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성 밖 최초 신도시, '돈암'..토박이들이 기억하는 동네 모습은?
서울 성북구 돈암동 주변은 조선시대 ‘삼선평’이라고 불렸던 조용한 농촌이었다. 성북동에서 청계천으로 성북천(안암천)이 남북으로 흐르고, 낮은 낙타산과 개운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마을이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풍경 좋은 산자락에 별서와 주거지가 자리한 이곳을 “흰 모래밭과 복숭아밭, 시냇가가 있는 평화로운 곳”(성시전도 칠언고시백운)이라고 시로 읊었다.
이 일대가 급변한 것은 일제강점기 경성 인구가 급증하면서다. 1936년 근대 도시계획기법이 적용된 경성시가지계획의 일환으로 돈암 지구가 선정됐다. 도성 밖 최초의 신도시였다. 돈암·삼선·보문·동선·동소문동에 도시 한옥이 대량 공급됐고, 도심과 연결된 전차도 미아리고개까지 운행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사라지고 변하는 지역을 기록으로 남기는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의 37번째 보고서로 ‘도성 밖 신도시, 돈암’을 발간했다고 4일 밝혔다.
여전히 서울의 대표 주거지로 꼽히는 돈암 일대는 해방 이후부터 정치·사회, 문화·예술인이 많이 유입된 곳이기도 했다. 소설가 박완서는 <그 남자네 집>,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에서 이 지역의 모습을 자세히 담았다.
1950년대 최초의 예술대학인 서라벌예술대학이 이 지역에 자리 잡았다. 시인 신동엽은 이곳에서 ‘금강’을 집필했고, 무용가 조흥동은 한국 무용의 꿈을 키웠다. 지금도 돈암은 서울에서 두 번째로 문화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다.
이번 조사는 토박이 주민들이 지역활동가로 참여하고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연구 기관과 함께 이뤄졌다.
토박이들이 기억하는 30년 전 동네는 돈암시장에 점포들이 빼곡했고, 기와지붕의 한옥이 골목에 줄지어 선 모습이다. 대규모 한옥 주거지였던 돈암 일대는 1990년대부터 다세대·다가구 건물과 아파트가 들어섰다. 돈암시장에서 시작된 감잣국의 원조 ‘태조감자국’은 아직도 주민들이 찾는 맛집이다. ‘서울미래유산’ 1호로 선정된 ‘나폴레옹과자점’은 돈암의 입구에 서 있다. 흥천사는 동네 환갑잔치를 열었던 최고의 장소로 꼽혔다.
조사 과정에서 다른 지역에 사는 10대 학생들에게 돈암의 가장 특징적인 장소를 물었더니 흥천사, 성신여자대학교를 들었던 것과는 대조된다. 학생들은 돈암제일시장과 미아리고개 노래비, 한·중 평화의 소녀상도 인상 깊었다고 답했다.
이번 보고서는 서울책방과 서울역사박물관 뮤지엄숍, 서울책방 누리집(https://store.seoul.go.kr)에서 2만5000원에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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