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의 문턱에서 멈춘 박지현..'청년정치·꼰대정당' 중간에 선 민주당, 박지현도 상처 적지 않아
더불어민주당 8·28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에 나설 뜻을 밝혔던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출마가 무산됐다. 민주당 비대위가 4일 박 전 위원장의 당대표 출마 자격과 관련해 예외 사유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다. 민주당으로선 당내 일부로부터 공정·특혜 비판을 받은 박 전 위원장의 출마에 대해 원칙을 세우며 정리에 나선 것이다. 다만 청년 정치의 길을 열어준다는 정무적 판단은 배제하면서 ‘꼰대 정당’임을 재입증한 것이라는 비판도 받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혁신·쇄신을 강조하던 박 전 위원장이 원칙을 간과하고 자신이 강조하던 ‘내로남불 타파’의 대상이 된 것이라는 지적도 당 안팎에서 쇄도하고 있다.
민주당 비대위는 이날 회의를 통해 박 전 위원장의 출마를 불허하는 결정을 내렸다. 우상호 비대위원장은 “당무위원회에 박 전 위원장의 출마를 위한 예외 조항을 안건으로 상정해 토론하도록 부의하지 않기로 했다”고 비대위 논의 결과를 전했다. 우 위원장은 “비대위원들은 박 전 원장이 소중한 민주당의 인재이지만, 예외를 인정할 불가피한 사유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박 전 위원장은 당권 도전 의사를 밝히면서 비대위와 당무위 의결을 거쳐 출마를 허용해달라고 촉구한 바 있다. 당헌·당규상 당직이나 공직 피선거권을 가지려면 이달 1일 기준으로 6개월 이전에 입당해 당비를 납부하는 권리당원이어야 하는데, 지난 2월 입당한 박 전 위원장은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에 박 전 위원장은 ‘당무위 의결로 달리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근거로 출마 허가를 해달라고 밝혀왔다. 대선 때 입당해 3개월 만인 지난 6·1 지방선거에 경기지사 후보로 나선 김동연 지사 사례를 들기도 했다.
민주당이 이날 박 전 위원장의 출마를 불허키로 한 것은 당헌·당규라는 원칙을 우선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이미 당내에서 수차례 ‘원칙’이 무너졌던 만큼 이번에도 원칙을 져버린 채 박 전 위원장의 출마를 허용해주기에는 명분이나 사유가 부족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공직선거가 아닌 당대표 출마에 예외 조항을 적용하는 것도 무리라고 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친이재명계 강성 지지층을 비롯해 많은 지지자들 사이에서 박 전 위원장의 출마 요구가 ‘공정에 반한다’ ‘개인을 위한 특혜다’라는 논란이 거세진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 재선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박 전 위원장에 대한 평가를 모두 차치하고서라도 원칙은 지켜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반면 다른 쪽에선 청년 정치 필요성을 외치며 선거 때마다 20~30대를 집중 공략해왔던 민주당이 정무적 판단을 하지 않고 원칙에만 매몰돼 꼰대 정당 이미지만 고착시킨 것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다른 당 관계자는 통화에서 “당이 전면적으로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전당대회라면 더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해 경쟁하는 모습이 더 바람직한 것 아니었을까”라고 아쉬워했다.
이날 비대위 결정으로 박 전 위원장 개인으로선 상처도 적지 않게 남았다. 지난 대선에서 여성·청년을 대변하며 적극적인 활동을 보여줘 호의적 평가를 받았던 박 전 위원장이었지만 그가 말한 혁신·쇄신을 위해 원칙을 간과했다는 혹평도 적지 않게 나오면서다. 지난 6·1 지방선거 공천 정국에서 박 전 위원장이 일부 출마자들의 자격 문제를 지적하며 반대했던 것도 다시 회자된다. 원칙을 강조했던 그가 ‘내로남불’ ‘특혜 공천’ 논란의 주인공으로 몰린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당 안팎에서 나온다.
박 전 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결정이 나온 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민주당 지도부와 이재명 의원은 무엇이 두려우신 겁니까. 설마 27세 전 비대위원장이 당대표가 되어 기성정치인들을 다 퇴진시킬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며 “당의 외연 확장과 2024년 총선 승리는 안중에 없는 결정”이라고 밝혔다.
박 전 위원장은 우 위원장이 ‘예외 인정 사유가 없다’고 밝힌 것을 두고 “당직 피선거권에서 6개월 안된 권리당원에게 예외를 적용할 수 있는 사유가 무엇인지 말씀해달라”고 했다. 또 “대선에서 2030 여성의 표를 모으고, 당내 성폭력을 수습한 전직 비대위원장이 당에 기여한 바가 없나”라며 “어느 정도 당에 기여를 해야, 어느 정도 ‘거물’이어야, 6개월이 되지 않은 당원이 당직의 피선거권을 가질 수 있는가”라고 했다.
박 전 위원장은 “박지현의 정치는 이제 시작”이라며 “청년과 함께, 민주당의 변화를 간절히 원하는 국민과 ‘민주당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저는 민주당을 사랑한다. 민주당을 청년과 서민을 비롯한 다양한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으로 바꾸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했다.
앞서 그는 이날 CBS 라디오에서 당의 출마 불허 결정이 나올 경우 이를 따르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너무 힘들지만 이미 (정치권에) 들어와 버린 이상, 지금 생각으로는 계속 (정치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은 “저라도 이 안에서 버텨내는 것을 보여드리면 다른 청년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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