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 400원 인상' 청소노조 집회..소송 연대생이 고민해야할 것들
[왜냐면] 윤지선 | 시민단체 ‘손잡고’ 활동가
노사분규가 때때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튈 때가 있다. 이번 연세대학교 학생 3명이 교내 집회를 한 학교 청소·경비노동자를 상대로 학습권 침해를 주장하며 민형사소송을 제기한 경우가 그렇다.
소송에서 학생들은 학습권 침해를 주장했다. 이 과정을 보면서 2014년도 울산과학대학교 청소노동자들에게 제기된 가처분 소송이 떠올랐다. 당시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자 대화를 거부한 학교법인은 이들의 교내 농성을 금지하는 가처분신청을 냈다. 재판 과정에서 학습권 침해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탄원서가 증거자료로 제출됐다. 법적 대응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은 일터였던 학교에서 더는 농성을 하지 못하게 됐다. 그렇다고 소송이 농성을 멈추게 한 것은 아니다. 대화를 거부한 학교가 끝내 노동자들을 해고하면서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학교 밖 농성은 계속되고 있다. 울산과학대가 떠오른 이유는 같은 청소노동자의 농성이어서만은 아니다. 소송이 남긴 상처 때문이다. 농성 금지 가처분 결정 이후 재판에 참여한 재학생들 일부가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청소노동자들을 자신들의 졸업식에 초대했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사과했다. 울산지역연대노조 김순자 울산과학대 지부장은 소송에 참여한 학생들, 지켜본 학생들, 그리고 청소노동자들 모두에게 소송이 상처만 남겼다고 말했다. 정작 청소노동자들을 탄압해 사태를 키운 학교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연세대 학생의 소송은 이와 다를까. 청소노동자들에게 소송을 건 학생 3명이 사회적 주목을 받고 있지만, 청소노동자를 지지하는 재학생들의 ‘공동대책위원회’ 활동이 먼저 있었다. 공대위 입장문에 연서한 재학생 수는 2600여명에 이른다. 그럼에도 ‘손배소송’이 주는 자극성 때문인지 학생들과 청소노동자의 대립 구도가 더 시선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학생과 청소노동자들의 상처가 깊어지고 있지만, 정작 사태를 악화시킨 학교는 침묵하고 있다.
이 사태의 근본적인 책임은 노동기본권을 외면한 학교에 있다.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이 농성에 나선 이유는 간단하다. 최저임금 인상분에 맞춰서 내년 시급을 청소노동자는 400원, 경비노동자는 440원 인상하라는 것이다. 또 정년퇴직에 따른 인원 보충, 샤워실 설치 정도다. 상식적인 요구다. 학교가 대화에 나서면 농성은 멈출 수 있다.
연세대생 3명은 농성을 멈추게 하기 위해 소송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즉각적인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최근 노조의 집회·시위를 두고 회사가 아닌 3자가 청구한 손해배상소송에 대한 판결이 있었다. 일진다이아몬드지회가 일진 본사빌딩 로비에서 점거농성을 한 것을 두고 해당 건물 입주민들이 제기한 소송이다. 상가 직원 등 146명은 점거로 통행 방해, 불안감, 혐오감 등을 유발했다며, 노조를 상대로 1인당 84만원씩 총 1억2천여만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해당 소송에서 재판부는 ‘수인한도’를 강조했다. 수인한도는 환경권의 침해나 공해, 소음 따위가 발생하여 타인에게 생활의 방해와 해를 끼칠 때 피해의 정도가 서로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뜻한다. ‘집회 시위의 자유’도 수인한도가 존재한다. 서울서부지법 민사5단독 공성봉 판사는 지난해 5월 원고들이 주장하는 법익 내지 생활이익이 수인한도를 넘을 정도로 침해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또 본사 건물은 회사의 주요 의사 결정이 이뤄지는 장소이며 점거 방식 역시 무단이 아닌 부분 점거로 노조가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한 행위를 문제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이 판결을 미뤄봤을 때, 연세대 노동자들의 시위도 수인한도를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문제를 풀 책임과 권한은 학교에 있으므로 노동자들은 학교 안에서 농성할 수 있다. 더구나 청소노동자들의 농성은 주요 시설을 전면적으로 점거하지도 않았고 폭력과 파괴 행위를 수반하지도 않았다.
소송을 제기한 학생들이 주목해야 할 점은 또 있다. 바로 소송기간이다. 노동자의 손해배상 및 가압류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모임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가 지난 33년간 제기된 손배소송 중 197건을 분석한 결과, 1심 판결까지 걸리는 평균 소송기간은 26개월이었다. 일진빌딩 입주민 소송도 1심 선고까지 19개월이 걸렸다. 승패를 떠나 소송 자체가 사안을 조속히 해결할 수 있는 효율적인 수단이 아니라는 얘기다. 학생들도, 청소노동자들도 몇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서로에게 상처가 될 것이 분명한 이 소송을 견뎌야 할 이유가 없다. 부디 연세대 학생들이 소송 취하를 고민해주길 바란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음주운전, 교장도 못 되는데…‘만취운전’ 박순애가 교육 수장
- 습도 높아 더 찐다…사흘 뒤 장맛비 와도 열대야는 지금 그대로
- “사랑벌레, 짝짓기 중 건들면 안 날고…” 국립 연구관이 떴다
- 한국 예술고 탈락→24살에 독일 ‘종신 수석’ 이승민의 반전
- 그 아파트 편의점에 사람들이 오래 머문 이유
- 박지현, 대선 때 이재명은 맞고 지금은 틀리다…최강욱 때문에?
- ‘성희롱성 발언’ 송옥렬 공정위원장 후보 “과오 인정…깊이 사과”
- ‘미성년’ 오빠에게 친족성폭력 당한 아동은 보호받지 못한다
- ‘임신 6주’ 10살 성폭행 피해아동, 임신중지 못해…미국 대혼돈
- ‘사랑벌레’에 놀랐던 밤, ‘랜선 이웃’들이 가르쳐준 이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