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수의 삼라만상 72] 인월에서 만난 작은 교회 '진짜 예수(?)'

박명기 기자 2022. 7. 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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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월로 이사를 온 형님댁을 방문하며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남원 대산면 대곡리 안쪽 숨어 있는 작은 교회를 발견했다.

큰길 안쪽 농가 사이의 작은 시골 교회가 마치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 그림 같은 차분함과 평안을 주어 잠시 구경하기로 했다.

나는 유년 시절 앉았던 목포의 외딴 교회당의 자리에 있듯 잠시 앉아 회당 중앙의 십자가를 응시하며 예배당 의자에 놓인 성경책을 만져 보았다.

"바로 믿고, 바로 알고, 바로 살자!" 이 작은 교회에 진짜 예수가 나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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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똥' 작가 권정생 선생 그립다..촌부 옷차림의 예수 모습 목사님

인월로 이사를 온 형님댁을 방문하며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남원 대산면 대곡리 안쪽 숨어 있는 작은 교회를 발견했다. 큰길 안쪽 농가 사이의 작은 시골 교회가 마치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 그림 같은 차분함과 평안을 주어 잠시 구경하기로 했다.

교회 담장 주변에 여름 뜨거운 햇볕에 달궈진 밤나무 잎사귀와 댓잎에서 내는 향취, 교회의 풍경과 매미 소리로 어울려져 그 시간에 매료된 나를 캔버스 화폭처럼 가득하게 채워주었다.

만약 내가 일부러 헛기침을 낸다면 인상 좋은 '강아지똥' 작가 권정생 선생이 다른 문을 열고 금방 나오실 것만 같았다. 그렇게 잠시 밖에서 서성거리다가 "그래 들어가 보자"하며 내친 김에 허락도 안 받고 교회당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조심스레 도둑처럼 문을 열고 들어간 작은 교회당 내부는 시원하고 편안해서 뜨거운 여름을 잊게 했다. 천장은 굵은 나무로 맞춘 왕대공 양식으로 높게 오픈되어 있었는데, 오래된 영화에서나 보았던 많이 익숙한 침례교회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나는 유년 시절 앉았던 목포의 외딴 교회당의 자리에 있듯 잠시 앉아 회당 중앙의 십자가를 응시하며 예배당 의자에 놓인 성경책을 만져 보았다.

손에 들린 낡고 두꺼운 성경책을 보며 어린 시절 우리를 위해 매일 기도하시던 9순에 가까워진 요양원의 어머니가 생각났다. 유년 시절 어머니는 새벽마다 울려 퍼지는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언덕으로 향하셨다.

오랜만에 낡고 두꺼운 가죽 피의 성경책을 어머니의 손을 대신하듯 만져 보고 코를 대고 성경책 냄새도 맡아 보았다.

그렇게 잠시나마 도심에서 볼 수 없는 진짜 예배당의 풍경을 가슴에 담고 나오는데 밖에서 키가 작고 인상 좋은 촌부 한 분이 조용히 기다리고 계신다.

알고 보니 이 교회의 목사님이셨다. 나는 허락도 없이 들어가서 죄송하다고 용서를 구하며 서로 통성명 없이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상상하고 보았던 말끔한 양복에 멋진 넥타이를 맨 목사가 아닌 영락없는 촌부의 옷차림에 편안함을 주는 가난한 예수의 모습이었다.

몇가지 질문에 알아낸 것은 1975년에 교회가 지어졌고 지금까지 현재 모습을 유지해왔다고 한다. 나는 만화처럼 배고픈 예수가 낡은 자동차를 타고 지나다가 진짜 아버지의 집을 찾았다며 너무도 좋아하는 상상의 그림을 그려 보았다.

여름날 작은 교회의 담벼락 너머 풍경을 멀리하며 서울로 향했다. 인월의 형님과 그 식구들의 평안을 위해 작은 예배당 구석에 값싼 기도 한 줌을 남겨 놓았다. 청도에서 텅빈 공간으로 남은 교회 예배당을 카페로 만들었던 형님의 '니가쏘다째'가 생각이 났다. 그렇게 일용할 양식을담던 청도의 예배당도 아쉽게도 몇 달 후 다시 빈 공간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이곳의 교회가 청도의 공간처럼 비워지지 않고 계속 이 자리에 남았으면 하고 기원을 했다. 살아서 다시 온다면 여름 날에 잠자리는 그곳을 여전히 교회 담벼락을 맴돌고 매미는 한 백 년이 지나도록 다시 울 것이다. 

2019년 여름날 풍경을 선물처럼 가슴에 담아 서울로 가져왔다. 예배당 정면에 표어가 인상적이다. "바로 믿고, 바로 알고, 바로 살자!" 이 작은 교회에 진짜 예수가 나를 반겼다.

글쓴이=주홍수 애니메이션 감독-만화가 sisi9000@naver.com

주홍수 감독은?

30년 넘게 애니메이터로 만화가로 활동을 해왔다. 현재 자신의 원작 OTT 애니메이션 '알래스카'를 영화사 '수작'과 공동으로 제작 중이며 여러 작품을 기획 중이다. 그림과 글과 엮어낸 산문집 '토닥토닥 쓰담쓰담'을 2022년 1월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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