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벌레'에 놀랐던 밤, '랜선 이웃'이 가르쳐준 이것

한겨레 2022. 7. 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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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서울 은평구청은 ‘사랑벌레(러브버그)’에 대해 긴급 방역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은평구청 제공

[세상읽기] 권김현영 | 여성학 연구자

며칠 집을 비우고 돌아왔다.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짐을 정리하고 샤워를 마치고 나와 보니 거실 조명 근처에 날개 달린 검은 벌레들이 모여 있었다. 이후에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쓰고 싶진 않다. 다만 지금도 그 광경을 떠올리면 온몸이 가려워진다. 대체 얘네들은 어디에서 온 걸까. 뉴스를 찾아봤지만 나오는 게 없었다. 잠을 잘 수 없었다.

나는 벌레공포증이 있다. 특히 날아다니는 검은 벌레를 무서워한다. 최근엔 그런 영화인 줄 모르고 메뚜기가 창궐한 세계를 그린 영화를 무려 돌비스테레오 극장에서 보고 온 터라 벌레에 대한 긴장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이왕 노출된 김에 이번 기회에 문제를 해결해볼까 싶기도 했는데 접근부터 쉽지 않다. 벌레공포증 검색 결과를 확인하는 것조차 괴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을 감으면 천장에 붙어 있던 벌레 모습이 떠올랐기에 더 이상 회피는 불가능했다.

검색을 시작했다. 가장 많은 정보를 얻은 곳은 당근마켓의 동네생활 게시판과 동네 맘카페였다.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정보가 여기에 있었다. 이 벌레는 암수가 붙어 있는 습성 때문에 러브버그라는 별명으로 불린다고 했다. 햇빛에 취약한 편이고 장마가 길어져 습도가 높은 상태에서 대량 번식한 것 같다고 했다. 단순 정보만 있는 게 아니었다. 구청의 늑장 대응을 성토하는 글이 올라왔고 댓글 타래가 이어졌다. 인접한 다른 구에서는 긴급회의를 하고 구석구석 방역을 하는데 우리 구에서는 산 근처만 집중 방역하고 큰길가만 대충 훑고 지나가네요. 구청 공지사항 봤어요? 이 벌레를 진드기를 없애주는 등 환경정화 역할을 하고 물지 않아서 익충이라고 알려져 있다고 안내했어요. 이렇게 개체수가 많은 상황에서 익충이란 말이 무슨 어불성설인가요. 벌레 때문에 가게 문을 닫는 자영업자 생각은 안 하나봐요. 민간자원을 끌어들여서 방역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는데 자원봉사자들을 민간자원이라고 하다니 불쾌하네요.

불안한 주민들은 불만과 고충을 쏟아냈다. 다른 의견도 있었다. 약으로 하는 방역은 어차피 한계가 있고 다른 환경오염을 일으킬 수 있어요. 다른 나라에서는 물에 기름막을 띄워 만든 곤충트랩을 곳곳에 만들어두는 방식으로 방역을 하는데 이런 방식을 시도해도 좋지 않을까요. 식초에 물을 타서 뿌렸더니 뿌리는 모기약보다 효과가 좋네요. 이분 말대로 해보았더니 확실히 방충망에는 덜 붙어요. 산 주변을 중심으로 집중 방역을 하는 게 나을 수 있어요. 이미 도심에 퍼진 건 며칠 지나면 자연사하니 근원지부터 잡는 게 맞지요.

벌레 얘기로 시작했지만 삶과 사랑, 인간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했다. 기후위기에 대한 걱정은 그 어느 때보다 자주 등장했다. 벌레도 사랑을 하네요. 그런데 저게 사랑일까요.

벌레가 나타나고 처음으로 팽팽하던 머릿속 긴장이 풀리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이와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관심은 산책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천변에 산책을 나가도 될까요. 모기장을 씌우고 나가시면 될 거 같아요. 강아지 산책 데리고 나갔는데 괜찮았어요. 아침에 뛰고 왔는데 지금은 많이 없어졌어요. 밤이 되면 많아지고 낮에는 안 보여요. 지하주차장이 습하면 주변을 살피셔야 해요. 밤에 흰옷 입고 나가지 마세요. 햇빛은 싫어하지만 밝은색은 좋아한대요. 천변에 벌레는 많은데 냄새가 없어졌어요. 익충이라길래 비웃었는데 옥상 텃밭에 심은 고추 잎에 붙어 있던 진드기가 사라졌네요. 이 벌레가 익충이라면 이 벌레와 함께 살 수 없어 하는 사람이 제일 환경에 유해한 존재일지도요.

벌레공포증이 있는 나는 당장 눈앞에서 나를 불편하게 하는 저 검은 날개 달린 벌레를 가장 빠른 속도로 박멸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이 각자 대응하는 방식과 새로운 질문과 논의를 이어가는 걸 읽으면서 생각의 방향이 시시각각 달라졌다. 밤새 읽은 어떤 게시물에서도 정답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새로운 질문과 구체적인 경험으로 이루어진 정보들이 벌레의 정체와 유래, 박멸 방법에만 초점이 맞춰졌던 관심을 다른 차원으로 돌려주었다. 이번에도 역시 아는 것이 힘이 되었다. 그리고 내 욕망에 대한 답을 듣는 것만을 앎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혐오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풍부한 질문과 구체적인 경험들로 이루어진 앎이라는 점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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