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너무 늦었다..한국은 어떻게 저출생의 덫에 빠졌나?

이창곤 2022. 7. 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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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곤의 정담]이창곤의 정담 02 _문제 인식

역대 정부의 저출생 정책이 주는 교훈은 명약관화하다. 문제 인식이 늦으면 정책대응이 늦고, 대응이 늦으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는 점이다. 정부와 지식사회가 놓치고 있는 정책의제가 없는지 수시로 예민하게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문제의식이 빈약하면 정책대응도 보잘것없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김상희 부위원장이 2018년 7월5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일하며 아이 키우기 행복한 나라를 위한 핵심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당시 이성기 고용노동부 차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함께 자리해 있다. 연합뉴스

정책의 시작은 ‘문제’다.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누군가가 예민하게 문제라고 여기고 처방을 구해야 그 문제는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로서 의미를 띤다.

봉건사회에서 가난은 문제가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가난했고, 부와 빈곤은 개인이 마음대로 변경할 수 없는 신분에 의해 결정됐다. 하여 사람들에게 가난은 당연했고, 그저 운명이었다. 문제라는 인식이 없었으니 국가와 사회의 개입도 없었다. 하지만 문제라는 인식이 없다고 가난의 고통마저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당시 고통은 외면됐고 방치됐을 뿐이다. 인류가 맞닥뜨려온 ‘사회악’인 빈곤이 중요한 사회문제로 인식돼 국가의 개입에 의한 근대적 의미의 사회정책이 본격 등장한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문제는 인식되고 규정된다. 인식에 따른 진단이 없으면 정책도 없다. 1970년 한해 대한민국에서는 약 101만명의 신생아가 태어났다. 당시 한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아이 수, 즉 합계출산율(출산율)은 4.53명이었다. 10년 전인 1960년에는 6명이었다.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우려한 박정희 정부는 1961년부터 국책사업으로 가족계획이란 이름의 산아제한 정책을 폈다. 그 결과, 1983년에는 출산율이 2.06명으로 낮아졌다. 언뜻 보면 상당한 정책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출산율 2.06명이란 수치의 의미다.

한 사회가 현재의 인구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출산율은 2.1명이다. 저출산은 출산율이 이 수치 이하로 떨어지는 현상이다. 따라서 2.06명이란 수치는 한국 사회가 저출산 상태로 들어갔으니 이제는 산아제한 정책을 그만둘 때가 됐음을 뜻했다. 하지만 당시 전두환 정부도, 지식사회도 이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했다. 산아제한 정책은 이후로도 이어졌고, 출산율 하락은 지속됐다.

저출생(저출산) 문제는 정책대응에서 문제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준다. 정책은 ‘타이밍’이다. 저출생 고령화 등 인구 문제는 서구 국가나 일본의 경험으로 볼 때, 사회현상으로 굳어지기 이전에 대응해야 효과도 크고, 비용 부담도 적다. 대응 시기를 놓치면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도 효과는 더디고 불확실하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의 저출생 대응은 문제 인식부터 늦었고, 더불어 대응도 늦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저출생의 덫’을 낳았다.

19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출산율은 1.6~1.7명으로 인구 대체 수준 아래의 낮은 수준을 지속했다. 그런데도 산아제한 정책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부를 거치면서 계속됐다. 가족계획 사업이 폐기된 것은 1996년에 이르러서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한국의 출산율은 어느새 1.31명으로 낮아져 있었다. 출산율 1.3명 미만은 초저출산에 해당한다. 2002년에는 출산율이 급기야 1.18로 떨어졌다. 이로써 한국은 초저출산 국가가 됐다. 사정이 이런데도 여전히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이 뚜렷하지 않았고, 제대로 된 정책대응 또한 이뤄지지 못했다.

저출생은 고령화를 가속하는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고령화 문제는 저출산에 견줘 비교적 이른 90년대 초 시작됐으나 본격적인 관심 대상이 된 것은 2000년 전체 인구에서 65살 이상 고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율(노인인구 비율)이 7%를 넘기면서부터다. 다만 고령화 대책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왔을 뿐, 정책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우리 사회가 저출생 고령화란 인구위기 문제를 정부의 정책의제로 인식하며 대책에 나선 것은 결국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께부터다.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선 정부는 2004년 2월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를 발족했고, 2005년 5월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라 위원회는 그해 9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로 격상됐고, 이듬해부터 5년마다 범정부 차원의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 집행에 나섰다.

정책 방안을 짜서 집행한다고 정책 효과가 나타난다는 보장은 없다. 응당 돈(예산)과 사람(인력 또는 조직)이 알맞게 뒷받침돼야 한다. 이런 뒷받침이 있어도 진단이 틀려 대응 방향이 어긋나면 역시 효과를 보지 못한다. 정확한 진단, 적절한 목표, 실현할 수 있으면서도 시민이 수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 등이 두루 잘 작동돼야 한다.

저출생 대책에는 그동안 상당한 돈과 인력이 투입됐다. 그런데도 “백약이 무효”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개선은커녕 악화일로였다. 1970년 100만명을 넘기던 출생아 수는 2021년 26만5천명으로, 1970년 이후 최저치로 내리막을 탔다. 2010년 이래 1.2명 안팎을 유지하던 출산율은 2018년 0.98명으로 1명 아래로 떨어지더니 2021년에는 0.81명 수준으로 낮아졌다.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출산율이 1명 미만인 나라다.

총인구 감소는 필연이다. 대한민국 인구는 2020년 5184만명을 정점으로 지속해서 줄어 2070년에는 1970년대 인구수와 엇비슷한 3766만명이 될 전망이다. 초저출산은 심각한 고령화로 이어져 노인인구 비율도 2025년 20%를 넘길 전망이다. 이로 인해 노년부양비(생산연령인구 100명이 부양하는 65살 이상 고령인구 수)가 크게 늘고 경제성장은 둔화하고, 연금재정 수지는 악화할 것이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무엇이 우리 사회를 ‘출산기피 사회’로 만들었을까? 정부 정책은 왜 출산율 급락을 막지 못했나? 저출산정책은 때늦은 문제 인식, 뒤늦은 대응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정책목표도 어긋났다는 평가가 많다.

정부의 저출생정책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부터 본격화됐다. 정부는 법에 따라 5년마다 이를 경신해 현재 4차 계획이 시행되는 중이다. 이들 계획은 다양한 비판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출산력 제고’를 내건 초기의 정책목표가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출산력을 올린다는 게 목표가 될 수는 없었다. 정책의 목표는 임신·출산·육아가 부담되지 않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어야 했다”(김용익)는 성찰이다. 하지만 이런 기조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로도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는 3차 기본계획 목표를 수정한 데 이어 4차 기본계획을 세웠다. 문 정부는 “(기존의)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과제를 정리해 정합성을 높이고 무엇보다 개인의 삶의 질 향상이란 새 정책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부부 육아휴직 활성화, 공보육 확충 등을 실행했지만, ‘새 패러다임’은 국민의 공감을 미처 얻지 못했고, 실행 전략마저 부재해 초저출생 흐름을 늦추지도 바꾸지도 못했다.

저출생 난제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대응방향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 윤 정부가 110대 국정과제에서 저출생 분야를 다룬 대목은 ‘안전하고 질 높은 양육환경 조성’ 부분뿐이다. 여기엔 부모급여(0~11개월 자녀를 둔 부모에게 월 100만원 지급)가 포함됐지만, 내용이 전체적으로 충실하지 못하다는 평가가 많다. 고령화 부문도 ‘100세 시대 일자리·건강·돌봄 체계 강화’ 부분에서 노인일자리 확충 등을 언급했지만 기존 정책을 되풀이하는 수준이었다.

윤 정부는 지난달 24일 기획재정부 1차관을 팀장으로 인구위기대응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키고 첫 회의를 열었다. 이를 통해 7월부터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하나, 우리 사회의 핵심 난제인 저출생 고령화에 대한 문제 인식 자체가 빈약해 보여 우려를 낳는다.

기실 우리 사회의 해묵은 인구위기 난제인 저출생 문제는 한 정권의 임기 안에 성과를 보기 어렵다. 이념과 정권을 넘어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정책을 집중적으로 펴는 게 중요하다. 때로는 과감한 정책 혁신도 꾀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선 이 난제를 반드시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의 저출생정책이 주는 교훈은 명약관화하다. 문제 인식이 늦으면 정책대응이 늦고, 대응이 늦으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는 점이다. 정부와 지식사회가 놓치고 있는 정책의제가 없는지 수시로 예민하게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문제의식이 빈약하면 정책대응도 보잘것없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창곤 |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사회정책 박사. 복지를 중심으로 노동, 주거, 환경 등 사회정책 이슈를 두루 다뤘다. 기동취재팀장, 지역편집장(전국부장), 부국장,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등을 지냈다. 특히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을 역임하면서 불평등, 복지국가, 생태위기 등을 우리 시대 핵심 이슈로 의제화하고자 했다. 지은 책으로는 <복지국가를 만든 사람들>, <불평등 한국, 복지국가를 꿈꾸다>(공저), <성공한 나라 불안한 시민>(공저) 등이 있다.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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