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지속된 혐오·폭력은 소녀의 삶을 어떻게 파괴했나

임근호 2022. 7. 4.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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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블은 목요일에 시작됐다. 저녁 6시에. 적어도 어밀리아가 기억하기론 그랬다."

일곱 살 소녀 어밀리아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노 본스》(창비·사진)는 2018년 북아일랜드 작가로는 처음 세계 3대 문학상인 '부커상'을 받은 애나 번스의 데뷔작이다.

길에서 친구들과 놀 수 없을 거란 말에 "길 어귀에서 못 놀 정도로 나쁜 일이 뭐람?"이라고 생각하던 일곱 살 어밀리아는 이후 30년 가까이 폭력이 일상을 처절하게 파괴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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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문학상 '부커상' 작가
애나 번스 데뷔작 《노 본스》 출간
1969~1998년 북아일랜드 분쟁
7세 소녀 어밀리아가 겪은
국가·가족안의 폭력과 영향 그려

“트러블은 목요일에 시작됐다. 저녁 6시에. 적어도 어밀리아가 기억하기론 그랬다.”

일곱 살 소녀 어밀리아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노 본스》(창비·사진)는 2018년 북아일랜드 작가로는 처음 세계 3대 문학상인 ‘부커상’을 받은 애나 번스의 데뷔작이다. 책은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에 있는 ‘아도인’이란 작은 동네를 배경으로 1969년부터 1998년까지 이어진 북아일랜드 분쟁 시기(트러블)를 그린다.

트러블은 아일랜드와 재합병하려는 가톨릭교도 세력과 현재 속한 국가인 영국에 그대로 남으려는 개신교도 세력이 충돌하며 생겼다. 트러블은 수많은 삶의 터전을 파괴했다. 민간인을 포함해 3500명 넘는 사망자를 냈다. 《노 본스》는 이 시기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삶과 정신이 어떻게 피폐해져가는지, 지역 공동체가 어떻게 무너져내리는지 생생하고 서늘하게 묘사한다. 그러면서도 연민과 유머를 잃지 않는다.

책은 1969년 아도인에서 처음 소요가 시작된 날부터 1994년 어밀리아와 친구들이 함께 모여 뉴스로 정전 협상 소식을 접하는 날까지 시간순으로 따라간다. 사건을 한 장면, 한 장면 보여준다. 이야기마다 중심인물이나 시점이 달라지는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어밀리아다.

길에서 친구들과 놀 수 없을 거란 말에 “길 어귀에서 못 놀 정도로 나쁜 일이 뭐람?”이라고 생각하던 일곱 살 어밀리아는 이후 30년 가까이 폭력이 일상을 처절하게 파괴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폭력으로 가득하다. 국가의 폭력, 무장단체의 폭력, 학교 선생님들의 폭력, 학생 사이의 폭력, 가족 안에서의 폭력이 겹겹이 어밀리아를 극한으로 몰고 간다.

결국 어밀리아는 “대체 사람이 장례식에 몇 번이나 가야 하는 건가?”라고 자문할 정도로 메말라갔다.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가 중상을 당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일은 신경 쓰지 말고 빨리 가보라”는 직장 상사의 배려에 짜증을 낼 정도가 됐다.

아도인에서 태어나고 자란 번스는 부커상 수상 당시 소감에서 “나는 폭력과 불신, 피해망상이 만연하고 스스로 알아서 생존해야 하는 곳에서 성장했다”고 말했다. 멀다면 먼 과거, 우리와 상관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혐오와 편 가르기로 병들어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책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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