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수익률 8~9% '질주'..호주 '연금 백만장자' 7배로 껑충
2013년 디폴트옵션 도입
고객 따라 맞춤형 자산배분
사용자 부담금 10% 지원
稅혜택·수수료 표준화 강점
"35세 평균임금 근로자 기준
은퇴할 때 잔액 9만弗 늘어"
◆ 디폴트옵션發 퇴직연금 빅뱅 ⑤ ◆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 닛산 호주법인에서 30년 넘게 근무한 그는 퇴직 후 연금 잔액이 100만호주달러가 넘는다. 소위 '연금 밀리어네어'다. 연금 수익률을 획기적으로 높여준 마이슈퍼(MySuper·디폴트옵션) 수혜를 받기 전 세대인데도 적지 않은 연금을 수령하게 된다.
그는 "당시 법정 최소 비율보다 훨씬 높은 12%를 회사에서 적립하면서 많은 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며 "노령연금(age pension) 수급 연령이 67세인데 지금으로선 퇴직연금만으로도 만족스러운 노후생활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근무하던 시절 최소 분담률은 3% 수준이었다.
2013년 6월 도입된 호주형 디폴트옵션인 마이슈퍼 이후 퇴직연금 규모가 커지고 연 8~9% 수익률로 질주하면서 은퇴 후 연금계좌 잔액도 급증하고 있다. 호주건전성감독청(APRA)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잔액 100만호주달러 이상인 계좌는 2만1000개다. 2015년 만해도 3000개에 불과했지만 7배나 증가한 것이다. 잔액 50만~99만호주달러 계좌 역시 2만5000개에서 13만2000개로 불어났다. 마이슈퍼가 도입된 지 이제 약 10년이 됐다는 것을 감안하면 비약적인 성장이다. 연 수익률 1~2%에 허덕이며 노후 보장 연금으로서 제구실을 못하고 있는 한국 퇴직연금과 대비된다.
호주 동포 필립 유 씨(30)는 "호주에선 슈퍼펀드를 인생의 '트로피'로 부른다"며 "이혼할 때 집은 내줘도 슈퍼펀드만은 나눠줄 수 없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전 국민 대상 공적연금인 노령연금과 함께 호주 연금체계의 양대 축이 퇴직연금이다. 1990년대 초 퇴직연금이 노사 단체협약에 포함되면서 가입률이 80%까지 급증했고 1992년 사용자법정부담금법(SG법) 시행으로 부담금(3%)이 의무화되면서 전 근로자로 확대됐다. 특히 소득세가 45%에 달하는 호주에서 연금계좌에는 15%라는 낮은 세율이 적용되는 세제혜택이 주어졌다. 부담금을 적립할 때나 투자 소득이 발생할 때 각각 15% 세율이 적용된다.
2013년 6월 새로운 디폴트옵션인 마이슈퍼가 도입되며 수익률에 날개를 달았다. 특히 연금계좌 자금의 원천인 막대한 사용자 부담금은 마이슈퍼 상품을 제공하는 기금에만 허용된다. 연기금당 1개의 마이슈퍼를 제공하면서 근로자들 편의성도 높였다.
가입자는 자신의 투자성향(현금 보유, 보수적, 보수적 성장, 성장, 고성장)만 고르면 그에 맞춰 자산배분이 이뤄진다. 실적배당형 상품에 적절하게 자산을 배분하면서 수익률을 끌어올렸다. APRA에 따르면 전체 퇴직연금의 최근 1년간 수익률은 7%, 10년간은 7.7%다. 동일 디폴트 상품에는 같은 수수료가 적용되는 수수료 표준화로 근로자들 부담도 낮췄다. 이런 각종 혜택 덕분에 노후생활 보장에 최적화됐다는 믿음이 확산되면서 작년 말 기준 전체 연금계좌의 64%인 1422만개가 마이슈퍼에 가입돼 있다.
본격적으로 퇴직연금을 확대한 지 10여 년 만에 국민의 노후 안전판을 마련한 호주 정부는 이제 '질적 성장'에 나선다. 지난해 도입한 '유어 퓨처, 유어 슈퍼(Your future, your super)' 개선안을 통해서다. 여기에는 회사를 이직할 때도 연금계좌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스테이플링'이 도입됐다.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수수료만 빠져나가는 '좀비 계좌'를 줄이기 위한 복안이다.
사용자 부담금도 단계적으로 상향된다. 기존 3%에서 2000년대 들어 9%로 올라섰고 작년부터 두 자릿수인 10%가 됐다. 나아가 호주 정부는 이를 2025년까지 매년 단계적으로 0.5%포인트씩 올려 12%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13개 산업형 기금 연합체인 호주산업기금(ISA)의 버니 딘 최고경영자(CEO)는 "평균 임금을 받는 35세 호주인을 기준으로 은퇴 시 추가로 잔액이 9만호주달러 불어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시드니·멜버른 = 임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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