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수리 한 철"..일감 밀려 안전 뒷전

2022. 7. 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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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기사들
보호장치 없이 작업 부지기수
설치 중 발 헛디뎌 추락·사망도
장비차 없이 수작업도 예사
1인 사업자..노조 도움도 어려워

인천에서 올해로 20년째 에어컨 설치를 하고 있는 정철수(48) 씨는 여름철 에어컨 설치 작업을 두고 “시간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에어컨 설치 작업이 한철이기에 이 시기를 제외한 다른 계절에는 들어오는 작업 건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정씨는 폭염이 시작된 최근부터 주 6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나마 대형 물류센터에서 하루 작업량을 5개로 제한하고 있지만, 대다수 에어컨 설치기사들이 개인사업자다 보니 이보다 더 많은 업무량을 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시작되면서 에어컨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다. 에어컨 설치 요청이 늘어나면서 이를 설치하는 정씨 같은 기사들의 안전 위험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설치 중 추락사고가 재해의 절반을 차지, 우려를 낳고 있다.

정씨는 건수에 따라 하루 벌이가 많아지기에 작업 과정에서 안전 장비는 후순위가 된다고 했다. 그는 “하루 정해진 시간에 빨리 하고 나가기 위해 난간에서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할 때 안전벨트 등 작업에 필요한 보호 장치를 안 하게 되는 일들이 부지기수”라며 “이런 상태로 작업을 하다 자칫 발을 헛디디면 추락 사고로 이어진다”고 토로했다.

실제 에어컨 설치 기사들 사이에서 발생한 사고들 중 추락사고는 가장 높은 빈도를 차지하고 있다. 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에어컨 설치·수리 작업 중 발생한 노동자 사망 사고는 총 8건으로, 연평균 1.6건 발생하고 있다. 같은 기간 에어컨 설치·수리 작업 중 발생한 중상해 재해 53건 중 추락 사고(49.1%)가 절반 가까이나 됐다. ▷넘어짐 사고(15.1%) ▷부딪힘 사고(9.4%) ▷중량물 운반에 의한 사고(7.5%) 등이 뒤를 이었다. 추락사는 실외기 설치 중 구조물에 설치된 난간대(발코니)가 벽에서 이탈하면서 작업자가 함께 추락한 사고가 많았다.

에어컨 설치 중 사망사고는 올해도 발생했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 4월 2일 서울 송파구의 한 상가 5층 외벽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를 점검하던 30대 설치기사 A씨가 12m 아래로 추락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고용부는 사고 원인과 함께 중대재해처벌법·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이 있는지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로 경력 13년차인 에어컨 설치기사 A(42) 씨도 에어컨이나 실외기를 교체할 때 바깥을 통해 건물 안으로 장비를 옮기는 일이 빈번하다고 했다. 에어컨을 옮기는 작업이기에 장비차를 동원하는 것이 최상이지만, 장비차업체와 시간을 맞추다 보면 예정된 일정을 모두 소화하기 어려워 수작업으로 작업에 착수하기 일쑤다.

A씨는 “40~60㎏나 되는 에어컨 한 대를 옮기는 과정에서 장비차가 필요하지만, 장비차업체 사람들도 자신들만의 업무가 있어 이들의 스케줄에 맞추다 보면 작업이 2~4시간은 밀리게 된다”며 “장비차를 빌리는 것 자체도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부득이하게 안전바에 의지해 에어컨을 옮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에어컨 설치기사는 여름 외 다른 계절에는 작업이 거의 없고, 대부분 1인 사업장으로 작업이 이뤄져 노동조합 가입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사고가 발생해도 노조 측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장석원 금속노조 언론부장은 “가정이나 작은 사무실에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하는 기사들은 보통 1인 사업자들로 노조에 소속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에어컨 설치 기사들은 위험한 상황을 무릅쓰고 작업에 몰두하지 않기 위해서 작업 단가를 올려야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정씨는 “에어컨 작업 한 건에 (최저단가인 경우)10만원 정도 부르지만, 작업 과정에서 필요한 에어컨 파이프 등 자제들은 사비로 구입하기에 실질적인 수입은 6만원어치”라며 “이마저도 소비자들이 마치 경매식으로 값싼 에어컨 기사들을 찾는 실정이어서 단가를 올리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호소했다.

김영철 기자

yckim645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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