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해법 모색을 위한 민관협의회 출범

유신모 기자 2022. 7. 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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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대리인들이 4일 강제징용 문제 해법 모색을 위한 민관협의회에 참석하기에 앞서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앞에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의 해법을 논의하기 위한 민관협의회가 4일 공식 출범했다. 외교부는 이날 조현동 1차관 주재로 정부 관계자, 전문가,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첫번째 회의를 비공개로 가졌다. 이로써 한·일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갈 수 있는 폭발력을 가진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본격적인 행보가 시작됐다.

민관협의회의 출범은 역사상 최악의 상태에 빠져있는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첫번째 수순이다. 일본기업들에 대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대법원의 최종 확정판결이 2018년 10월에 나온 것을 감안하면 정부의 해결책 모색은 시기적으로 너무 늦은 셈이다. 정부가 해결 의지를 본격적으로 보이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그동안 이 문제로 일본의 수출규제와 그에 대한 한국의 대응조치가 이어지고 국민 감정이 크게 자극받은 상태다. 협의회가 다뤄나가야 할 문제와 해법 도출도 그만큼 어려워졌다.

■협의회 성격과 역할

이날 첫번째 회의 참석자는 정부 관계자 외에 학계·언론계 인사와 전직 관료 등 12명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대법원 확정 판결 소송 대리인들을 우선적으로 모셨고 한·일 관계, 법학을 전공한 학자분들, 경제 쪽에서 관련이 있는 분들과 한·일 관계를 외교적으로 담당해온 분들을 위주로 구성했다”고 말했다.

협의회가 특정 기간 활동하면서 결론을 내리고 이를 정부에 정책을 건의하는 기능을 갖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각계의 다양한 목소리와 해법을 경청하고 의견을 수렴해 정책에 참고하는 일종의 ‘공청회’와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향후 참여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고정된 참석자들이 계속 만나 회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가급적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해 개방적으로 회의를 운영하겠다는 뜻이다. 특히 피해자들의 법률 대리인들을 참여시킨 것은 피해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겠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 해석된다.

■무엇을 논의하나

강제징용과 관련된 모든 문제가 논의될 수 있다. 협의체를 구성했다는 것 자체가 일본기업으로부터 직접 배상을 받아내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협의체에서 논의되는 내용도 일본기업의 직접 배상이 아닌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데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기업이 직접 배상하는 것은 아니면서도 법원의 판결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해법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접근법은 크게 두 가지다. 2018년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본기업들로부터 배상 받을 권리를 가진 피해자 15명(생존자 3명)에 대한 해법과 현재 소송을 진행 중이어서 아직 판결이 나오지 않은 1000여명의 피해자들에 대한 문제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시급한 것은 확정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이 압류된 일본 기업들의 국내자산을 매각·현금화하는 것을 연기하거나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피해자들이 법원의 판결에 따라 법적 권리를 가졌기 때문에 정부의 힘으로 막을 수는 없다. 피해자들의 동의를 얻어야만 한다. 만일 1명이라도 거부하면 현금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강제징용 해법 마련에서 가장 어렵고 민감한 부분이 바로 피해자에게 동의를 구하는 작업이다.

현금화를 막는다고 해도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지금과 같은 상태가 재발되는 것을 막으려면 현재 소송중인 피해자들이 확정판결을 받기 전에 합리적인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일본기업의 직접 배상 대신 한·일 양측이 참여하는 재단이나 기금을 조성해 해결하는 방법 등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문제를 국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갖추는 작업도 필요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논의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외교적 보호권 요청한 피해자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의 소송 대리인들은 이날 외교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018년 대법원 판결이 인정한 한국 정부의 ‘외교적 보호권’의 발동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소송 당사자인 변호인단과 일본기업의 협상이 성사되도록 중재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다. 외교적 보호권은 자국민이 외국에 의해 입은 피해에 대해 국가가 피해자를 대신해서 구제 노력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개인청구권과 정부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되지 않았다는 대법원 판결에 근거한 것이다.

이는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의 압류자산을 현금화하는 것 외에 다른 해법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배상 못지 않게 가해자인 일본기업의 진정한 사과도 중요한 요소라는 의미다. 피해자들이 현금화가 가져올 외교적 파장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데다 현실적으로 소송 결과를 충족시키고 남을 정도의 현금화가 가능한 것인지 불투명하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 문제가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을 만족시키면서도 국민들에게 확장력 있는 방안을 도출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면서 “민관협의회를 앞으로도 수차례 개최해서 안을 도출해나가도록 하자는 것에 참석자들이 모두 공감했다”고 말했다.

유신모 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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