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착취하는 '물 불평등'.."비용 아닌 인권의 문제"

2022. 7. 5.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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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불평등] ③ 상수도 '메가시티'론부터 수도요금 '수도세'론까지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이상현 기자(shyun@pressian.com)]
도시 거주민들에게 가뭄 피해는 생소하다. 쩍쩍 갈라진 논과 농부의 한탄 섞인 인터뷰는 텔레비전 속 이야기다. 수도꼭지만 열면 물은 문제없이 쏟아진다. 전국 보급률 97.5%에 달하는 상수도 시스템 덕분이다.

다만 가뭄 현장에선 이야기가 달라진다. '공기 좋고 물 좋은 시골'은 없다. 상수도가 연결되어 있지 않은 마을에서는 소변을 처리할 물도 사치다. 여전히 수많은 산간지역 마을들은 상수도가 연결되어 있지 않아 지하수를 생활용수로 이용한다. 가뭄으로 지하수가 마르거나 미흡한 관리로 수질이 오염되면, 지역 주민들은 당장 마실 물이 없다.

전국 상수도 보급률은 97.5%다. 뒤집어 생각하면 국내 2.5%의 지역 주민들은 '상수도 없는 마을'에서 살아간다. 물관리기본법 제4조 1항은 "누구든지 사용 목적에 적합한 수질의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 이용할 수 있고, 재해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건강하고 쾌적한 물환경에서의 삶을 누릴 권리"를 명시한다. 2.5%에겐 해당하지 않는 말이다.

2.5%의 지역을 <프레시안>이 찾았다. 상수도 없는 마을에서 살아가는 지역 주민의 이야기를 들었고, 도시보다 비싼 수도요금을 지불해야 하는 지역의 상황을 기록했다. 중앙정부의 개입을 요구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입장을 확인하고, 모색 가능한 대안을 탐색했다. 이 이야기가 존재하는 한, 한국에서 물은 불평등하다.

관련 기사 ☞ [물과 불평등] (https://www.pressian.com/pages/serials/11901004000000000016)

물은 공공재다.

삶의 필수요소인 '물'에 대한 접근성은 한 개인이 누구며, 어디에 사는지 등에 상관없이 보장받아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다. 유엔 사회권위원회와 인권이사회는 지난 2000년대부터 "물에 대한 권리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가진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하다며 '물 인권' 보장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한국에서도 물을 이용할 권리는 보편 권리다. 국내 물관리기본법은 제4조 1항을 통해 "누구든지 사용 목적에 적합한 수질의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 이용할 수 있고, 재해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건강하고 쾌적한 물 환경에서의 삶을 누릴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물 인권 보장에 대한 책임은 근본적으로 국가에 있다. 수도법 제2조는 "국가는 모든 국민이 질 좋은 물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수도에 관한 종합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합리적인 시책을 강구하며 수도사업자에 대한 기술 지원 및 재정 지원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다만 법과 현실은 다르다. <프레시안>은 지난 두 편의 기사를 통해 '현재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같은 수준의 물 접근성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짚었다.

광역·지방상수도가 들어와 있지 않아 지하수와 계곡수 등을 이용하는 주민은 가뭄 때마다 물 부족에 시달리며 수질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관련기사 ☞ "변기 내릴 물도 없다"…도시는 모르는 지역의 '물 이야기' ) 상수도가 연결되어 있는 지역 내에서도 불평등은 존재한다. 한국수자원공사가 관리하는 광역상수도를 사용하는 도시 주민과 지자체가 관리하는 지방상수도를 사용하는 지역 주민이 내는 물값은 다르다. (관련기사 ☞ '물값의 역설'…지역은 왜 물값을 더 비싸게 내는가?) 상수도의 유형과 보급여부 등에 따라 생기는 '물 불평등'이다.

법문 속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줄이고 물 불평등을 해소 또는 완화하기 위해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국가는 물 인권의 보장을 위해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지난달 30일 대전광역시 미래물문화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전제상 이사장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잘못된 첫걸음으로 유발된 (물 관리) 시장실패를 국가가 방치"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국민들 사이 물 접근성이 "빈익빈 부익부의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30일 대전 미래물문화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전제상 전 한남대학교 교수는 "잘못된 첫걸음으로 유발된 (물 관리) 시장실패를 국가가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레시안(한예섭)

전기요금은 같은데, 물 요금은 다르다? … "첫 걸음 잘못 뗀 악순환 구조"

어느 지역이든 같은 값으로 공급되는 전기와 달리 물은 공급량과 가격에 있어서 격차가 발생한다. 전 이사장은 이를 "시장 실패를 막지 못하는 구조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누구든, 언제든, 어디서든, 똑같은 가격으로' 차별 없이 물을 쓸 수 있는 구조를 처음부터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기는 한국전력이라는 공기업이 총괄한다. 한 지역에 다섯 가구만 있으면 그곳이 아무리 깊은 산골이든 도서 지방이든 무리 없이 공급된다. 서울에서 쓰는 전기와 강원도에서 쓰는 전기의 질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물은 그렇지 않다. 처음부터 '단일화'된 기구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인프라를 처음 구축할 당시를 상상해 보자, 당시엔 돈도 없었고, 필수 자원의 보편 서비스에 대한 개념도 부족했다. 전기는 보편 서비스 체제를 구축할 만큼 중요했지만, 물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 반도를 '삼천리금수강산이라 표현하지 않았나. 먹을 물이 널려있다고 생각한 거다. 그런데 점점 정수된 물의 공급 필요성이 올라갔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강이나 지하수는 오염되는 데 일원화된 관리 주체는 없었고, 결국 물 관리는 뒤늦게 '지자체의 책임'이 됐다."

수도법은 물 관리에 대한 국가 책임을 명시하는 동시에 지방자치단체장에게도 "관할 구역의 주민에게 수돗물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도록" 수도시설을 관리할 책임을 부여한다. 즉 상수도 업무를 통해 주민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함으로써 물 인권의 보장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일은 지방자치단체의 고유 사무다.

전 이사장은 "각 지자체로 권한이 쪼개져버리니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규모의 경제'에 따라 지자체 간의 격차가 발생하고, 수원을 가지고 지자체끼리 다투는 일도 있다. 지역이 보유한 수원의 혜택은 대도시로 흘러가는 지역 착취의 문제도 발생한다. 거기에 "각 지역 상수도 사업엔 해당 지자체의 예산과 권한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이제 와서 통합관리로 전환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상수도 보급률이 백퍼센트에 육박하는 서울, 경기 지역에는 2천만 명이 넘게 산다. 단순하게 따져보면, 이들이 요금을 조금씩만 더 내면 농촌 상수도 문제는 다 해결해줄 수 있지 않겠나. 그게 보편적인 물 복지 측면에서는 맞는 이야기다.
그런데 법적으로, 행정적으로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지금은 지자체별로 다 나눠져 있으니까. 결국 각 지역의 상수도 사업은 고립된 형태로 유지되고, 지역의 인구가 줄면 상수도에서 적자가 나고, 인프라는 더욱 악화되고, 그로 인해 인구유출은 가속화되고, 다시 적자가 심해지는 악순환 구조를 벗어날 수가 없다."

ⓒ그래픽=프레시안(정은영)

논의 시작조차 하지 못한 물 불평등 문제 … "결국은 비용과 관심의 문제"

중앙정부의 지원은 제한적이다. 대도시 거주민 등 상수도 수혜자에게 돈을 거둬 수자원 보호구역 내 주민들을 지원하는 '물이용 부담금' 제도도 충분치 않다. 만성적인 예산부족 문제에 시달리는 각 지역 지자체들은 "물이용 부담금을 상수도 확충에 집중해서 사용하지 못한다"라고 지적한다.

한정된 예산규모 아래 사업 간 우선순위에서 밀려서 여전히 상수도 미보급 지역이 존재한다. 전 이사장은 "결국은 비용과 관심의 문제"라며 "중앙정부가 충분한 비용과 관심을 쏟기만 해도 상수도가 보급되지 않는 지역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2022년 현재에도 일부 지역에 수도관이 보급되지 않는 문제는 결국 비용과 관심의 문제다. 여전히 상수도가 미보급된, '물 사각지대'가 있는데 주민이 적다는 이유로 정부가 나서지 않고 있는 거다.

이건 경제성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문제이기도 하다. 가뭄 때마다 물 부족 문제가 보도되지만 그때뿐이지 않나. 한 번도 본격적으로 의제화된 적이 없다. 정치의 영역에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일부의, 소규모의, 혹은 사람들이 '관심 없는 지역'의 문제이니 정치적 득실이 없는 문제로 치부된다. 학계 등에서 상수도 불평등 문제가 제기된 게 2000년대 초반부터다. 20년 동안 논의가 진척되지 못했다."

그러면서 전 이사장은 물 문제가 비용과 인구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소수 지역의 문제'로 치부되는 사회 일각의 경향성을 비판했다. "구체적인 대안이 있어야 논의가 시작되는 게 아니라, 반대로 논의가 시작되지도 않았으니 대안을 모색하지도 못하고 있는 게 지금의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그렇게 논의되지 않는 물 불평등 문제는 경제적 상위계층과 하위계층, 수도권과 지역 등이 겪는 사회적 양극화 문제와 같은 구조를 지닌다. 평균 소득 수준이 높은 도시 지역의 주민들은 더 깨끗한 물을 저렴하게 이용하고, 인구가 떠난 농촌지역은 더 비싼 값을 내거나 고갈 위험이 있는 지하수를 사용한다.

지역소멸의 가속화와 물 불평등의 악순환이 맞물리면서, '물 양극화' 구조의 아랫단이 감당하는 부담은 점차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전 이사장은 지금도 "마을 상수도나 소규모 급수시설, 도서지방 등에 거주하는 인구를 합치면 실질적으론 100만 명도 넘을 수 있다"며 "물의 가장 기본 조건인 '먹는 물'에 대한 보장도 실질적으로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경고했다.
▲전 이사장은 상수도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통합적인 상수도 관리 시스템"을 제시했다. 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규모의 경제 실현이 가능한 지역에서 얻는 금액을 경제성이 나오지 않는 소규모 지자체에 투자하는 식이다. ⓒ수자원공사

물 관리 '메가시티'? … "권역별로라도 '상수도 통합 관리' 시작해야"

대안의 밑그림을 상상해 볼 수는 있다. 전 이사장은 상수도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통합적인 상수도 관리 시스템"을 제시했다. 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규모의 경제 실현이 가능한 지역에서 얻는 금액을 경제성이 나오지 않는 소규모 지자체에 투자하는 식이다. 그러한 방안이 "지자체 인구가 지속적으로 주는 상황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게 전 이사장의 주장이다.

"수원을 같이 쓰는 유역 단위, 아니면 적어도 광역 단위로라도 상수도 관리를 통합하면 지금보다는 더 나아질 수 있다. 가령 지금처럼 시·군 단위로 상수도를 관리하는 게 아니라, 광역 지자체 차원에서 상수도를 관리하는 '공사'를 만들어 넓은 권역에 대한 통합관리를 시작하면 어떨까.

행정적 연결을 통해 상대적으로 적자가 심한 시·군을 지원할 방안이 생긴다. 행정구역이 갈려서 지척에 있는 (다른 행정구역의) 수원을 이용하지 못하는 비효율이 발생하는 일도 해결이 가능하다. 장기적으론 거대 단위로 묶인 지역에서 나름의 '규모의 경제'가 실현될 수도 있다.

물론, 낙후된 지역에 대한 투자 활성화와 함께 중앙정부도 지원해주는 방식으로 가야한다. 즉 비용과 관심의 절대량이 늘어야 한다."

광역·지방상수도 간, 상수도 보급·미보급 지역 간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상수도 통합 운영관리가 필요하다는 전 이사장의 주장은 상수도 관리방안에 대한 한국수자원공사의 연구결과와 궤를 같이한다.

2020년 한국수자원공사가 발행한 '미래 물관리 여건을 고려한 광역·지방상수도 최적 운영·관리방안 연구'(대한상하수도학회 진행)는 지자체간 상수도 통합 운영이 이루어진다면 "행정경계를 초월한 수도시설 연계로 미급수 지역을 해소하여 수도서비스 향상"되며 지역 간 가격격차가 나타나는 수도요금 또한 적정수준으로 조정이 가능하다고 분석한 바 있다.

'얼마만큼의 비용을 쓸 것인가?' … 물 문제가 남기는 질문

한편 지역 간 물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아예 "수도요금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상수도 생산단가에 따라 결정되는 현행 '요금' 체계 대신에 농어촌 지역은 '세금'의 형태로 전환하여 격차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요금이 '쓴 만큼 내는' 경제논리에 따른 비용이라면, 세금은 국가의 판단에 따라 납부 금액을 조정한다. 지금도 수도 생산단가가 높은 일부 지자체에선 요금현실화율을 낮춰 수도요금을 조절하고 있지만, 워낙 높은 생산단가로 인해 주요 대도시와 비교해 요금 완화 규모가 적자 규모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수도 요금이 '세금'화된다면 국가 지원을 통해 요금 격차를 강력하게 조정할 수 있다.

"우리나라 상수도는 도시 지역과 농어촌 지역의 양극화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그 문제 중 하나가 수도요금인데, (경제적 논리에 따르면) 지자체 내 수돗물 생산단가가 비싸면 지역 주민이 내는 수도요금은 비싸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수돗물은 없으면 살지 못하는 삶의 필수 수단이다.

이에 대한 접근권은 국민의 기본권이고, 기본권을 충족해주는 게 국가의 기본 의무다. 규모가 작고 기반시설이 열악한 지역은 수도요금이 아니라 '수도세'를 거둬서 국가의 지원을 받아 상수도를 운영하는 방식이 악순환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백명수 수돗물시민네트워크 집행위원장)

시민단체 수돗물시민네트워크의 백명수 집행위원장은 우리 사회가 물을 다룰 땐 시장경제적인 관점이 아닌 '공공재화 차원'의 관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누구에게나 보장해야 하는" 보편적 물 인권을 경제논리 위에 두자는 이야기다.

다만 문제는 '비용'의 발생이다. "국가 재정을 투입해 지역의 물 격차를 해소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비단 요금체제 개편에 대서만이 아닌, 지역 및 물 문제 해결을 위한 모든 대안에 남는 질문이기도 하다. 물 격차의 아랫단을 위해 얼마만큼의 비용과 관심을 투자할 것인가? 우리 사회 물 문제가 남기는 질문은, 결국 사회의 어디에 얼마만큼의 재화를 분배할 것인가 묻는 정치적인 질문이다.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이상현 기자(shyun@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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