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우리 바다"-터키 "독점 불허"..'에게해 사용권' 신경전

박병수 2022. 7. 4.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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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에게해 관광 홍보'에 그리스 "우리 바다, 우리 역사" 발끈
레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앙숙 튀르키예와 그리스가 이번엔 ‘에게해’ 상표등록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튀르키예(터키)는 지난해 말 유럽연합(EU)의 지식재산권 담당 기관에 “튀르키예 에게해”(TurkAegean)란 용어의 상표등록을 신청했다. 관광 홍보 캠페인용 구호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에게해는 지중해에서 튀르키예와 그리스 사이에 펼쳐진 바다를 가리킨다.

문제는 에게해가 고대 그리스 문명이 펼쳐진 무대였고 지금도 에게해의 섬 대부분이 그리스에 속해 있는 등 그리스와 깊게 연관돼 있다는 점이다. 에게해란 이름도 고대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Aegeus)에서 유래했다. 이에 따라 그리스인들에게 에게해는 ‘우리 바다’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럼에도 유럽연합은 지난주 ‘튀르키예 에게해’ 등록을 승인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그리스에선 “튀르키예가 우리 바다와 역사를 빼앗아갔다”는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고 <가디언>이 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지난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가해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몇몇 사람들이 단순히 자기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법적 가능성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리스 출신 마르가리티스 시나스 유럽위원회(EC) 부위원장은 “튀르키예가 ‘튀르키예 에게해’란 용어의 등록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유럽연합이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며 등록 승인 결정이 재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튀르키예도 에게해가 고대 그리스 헬레니즘의 역사 무대였다는 점에 대해선 크게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리스의 에게해 독점을 허용하지는 않겠다는 태도다. 튀르키예의 문화관광부 장관 메흐메트 누리 에르소리는 고대 그리스 호메로스 서사시의 무대인 트로이와 그리스 중계무역의 식민도시 에페수스 유적지가 튀르키예의 해변에 있다는 점을 가리키며 “튀르키예의 에게해는 튀르키예에서 아름다운 지역으로 손꼽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선 두 나라가 이웃한 나라로 비슷한 지리적 환경과 역사, 문화 등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며 화해를 주선하고 나섰다. 그러나 튀르키예의 에게해 관광 홍보 계획은 그렇지 않아도 지중해 동부 해역의 자원 개발과 키프러스 분쟁 등을 놓고 알력을 빚는 두 나라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지난주 나토 정상회의에서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가 “냉정을 되찾을 때까지” 만나지 않겠다며 두 나라간 정상회담을 거부했다. 앞서 5월엔 미초타키스 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튀르키예에 F-16 전투기를 팔지 말라”고 촉구해 에르도안 대통령의 분노를 샀다.

그리스에서는 ‘튀르키예 에게해’ 캠페인이 내년 튀르키예 대선을 앞둔 정치적 맥락을 의심하고 있다. 그리스의 진보정당인 시리자 소속 의원인 게오르게 카트오갈로스는 “단순한 관광 홍보광고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에게해에 있는 그리스 섬들과 경제수역에 대한 영유권에 의문을 제기하려는 의도”라며 “지리적으로 튀르키예의 해변 중 에게해에 접해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면 문제될 게 없지만, 에게해가 전부 아니면 대부분 튀르키예의 것이라는 함의를 갖는다면 그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리스도 오는 9월 총선이 예정돼 있어 두 나라 모두 양보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자칫 갈등이 무력충돌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리스의 국제관계 전문가인 콘스탄티노스 필리스는 “튀르키예의 에게해 관련 주장이 매우 공격적으로, 나아가 거의 종말론적으로 업그레이드됐다”며 “튀르키예가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에 대해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스는 15세기 오스만 투르크에 정복돼 지배를 받아온 아픈 역사가 있다. 그리스는 19세기에 영국과 프랑스 등의 도움을 받아 독립을 쟁취했지만, 이후에도 에게해를 마주하고 있는 두 나라 사이에는 무력충돌 등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1차 세계대전 직후엔 전면전도 겪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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