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 뚫은 물가에 폭염까지..무료 급식소·청년밥집 시름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윤우성 이승연 기자 = "한 30분 기다리는 데 정말 덥네요. 그래도 밥 얻어먹으려면 나와야지…."
4일 오전 11시께 찾은 동대문구 답십리동 무료급식소 밥퍼나눔운동본부 앞에서 만난 김손임(78) 씨는 찬물을 받아 가면서 이같이 말했다.
20여 명의 어르신은 30도를 크게 웃도는 폭염에도 밥퍼를 찾아와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쪽에선 지표면 온도를 낮추기 위해 봉사자가 물을 뿌리고 있었지만, 내리쬐는 태양열에 금세 바닥은 말라버렸다. 에어컨도 없는 건물 내부에서는 봉사자들이 무더위와 씨름하며 어르신들에게 음식을 제공했다.
손민준 밥퍼 부본부장은 밖에서 기다리는 어르신들을 향해 "폭염주의보라고 하는데 다들 조심하셔야 한다"며 "모자라도 쓰시라"고 주의를 당부했다.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김태연(83) 씨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비가 와도 더워도 매일 온다"며 "더워도 이렇게 찾아올 곳이 있다는 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고물가 속에 폭염, 전기요금 인상까지 겹치면서 취약계층들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무료급식소들과 저렴한 밥집들은 '삼중고'를 호소하고 있다.
손 부본장은 "폭염으로 봉사자도 줄어 단체 봉사자가 없는 날은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다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배식에 최소 20명은 필요한데 손이 부족한 날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고물가를 언급하며 "한 식판 당 500원 정도 올랐다고 보면 된다"며 "부담이 꽤 커졌지만 시간 안에 오시는 분들은 최대한 드리고 메뉴에도 제약을 두진 않는다. 안 그러면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4년째 밥퍼에서 봉사를 하는 김경순(78) 씨는 "날이 더우면 사람이 너무 없어서 일이 힘들다. 그러면 내가 국, 반찬, 밥도 한 번에 줘야 한다"고 전했다.
중구 중림동의 무료급식소 참좋은친구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급식소가 큰 만큼 냉방비가 많이 들지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라 어려움이 많다. 밖이 너무 더워 오전부터 문을 열어놓다 보니 냉방비가 급증했다.
신석출 참좋은친구들 이사장은 "혹서기에 많은 노숙인을 불러들여서 쉬게 하려다 보니 전기세만 월 250만원이 나온다. 그런데 정부 지원은 없다"며 "봉사자가 20명은 필요한데 하도 덥다 보니 어제는 3명밖에 안 왔다. 고물가와 겹쳐 많이 힘들다"고 했다.
탑골공원 인근 원각사 무료급식소 주변에서는 폭염으로 높아진 불쾌지수 탓에 급식을 기다리던 어르신들끼리 싸움이 잦아지기도 했다.
급식소 관계자는 "공원 텐트에서 기다리던 어르신들이 더위에 짜증이 나서 사소한 걸로 다투곤 한다"며 "구청에서 냉풍기 같은 시설을 비치해주려고 계획하고 있다고는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식자재비도 한 달에 300만원은 더 들고, 전기요금도 오른다고 하니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기부 물품을 받아 운영하는 푸드마켓도 사정이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
광진구청 산하 푸드마켓의 박문수 센터장은 "체감상 같은 후원금으로 살 수 있는 물품량이 10%는 줄었다. 물가가 계속 오르다 보니 기부 자체가 위축되는 경향도 있다"며 "물품을 받아 가는 분들도 민감해서 가격이 많이 오른 식용유 같은 것은 빨리 가져간다"고 했다.
배고픈 청년들이 자주 이용하는 저렴한 밥집이나 노점도 폭염, 고물가와 싸우고 있다.
김치찌개 1인분을 3천원에 파는 청년밥상문간 낙성대점의 최경환 점장은 "폭염에 음식이 상할 수 있어서 냉장 보관에 신경 쓰는데 공간도 그렇고, 비용도 그렇고 까다롭다"며 "고물가에 전기료까지 좀 타격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노량진 학원가의 컵밥 거리도 폭염에 점포 식당보다 손님이 적었다. 점심시간이었지만 10분 이상 손님이 없어 상인들은 한숨만 쉬었다.
컵밥집을 운영하는 한모(60)씨는 "물가는 오르는데 가격을 올리면 손님이 더 안 오니 올릴 수도 없다"고 말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20대 김모 씨는 "날씨가 더워서 시원한 데서 먹고 싶다"며 "식비가 자꾸 올라 힘든데 요샌 컵밥 가격도 좀 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li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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