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김용균, 그리고 김용균'들'은 안녕한가요?
지난 3월2일 열린 20대 대통령 선거 마지막 TV 토론회에서 ‘김용균’이 호명됐다. 심상정 당시 정의당 대선후보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중대재해 예방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가 없다는 점을 유력 후보들에게 질의하면서 김용균의 이름을 다시 꺼냈다.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은 “김용균 사건은 검찰총장 시절 수사를 철저히 시키고 책임추궁을 했다”고만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후퇴 우려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당선 이후에도 ‘김용균’을 불러주지 않았다.
2018년 12월10일 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사망한 이후 노동안전 보장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높은 공감대는 정치권을 움직였고, 중대재해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김용균들’은 일터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에도 매일 1.7명의 노동자가 일터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권미정, 림보, 희음 활동가는 지난 3년여간 김용균씨의 죽음 이후를 살아가는 동료 노동자, 유가족 등의 이야기 담아 <김용균, 김용균들>을 썼다. 김용균재단이 기획해 발간하는 첫번째 책으로 오는 7일 출간된다. 지난달 27일 서울 영등포구 김용균재단에서 저자들을 만났다.
기자와 마주한 저자들의 표정에는 걱정과 두려움, 설렘 등 여러 표정이 교차했다. 모두 김용균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느끼고 있다고 했다. 김용균재단 초창기부터 활동한 권미정 활동가는 “산재 사망사고가 반복되는데도 불구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목소리가 한데 모아지지 않는 걸 보면서, 많은 시민들이 공감하고 연대해 ‘공동의 싸움’으로 이어진 김용균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청소년 노동인권 운동을 했던 림보 활동가, 산재피해가족 네트워크 ‘다시는’에서 글쓰기 강의를 한 희음 활동가가 함께 했다. 희음 활동가는 “김용균이 ‘노동악법 없애고! 불법파견 책임자 혼내고! 정규직전환은 직접고용으로!’라는 피켓을 들고 찍은 사진에 많은 시민들이 공감한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고 말했다. 또 “입사한 지 3개월도 안된 데다 노조에도 가입하지 않은 김용균씨가 남긴 사진의 의미를 다시 기억하고 산재예방 정책이 후퇴하지 말자는 다짐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저자들은 김용균씨와 함께 근무한 이인구씨, 산재 유가족이면서 노동운동가가 된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김용균 투쟁에 앞장 선 이태성씨 이야기를 통해 ‘김용균’을 보고, 또다른 ‘김용균들’로 의미를 넓히고 싶었다고 말했다. 권 활동가는 “이 3명은 위치가 다르고 고통의 색깔이 다 다르지만, 결국 모두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며 “같은 목적으로 함께 투쟁했고, ‘내가 김용균이다’라고 했을 때 이 ‘김용균’이라는 괄호 안에 모두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림보 활동가는 “산재 사고로 다치거나 운명을 달리 하지 않더라도 이를 목격한 주변인들도 2차, 3차 피해에 노출되고, 유족만큼이나 힘들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산재 사건은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용균씨의 죽음 이후 간신히 중대재해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중대재해법은 최근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중대재해법 시행령을 손보겠다고 밝혔고,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이를 당론으로 추진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권 활동가는 “법이 제정된 배경에는 사회적 연대와 힘이 있었기 때문인데, 아직 법 시행 5개월도 안 된 상황에서 이를 흔드는 시도는 김용균 이전으로의 후퇴”라며 “법 제정의 결과보다 왜 이 법이 만들어졌는지를 다시 되새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희음 활동가는 “중대재해를 예방하자는 요구의 동력만큼이나 이를 무력화하려는 흐름도 크다는 걸 보는 마음이 좋지 않다”며 “시스템 혹은 사회 인식 부재로 발생한 산재 사고는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균, 김용균들>은 많은 사람들의 후원(펀딩)으로 세상에 나오게 됐다. 총 753명이 함께 해 하루만에 목표금액 200만원을 넘겼다.
저자들은 김용균이 ‘상징어’처럼 쓰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용균이라는 이름에는 비정규직, 현장실습생, 이주노동자 등이 다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희음 활동가는 “김용균이 잘 기억돼야 다른 이름들을 기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림보 활동가는 “김용균 이라는 이름을 잘 기억한다는 것은, 김용균 이전에도 있었던 수많은 산재 사망사고를 잊지 않는 것”이라고도 했다.
권 활동가는 “이 책을 읽고 함께 공감하고, 산재 예방 정책이 후퇴하지 않도록 내 위치에서 뭘 할 수 있을지 한번씩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자신의 SNS에 공유라도 하면서 산재 사고를 알리는 것부터 직접 연대행동에 나서는 것 등 다양할 것”이라며 “이 책을 매개로 또 다른 김용균들 이야기, 묻혀 있던 이야기들이 더 세상 밖으로 나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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