡시킨 회사채 시장을 피해 CP 등 단기금융으로 피신했던 기업들은 CP마저 발행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김준수 연구원은 “여신전문금융사들은 여전채 발행이 어려워 CP로 돌리고 있는데, 우량 신용등급을 보유한 한전이 CP 시장까지 온다면 이보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은 또다시 발행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전은 CP를 발행한 것은 맞지만, ‘롤오버(만기 연장)’ 방식에 따라 발행돼 당장 상환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한전 관계자는 “현재 CP는 5년 약정을 맺고 3개월 단위로 계속 발행하는 것이라, 만기가 5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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