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 맞은 듯 수백마리 사체"..러브버그에 습격 당한 마을 가보니[르포]

김성진 기자 2022. 7. 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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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의 한 꽃집 상인 오행순씨(74)는 이날 아침 빗자루로 쓸지 못한 가로수 아래 러브버그 사체들을 보여줬다. 적어도 200마리는 돼 보였다. /사진=김성진 기자

"어머나 세상에!"

4일 오후 1시쯤 서울 은평구 연서시장의 한 꽃집에서 손님이 비명을 질렀다. 율마(측백나무과 식물) 향을 맡으려 손으로 잎을 움켜쥐었다가 떼는 순간 시커먼 '러브버그(사랑벌레)' 한쌍이 날아오른 것이다.

꽃집 주인 오행순씨(74)는 "가뜩이나 더운데 얘네(러브버그) 때문에 더 짜증난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매일 아침 꽃집 앞에 죽어있는 러브버그 수백마리 사체를 빗자루로 쓸어야 했다. 팔려고 내놓은 꽃에도 벌레가 들어갔다. 오씨는 "그럴 때면 손님도 '징그럽다'고 기겁한다"며 "나도 소름 돋는다"고 했다.

주택가도 마찬가지다. 은평구의 한 빌라 1층에 사는 오씨는 최근 일주일 동안 집 안에 러브버그가 최소 10쌍씩 죽어있었다고 말했다.

4일 오전 11시쯤 서울 은평구의 인도 끄트머리에 러브버그들이 죽어있다. /사진=김성진 기자


이날 취재진이 방문한 은평구 일대는 이 벌레 때문에 큰 피해를 보고 있었다. 은평구 구산동에서 30여년 살았다는 60대 주민 A씨는 "동네가 산과 먼데 왜 이렇게 벌레가 득시글거리는지 모르겠다"며 "최근 일주일 동안 모기약으로 하루 최소 10마리씩 집에 들어온 벌레를 잡고 있다"고 했다.

특히 시장 상인들 피해가 컸다. 과일, 생선 등 내놓고 파는 음식 위에도 러브버그가 앉았다. 손님들은 포장해 파는 음식도 사길 불안해했다. 22년째 두부를 포장해 파는 40대 상인 B씨는 "가끔 손님들이 '여기 벌레 들어갔던 것 아니냐'고 묻는다"며 "커튼 치고 두부를 만들고, 즉시 포장하는데도 여전히 불안하는 손님들이 있었다"고 했다.

55세 상인 C씨는 "아침마다 문을 열면 현관 바닥에 벌레 사체가 득시글하다"며 "재앙을 마주한 듯 한데 앞으로도 계속 이상현상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러브버그는 도심에서 떼로 몰려다닌다. 번식력도 강하다. 러브버그는 수컷과 암컷이 교미를 마치고도 붙어서 날아다닌다. 주민들은 이 특징이 러브버그만의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입을 모은다.

이동규 고신대학교 위생곤축학과 교수는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러브버그는)교미가 끝나고도 다른 벌레와 교미하지 못하도록 붙어 있는다"고 했다.

이 교수는 "수천, 수만마리가 함께 태어나 성충이 돼서도 떼로 몰려다닌다"며 "3~4일 동안 교미한 후 한마리가 알을 100~350개 낳는다"고 했다.

사람에게 달려드는 특징도 있다. 보통 파리, 모기는 손을 휘두르면 물러나지만 러브버그는 아랑곳 않는다. 실제로 이날 본 러브버그들은 민소매 입은 은평구 주민들의 팔, 허벅지에 수시로 앉았다. 주민이 쓴 마스크 접힌 부분에 앉는 러브버그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은평구 주민 D씨(40)는 "벌레가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며 "손가락으로 퉁기지 않으면 몇분씩 몸에 붙기도 한다"고 했다.

서울 은평구에서 꽃집을 하는 오행순씨가 장미를 꽂아두고 파는 통에 4일 오후 1시쯤 물이 고였고 러브버그들이 20여마리 죽어있다./사진=김성진 기자.
따뜻하고 습했던 겨울, 오랜 가뭄...예견된 일이었다
러브버그는 외래종이 아니다. '우담 털파리'라는 우리말 이름도 있다. 올해 처음 출몰한 것도 아니다. 은평구청 관계자는 "매년은 아니지만 러브버그가 때때로 출몰했다"며 "재작년에도 나타났다"고 했다.

이렇게 대규모로 출몰한 건 처음이다. 은평구에 42년째 산다는 김모씨(54)는 "(러브버그가)이렇게 득시글댄 것은 살면서 처음"이라며 "몸에 계속 달라붙어 징그럽고 스트레스 받는다"고 했다.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난 배경에는 '기후 변화'가 있다. 러브버그는 봄, 여름에 산란하고 번데기 상태로 겨울을 지낸다. 습한 기운을 좋아해서 이듬해 봄, 여름에 비 오는 날에 성충으로 우화한다.

이 교수는 "지난 겨울이 비교적 따뜻하고 습해서 번데기들의 생존 확률이 높았다"며 "올해 가뭄이 길어서 (최근 장마 때) 번데기들이 한번에 집단 성충이 됐다"고 했다.

은평구청 관계자들이 4일 오후 2시쯤 러브버그 근원지로 꼽히는 앵봉산 일대를 방역하고 있다./사진제공=은평구청.

러브버그는 사람에게 무해하다고 알려졌다. 독성도 없고 사람을 물지도 않고 질병을 옮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죽으면 사체가 평균 4.25PH 산성을 띄어서 자동차 색을 변하게 하거나 라디에이터에 들러붙어 열 교환을 어렵게 만든다. 러브버그는 자동차 매연 냄새를 좋아한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긴급 방역 중이다. 은평구는 이날 러브버그 근원지로 꼽히는 앵봉산, 봉산, 이말산 일대에 살충제를 뿌리는 등 집중 방역 활동을 하고 있다. 마포구도 전날(3일)부터 선제적 방역에 나섰다. 러브버그는 최근 은평구 말고도 서울 서대문구, 인천 일대로 퍼졌다고 전해졌다.

긴급 방역이 생태계에 극심한 악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이 교수는 이날 머니투데이와 통화에서 "민가 쪽으로 내려온 러브버그들은 성충 일부일 것"이라며 "야산에 직접 방제를 하지 않는다면 생태계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했다.

이 교수는 집에 있는 재료들로도 '러브버그 퇴치제'를 만들 수 있다고 조언한다. 구강청결제에 오렌지, 레몬즙 세 스푼을 섞어 방충망에 뿌리면 러브버그가 잘 붙지 않는다고 한다. 이 교수는 "러브버그가 죽은 자리에 남은 산성은 베이킹소다에 물을 섞어서 닦아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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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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