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ftsmanship Of Seoul #영신사

서울문화사 2022. 7. 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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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무정하게 변한다. 열심히 살면 무엇이 남나. 들어버린 나이와 늙은 음악과 촌스러운 영화들만 주변에서 반복된다. 그럼에도 살아 있으니까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도한다. 세월에 무임승차해 지나간 풍경을 곱씹으며 인생이 고장 났던 순간만 복기할 따름이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는 일정하게 정차한다. 간이역에서 책임질 것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빈손으로 다시 열차에 오르길 반복하다 보면 어느덧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있다. 그때쯤 차창 풍경에도 무심해진다. 변하는 시대 흐름에 맞춰 업력도 능력도 키워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무엇을 해볼까. 고민하는 사이 기회는 스무 살의 꿈처럼 구름 뒤로 사라지고 열차는 황혼에 들어선다. 이달 우리는 장인들을 만났다. 50년간 구두를 수리했거나, 60년간 시계를, 40년간 기타를, 60년간 오디오를 수리한 사람들 . 한 가지만을 고쳐온 장인들에게 변하는 세상에서 우직할 수 있었던 힘에 대해 물었다.

 

영신사no.1 박종현 사장- 시계 수리, 60년 경력 -

세운상가 뒤 예지동은 사라지는 중이다. 공사장 가림막이 예지동을 빙 둘러 가렸다. 8차선 도로 건너편에서야 아직 무너지지 않은 건물들 머리만 간신히 보일 뿐이다. 거기에 무엇이 있었던가. 좁은 골목길과 함흥냉면과 시계 수리 점포가 있었다.

88서울올림픽 즈음 영신사도 그곳에 터를 잡았다. 지금 영신사는 어디로 간 걸까. 박종현 사장에게 전화를 거니 길 건너 세운스퀘어 2층으로 옮겼다 했다. 영신사는 남아 있었다. 생존했다는 표현이 맞겠다. 상가 2층에 오르니 가게 유리창을 통해 신문을 읽는 박종현 사장이 보였다. 커피라도 사오겠다는 말에 손사래를 치며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는 그. 어떤 질문이 무례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이, 그는 신문을 접고 나를 보며 편하게 질문하라 말했다.

60년간 반복되어온 손동작.

세상은 빠르게 변합니다.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달라져야만 합니다. 사람들은 그게 발전이고 능력이라 말합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일만 하며 살 수는 없을까요? 사장님은 어떻게 가능했나요. 박종현 사장이 말했다. “밥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까. 한 업종에서 자기 일만 하면 먹고산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을 거야. ‘한 우물을 파라’ 이런 게 우리 정서에는 남아 있어요. 지금은 수익성을 따라다니죠. 수익을 쫓다 보면 직업이 바뀌는 거고 그게 창의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오직 먹고사는 게 목적이었어요. 시대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웠지.”

박종현 사장은 해방둥이다. 그의 시간이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한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한국전쟁이었고, 겨우 17세에 일을 해야만 했다. 1962년이다. “지금이야 기술 배우면서 돈 벌어가지만 그때는 무보수야. 밥 먹여주는 것만 해도 감사했지. 내가 일 배운 집이 광화문 네거리에 지금도 있어요.”

기술을 배우면 굶지는 않는다. 당시 그에게 기술을 배운다는 것은 재능을 발현하거나 행복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행복을 찾기 이전에 생존이었지요. 생존. 생존하려다 보니 나름대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고, 또 다른 길로 가봤자 성공하는 일이 드물었어.”

“믿음을 갖고 과거를 뛰쳐나온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야.젊은이는 과감한 도전 정신이 있어야 해.그게 없으면 안 돼.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야도전을 하는데, 나는 아예 없었어요.”

돋보기 없이는 보이지 않는 정밀한 시계 부속.

아무리 무일푼으로 배웠다 해도, 기술은 손재주가 있어야 가능하다. 더군다나 시계처럼 정교한 물건은 섬세함과 인내심 등 타고난 재능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은 노력도 재능이라 말하는 시대다. 그는 재능 같은 건 없다고 말하지만 오랜 세월 기술자로서 살아남으려면 필요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았다. “똑같은 시계를 기술자마다 고치는 방법이 달라. 내가 못해낸 걸 저 사람은 해요. 내가 잘하는 걸 저 사람은 못하고. 그게 기술이야. 다 잘할 수는 없어. 기술 산업은 다양성이 있어요. 100% 수리하는 기술자가 있는가 하면 성능의 70%만 수리하는 기술자도 있어요. 그건 기술보다 능력이라 봐야겠지.”

시계는 오래된 것들도 가치를 지닌다. 기계식 시계의 매력은 지금도 유효하다. 60년 전 그가 일을 배우던 시절 접한 시계와 지금 시계는 얼마나 다를까. 시계에서도 시대상의 변화를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는 시계를 오래 쓰게 만들었지. 지금은 그때보다 시계 수명이 떨어지는 것 같아. 가격은 더 비싸지, 더 정밀하기도 하고. 기계식에 한해선 정확도는 요즘 걸 못 따라와. 옛날 건 투박하지만 튼튼해. 오래 쓰고 오래가는 게 중요한 시절이었거든. 스위스 사람들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여태까지 해보고 말하는 거야.”

기계식 시계의 미학은 커버를 들어냈을 때 빛난다. 미세한 금색 태엽들이 정확히 맞물리며 회전하는 놀라움, 그 복잡한 기계를 인간이 설계하고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경탄이 이어진다.

그 복잡함의 원리를 이해하고 수리하는 것도 대단한 일 아닌가. 그러자 박종현 사장은 고인이 된 형 이야기를 시작했다. 초등학교도 못 나온 그의 형은 시골에서 보일러를 고쳤다. 형은 손재주가 있었다. 배운 게 없어도 고치는 형의 철학은 ‘만드는 사람도 있는데 못 고치겠느냐’였다. 만들어놓은 걸 가져다 맞추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었다. 형의 철학을 들은 뒤 그는 못하겠다며 밀쳐둔 것들이 생각나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했다. 만들어놓은 걸 조립하는 일이니 시계 수리가 어렵지는 않았다. 그에게 힘든 건 생활이었다.

“옛날에는 시계방 점포에 기술자가 하나씩 꼭 있었다고. 거기서 일하면서 속된 말로 남의집살이한 거지. 그래도 다 같이 먹고살 정도로 운영됐거든. 그런데 세상이 변하면서 더는 좋은 생활을 할 수 없다 보니까 업계 기술자들이 많이 떠났어. 특히 전자시계가 나오면서 시계 고치는 일이 많이 줄었거든.”

인터뷰 중간에 중년 부부가 그를 찾았다. 남자는 자신이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 건네며 수리를 부탁했다. 박종현 사장은 시계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수리하고 연락하겠다며 전화번호를 남겨달라고 했다. 손님을 맞는 동안 박종현 사장은 살짝 상기되어 보였다. 손님이 사라진 후 박 사장은 이마에 쓴 돋보기안경을 내려 쓰고, 유리 플라스크에 분해한 시계 부품을 핀셋으로 옮겼다. 그에게 물었다. 긴장될 때 있으세요? “그럼. 손님 있을 때 고치는 게 굉장히 긴장되거든. 손님이 있을 때는 수리 안 해. 다들 혼자 있을 때 하지. 지켜볼 때 실수하잖아? 그럼 누가 좋아하겠어. 싫어한다고 그러면 실수하지 말아야지.”

60년간 시계를 수리해온 그에게 기자나 손님 말고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지 않았을까. 그가 60년 전 그랬듯 일을 배우겠다며 찾아오는 이들이 꽤 될 것 같았다. “있어도 안 한다고 그랬어. 아예 하지 말라 그랬고. 기술을 배우려면 먹고살 수 있는 비전이 있어야 하잖아. 근데 이것은 미래가 안 보이는데, 힘들잖아. 그래서 배우지 말라고 그랬어. 시계 수리로 몇 사람은 먹고살겠지. 긴 세월로 보면 글쎄. 우리는 조립하는 건 하지만 만드는 기술은 없어.”

다른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을까. 그라고 젊은 시절 도전 정신이 없었겠는가. 꿈을 꾸지 않았겠는가. 조심스레 물었다. “있었지. 근데 망했어. 바람이 들었었어. 30대에 목사가 되려고 신학교에 가려고 했어. 그래서 일을 정리했다가 망하는 바람에 청계천으로 갔지. 그때는 청계천이 패자부활전이었어. 기술이 있으니까. 얼마든지 먹고살 수 있었어. 지금은 그런 곳이 없어졌지만.”

나보다 두 세대 앞선 그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조언을 듣고 싶었다. 선생님은 업계가 쇠락하는 것을 보면서 떠날 생각은 없으셨나요? 한 분야가 저물어가는 걸 보고, 기회가 있다면 빨리 접는 게 맞는 걸까요? “믿음을 갖고 과거를 뛰쳐나온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야. 젊은이는 과감한 도전 정신이 있어야 해. 그게 없으면 안 돼.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야 도전을 하는데, 나는 아예 없었어요. 내가 어디 가서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이 안 보이더라고. 그래서 오직 이것만 붙들고 있었어.” 생존하기 위해 배운 일. 돌아보면 무엇이 남아 있을까. 60년 기술자에게 보람과 꿈은 무엇인지 묻자, 인터뷰 말미에야 박종현 사장이 웃었다. “먹고사는 게 즐거움이고 감사죠. 기분은 좋지.”

Editor : 조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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