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2km·156만보에 담긴 희망과 용기..코로나19에 지친 시민들께 전합니다"

박용근 기자 2022. 7. 4. 22:2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해남에서 고성 거쳐 서울까지..32일간 걸어 국토종단한 김도경씨
도보여행가 김도경씨가 국토종주 중인 지난 6월5일 전북 임실군 관촌면의 한 식당에서 팔순 어머니와 여행중인 한 가족을 만나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도경씨 제공
“걷다보면 변화 오고 해법 보여
힘 주시고 인생의 스승 돼 주신
길에서 만난 이웃들 있어 완주”

도보여행가 김도경씨(56)는 지난 5월30일 전남 해남 땅끝마을을 출발해 고성 통일전망대에 6월22일 도착했다. 중간중간 거쳐간 마을을 포함해 대략 792㎞를 걸었다. 택시로 달려도 11시간이 소요되는 거리다. 그는 여기서 다시 발길을 돌려 서울로 향했다. 속초와 미시령을 넘어 이달 2일 서울 광화문 도로원표를 밟았다. 해남~고성~서울까지의 대장정에는 꼬박 32일이 걸렸다. 총 걸음 수는 156만6164보다.

김씨는 “코로나로 힘들고 지친 시민들께 희망과 용기를 전해 드리고 싶었다”면서 “길에서 만난 이웃들이 기운을 불어넣어 줬고, 인생의 스승이 돼 주셔서 완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도보 국토종주는 이번이 세 번째다. 2018년 처음으로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출발해 부산을 찍고 해남 땅끝마을까지 종주했다. 2019년에는 해남에서 서해안을 거쳐 임진각에 당도한 뒤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횡단했다.

2020년에는 제주 올레길 전 구간, 지난해에는 스위스와 이탈리아 국경지대 트레킹 코스인 ‘투르 드 몽블랑(tour du MontBlanc)’을 다녀왔다.

“26세에 큰 사고를 당했어요. 하반신 마비 위기를 넘겼지만 다리를 쩔뚝거리는 장애가 나타났어요. 걸으면 나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대학생들의 국토종단이 부러웠는데 직장인이라 꿈으로만 간직하고 있었죠. 2018년 50대에 접어들면서 더 늦기 전에 해보리라 마음먹고 국토종주를 시작했어요.”

그는 종주에 나서기 전 체중을 2㎏ 정도 감량했다. 하루 평균 40㎞ 이상을 걸어야 해 단단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배낭은 우의와 갈아입을 옷, 비상식량 등으로 최소화해도 무게가 7㎏이나 됐다. 밥은 식당에서 사 먹고, 잠은 모텔을 이용했다. 걷다 보면 식당이 제때 나와줄 리 없었다. 하루 두 끼나 한 끼로 때우는 건 다반사였다. 무엇보다 발을 관리하는 것은 새벽에 치르는 의식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발가락이 아픈 것은 감당해야지만 발에 물집이 생기면 큰 일이었어요. 그래서 늘 신발 밑에 천연가죽 깔창을 깔았어요. 그러면 발바닥 열감이 덜 생기고, 땀 발산이 잘 됩니다. 여기에 발가락 양말을 신고 비누코팅을 한 뒤 여성용 스타킹을 신어줍니다. 장거리를 완주할 수 있는 저만의 비방이지요.”

전북 무주를 12㎞ 앞둔 국도변을 걷고 있는 김도경씨. 김도경씨 제공

길에서 만난 이웃들은 늘 힘이 돼 줬다. 그들은 김씨에게 사랑과 칭찬, 나눔을 베풀어 줬다.

호주로 떠난 딸 생각이 난다면서 여행자 손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 수박을 썰어 내놓고, 그의 배낭 속에 과일을 가득 담아줬다. 떡을 해 가던 촌로 부부는 허기를 때우라며 김이 풀풀 나는 떡을 내놓기도 했다.

“어느 날 오후 5시 무렵 국도를 걷고 있었는데 승용차 한 대가 뒤를 졸졸 따라오는 거예요. 운전자 말씀이 ‘이 동네 40년 살았는데 어두워 지면 인적이 없어 위험하다. 곧 해가 떨어지니 동네까지 태워주겠다’며 통사정을 하셨어요. 정말로 차를 타고 가보니 17km 정도 가야 마을이 나오더라고요. 다음날 원점으로 돌아가 그 길을 다시 걸었어요. 눈물 나게 감사한 마을 주민이었어요.”

모 식품회사 홍보이사로 재직 중인 그는 1년 전 지리산 자락인 경남 산청에 귀촌해 살고 있다. 걷는 일이 좋아 선택한 일이다.

“몇 차례 국토종주를 하다보니 주위에서 여행다니면서 밥 사먹으라며 밥값을 보내주는 분들이 많아요. 처음엔 여행경비로만 사용했는데 어느 날 문득 그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를 응원하는 게 아니라 나의 순수한 땀과 걸음을 응원해 주는 건데 이 돈을 귀하게 사용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국토종단 경비를 아껴 모은 돈을 장애 어린이들에게 기부하고 있다. 걷는 일로 시작된 기부가 누군가의 마음에 온기를 주고, 특히 장애 어린이들의 삶에 손을 내미는 일이 의미 있다고 했다. 김씨는 “사람들은 힘들어도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선뜻 떠나지 못한다. 일단 뒷동산에라도 짐을 꾸려 떠나보길 권한다”며 “그러면 자신에게 변화가 생기고 거미줄처럼 얽힌 실타래가 풀어진다. 걷다 보면 해법이 보인다”고 말했다.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