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Why]이멜다 설치고, 독재자 아들 대통령 된 필리핀..왜?
수 천 켤레의 구두로 기억되는 '사치의 끝판왕' 이멜다는 아직 건재하다. 93세 생일을 맞아 지난 3일 필리핀 마닐라 도심에는 이멜다의 대형 사진과 축하 메시지가 떴다. 아들은 필리핀의 현직 대통령이다. 20년 넘게 장기집권한 독재자 고(故)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최근 36년만에 대통령에 오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64)의 엄마다. 심지어 부통령은 마약 전쟁 명목으로 민간인 수천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딸 사라 두테르테(43)다.
왜 필리핀 국민들은 이멜다를 용서하고 독재자의 아들을 대통령으로 택했을까?
① SNS 독재 시절 미화··"정보 통제되는 필리핀"
지난달 말 마르코스 대통령 당선 이후 외신들은 여러 분석기사를 내놨는데, 공통적으로 필리핀의 소셜미디어(SNS)와 언론 통제를 꼽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소셜미디어에서 마르코스 가족들의 이미지를 회복시키고 심지어 윤색하는 것을 도운 허위 정보 캠페인이 수년간에 걸쳐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WP에 따르면 화려하게 필터링 된 틱톡 이미지들이 마르코스 시대를 재밌게 미화해 친마르코스 선전을 했고, 계엄령 체포 자체가 없었다는 등의 가짜 유튜브 동영상도 확산됐다.
또, 마르코스 가문이 어마어마한 양의 금을 필리핀 사람들에게 나눠줄 것이라는 설도 퍼졌고, 온라인상에서는 마르코스 가족에 대한 비난을 처리하기 위한 '트롤'(Troll·인터넷상의 선동 공작 행위)이 따로 운영되기도 했다.
마르코스와 두테르테라는 두 악명높은 정치 유력 가문들이 힘을 합치면서 두테르테 정권을 비판하던 현지의 주요 언론사들은 문을 닫았다. 7천여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된 필리핀에서 여론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은 가짜뉴스를 기반으로 한 SNS였다.
틱톡에서만 1천만명 이상의 구독자를 가진 마르코스는 선거 기간에 토론이나 언론 인터뷰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대신 소셜미디어 인물들과 블로거들로 자신의 주변을 둘러쌌다.
② "민주화 믿음 말라버린 필리핀 국민들, 독재 향수 택해"
SNS 캠페인만으로 필리핀 국민들의 선택을 다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카고 대학 사회학자인 마르코 가리도 교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지난 30년 동안 대통령 탄핵 심판, 정치 시위, 부패 등을 겪으면서 정계와 민주적 통치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이 있었다"고 WP에 분석했다.
가리도 교수는 "국민들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 말라버렸고, 두테르테 정부 기간 동안 비자유주의적 통치에 대한 취향을 발전시켰다"고 말했다. 즉, 지난 36년간의 여러 정치적인 실망이 마르코스 시대에 대한 향수를 키웠다는 것이다. 20년 장기집권 기간에 12조 원이 넘는 돈을 부정축재한 마르코스 전 대통령.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독재 타도를 외쳐 승리했고, 수도 마닐라는 '민주화의 성지'가 됐지만 필리핀 국민들은 경제 발전으로 보상받지 못했다.
필리핀은 여전히 가난하다. 태국과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이 7%대 고속성장을 이루는 동안 필리핀은 5% 안팎의 성장에 머물렀으며, 빈곤율도 극심하다.
코로나19 타격도 컸다. 1억1천만 인구 중에 1천만명이 해외에 취업해 고국에 외화를 보내왔지만, 코로나19로 많은 이들이 귀국해 외화벌이가 어려워졌다. 관광산업도 붕괴됐다. 이런 절박함 속에 60, 70년대의 고도 경제성장이 가능할 것이라는 향수가 국민들의 선택을 이끈 것으로 보인다.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것은 6년 단임제 마르코스 대통령이 장막 뒤에 숨어있다는 것이다. 필리핀 정부의 언론 및 정보 통제로 이들이 제대로 된 국가 운영을 하는지 감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호주의 캔버라 대학 사회학 교수 니콜 쿠라토는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통치할지 충분히 알지 못한다. 그들은 필리핀에서 정보를 퍼트리는 과정을 통제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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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조은정 기자 aori@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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