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권 부정한 토머스 대법관 쫓아내라" 100만명 육박

김태훈 2022. 7. 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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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중에서도 보수' 토머스에 성난 진보
"트럼프와 부적절한 관계".. 탄핵론 부상
대법관 청문회 때 지지했던 바이든 '난감'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가장 보수적인 인물로 통하는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 AP연합뉴스
보수 절대우위 구도의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권은 헌법상 권리가 아니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은 뒤 미국 사회가 두 쪽으로 갈라져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가운데 집권 여당인 민주당 내부에서도 ‘급진파’로 분류되는 연방의회 의원들이 보수 성향인 클래런스 토머스(74) 대법관 탄핵을 추진하고 나서 주목된다. 1991년 당시 상원 법사위원장으로서 토머스 대법관 인준을 지지했던 조 바이든 대통령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보수 중에서도 보수’ 토머스에 비판적인 진보

3일(현지시간) 미국 언론에 따르면 “하원이 토마스 대법관을 탄핵해야 한다”는 내용의 국민청원에 동의한 이가 이날 현재 100만명에 육박했다. 토머스 대법관은 최근 대법원의 낙태 관련 판결에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례를 뒤집는 다수의견에 가담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충의견을 통해 “피임, 성소수자, 동성결혼 등에 관한 기존 대법원 판례도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마디로 여자와 남자가 결혼해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일구는 것 말고는 그 어떤 새로운 형태의 ‘가족’도 인정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49년 전인 1973년 연방대법원이 내린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여성의 낙태할 권리를 폭넓게 인정했다. 이는 낙태권이 헌법상 기본적 권리라는 점을 사법부가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반면 이번에 나온 판결은 “여성의 낙태권은 헌법상 권리가 아니며, 따라서 미국을 구성하는 50개주(州)는 저마다 낙태를 제한할 법률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미국 미시시피주 잭슨에서 3일(현지시간) 한 여성이 낙태 제한에 반대하는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든 채 연방대법원 판결에 항의하고 있다. 잭슨=AP연합뉴스
당장 여성들 사이에선 보수 성향의 공화당 주지사가 이끄는 주들부터 시작해 종국에는 미 전역에서 낙태가 사실상 금지되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현재 대법원은 토머스 등 보수 성향 대법관이 6명, 진보 성향 대법관이 3명으로 보수가 압도적 우위에 있다. 만약 토머스 대법관의 주장처럼 향후 대법원에서 ‘피임도 위헌’이란 결론이 내려진다면 이는 프라이버시(사생활)의 자유 박탈로 이어질 것이란 위기감이 아주 크다.

◆"트럼프와 부적절한 관계"… 탄핵 여론 급부상

이렇게 되자 민주당 안에서도 급진파로 통하는 의원들이 탄핵 카드를 꺼내들고 나섰다. 다만 대법관이 보수적 판결을 내렸다는 것만으로는 탄핵 사유가 성립하지 않기에 이들은 토머스 대법관 아내 지니 토머스의 부적절한 행보를 문제삼고 나섰다. 워싱턴 정가에서 로비스트로 활동하는 지니는 남편 못지 않은 보수주의자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공화당 소속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라고 한다. 진보 진영에선 “지니가 2020년 대선 기간 트럼프의 핵심 측근과 29차례나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며 “현직 대법관의 부인임에도 정치적 중립성을 아예 내던진 것으로, 남편 토머스 대법관한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클래런스 토머스 미국 연방대법관(오른쪽)과 그의 부인 지니 토머스. 사진은 지난 2019년 백악관 초청을 받은 부부가 나란히 행사에 참석하는 모습이다. AP연합뉴스
당장 AOC라는 이니셜로 유명한 민주당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은 “지니가 보수 정치단체를 위해 로비를 하며 올린 수입은 사실상 토머스 대법관한테 제공된 불법 정치자금으로 볼 수 있다”며 이 부분에 대한 조사 필요성을 역설했다. 만약 토마스 대법관이 거부한다면 하원이 탄핵에 나서야 한다고도 했다. 민주·공화 양당이 50석씩 균점하고 있는 상원과 달리 하원은 민주당이 원내 과반 다수당이라 민주당이 탄핵을 당론으로 정하면 못할 것도 없다.

역시 급진파인 일한 오마 하원의원 역시 “2021년 1월6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연방의회 의사당을 습격한 쿠데타 시도의 배후에 토머스 대법관 부부가 있다는 의혹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며 필요한 경우 탄핵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민주당 원내 지도부는 ‘3권분립 침해’라는 역풍이 일까봐 대법관 탄핵에는 부정적인 기류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관 인사청문회 때 지지했던 바이든 ‘난감’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에서도 민주당의 토머스 대법관 탄핵 추진은 몹시 부담스러운 상황일 수밖에 없다. 1991년 당시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토머스 판사를 대법관 후보로 지명했을 때 상원 법사위원장으로서 이를 강력히 지지했기 때문이다. 토머스 판사의 경우 상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애니타 힐이란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한때 인준안 가결이 위태로웠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이끄는 상원 법사위는 대체로 토머스 판사를 두둔하고 ‘힐의 폭로엔 신빙성이 없다’는 투로 분위기를 몰아갔다. 결국 상원 본회의 표결에서 찬성 52표 대 반대 48표로 토머스 대법관 인준안이 가결됐다.

훗날 바이든 대통령은 주변에 “토머스한테 분명히 문제가 있었지만 ‘흑인 대법관’의 탄생 필요성에 공감했고, 또 혹시 불거질 지 모를 흑인들의 반발을 의식해 토머스 편을 들어줬다”고 해명했다. 대신 바이든 대통령은 나중에 힐한테 정중히 사과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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