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회생 때 코인·주식 빚은 경감"..법원이 '먹튀' 부추기나

양은경 기자 2022. 7. 4.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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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회생법원, 개인회생 때 가상화폐·주식 빚 경감해주기로
1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암호화폐) 가격이 표시되고 있다. 가상자산 시장 분석업체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지난 6월 한 달간 전세계 가상자산 시가총액은 4419억 달러(약 571조원)가 증발했다./뉴스1

서울회생법원이 ‘가상 화폐나 주식 투자 실패로 대출금을 날린 채무자도 개인 회생을 통해 면책받기 쉽도록 하겠다’는 새로운 기준을 이달부터 적용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고위험 투자인 가상 화폐와 주식에 대해 법원이 ‘빚투(빚내서 투자)’와 ‘먹튀(먹고 튀기)’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개인 회생은 채무자가 자신의 소득으로 일정 기간 빚의 일부를 갚으면 나머지 빚은 면제받는 제도다. 개인 회생 허용 여부와 변제 액수는 채무자의 재산 총액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채무자 재산 총액이 전체 빚 규모보다 작을 때에만 개인 회생이 허용된다. 그동안 서울회생법원은 가상 화폐·주식 투자 손실금도 채무자 재산 총액에 포함해 왔다. 그러나 서울회생법원은 지난 1일 “가상 화폐나 주식 투자 손실금은 채무자 재산 총액에 포함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크게 두 방향에서 변화가 예상된다.

우선 개인 회생이 허용되는 폭이 넓어질 수 있다. 새 기준을 적용해 손실금을 재산 총액에서 빼주면 재산이 빚보다 적어지면서 개인 회생을 허락받을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가상 화폐·주식 투자에 실패한 2030세대가 파산하지 않고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 복귀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채무자가 개인 회생으로 갚아야 할 액수도 줄어들 수 있다. 개인 회생으로 변제해야 하는 금액은 채무자 재산 총액(하한)과 전체 빚 액수(상한) 사이에서 정해진다. 예컨대, 채무자 A씨가 대출 3000만원을 받아 가상 화폐에 투자했다가 전액 손실을 입었고, A씨 재산은 예금 1000만원이 전부라고 하자. 법원은 지금까지 A씨 재산은 예금 1000만원과 가상 화폐 투자 손실 3000만원을 합친 총 4000만원이라고 봤다. 하지만 새 기준을 적용하면 A씨 재산은 가상 화폐 투자 손실을 제외한 1000만원이 된다. 개인 회생으로 갚아야 할 액수의 하한이 3000만원이나 내려가는 것이다.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개인 회생은 월 소득에서 최저 생계비를 뺀 액수를 최소 36개월간 갚아나가기 때문에 채무자가 변제해야 하는 금액은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하게 돼 있다”고 했다.

서울회생법원은 전국 개인 회생 사건의 20%를 담당하고 있다. 이 법원이 개인 회생을 통해 가상 화폐·주식 투자 손실을 면책받기 쉽게 만드는 조치는 다른 법원에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50대 남성 자영업자는 “개인 회생으로 면책받을 작정으로 빚을 크게 내서 무분별하게 가상 화폐나 주식 투자에 나서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했다. 40대 여성 직장인은 “전세금, 생활비나 자녀 학비에 쓰려고 대출받아 원금·이자를 꼬박꼬박 갚는 서민이 많은데 가상 화폐·주식에 탕진한 사람은 제대로 안 갚아도 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한 네티즌은 “성실하게 빚 갚은 사람만 호구 되는 세상”이라고 했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개인 회생 관련 법률에 ‘도박’ ‘사행 행위’가 있으면 채무를 면책받을 수 없도록 돼 있다”며 “빚내서 가상 화폐·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도박이나 사행 행위와 다른 게 뭐냐”라고 했다. 이에 대해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가상 화폐·주식 투자 실패에 대한 ‘빚 탕감’은 오해”라며 “투자 손실을 핑계로 재산을 은닉하는 행위는 규제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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