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모든 순간이 감동, 페라리 로마
2022. 7. 4. 08:10
-빠르고 편안한 이상적인 GT카
-장거리 주행에도 부담스럽지 않아
페라리는 슈퍼 스포츠카 브랜드다. 극단적으로 낮은 차체와 예술품에 가까운 디자인 등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도로 위 시선을 끄는 그런 차다. 빠르게 튀어나가며 서킷을 주름잡는 모습이 저절로 떠오르고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도 풍긴다. 그만큼 페라리가 진정한 그랜드 투어러(GT)라 생각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직관적이며 하드코어 성격만 갖춘 차라는 고정관념을 지우기 위해 페라리는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모터스포츠 기반 정체성을 간직한 체 GT 성격을 부각시킬 수 있는 차를 꾸준히 선보였다. 전 세계 팬들에게 주목을 이끌었던 FF, GTC4 루쏘 등이 주인공이며 새로운 소비층 유입과 브랜드 인식 전환의 큰 역할을 했다는 평이다.
회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완성형에 가까운 GT카 만들기에 들어간다. 페라리 특유의 아름다운 디자인과 절대적인 성능을 가지면서도 그랜드 투어러의 적합한 주행 감성까지 챙기기에 이르렀고 결과물로 '로마'가 세상에 나왔다. 페라리식 GT카의 진정한 의미와 매력을 알아보기 위해 로마와 함께 1박2일 동안 약 500㎞를 달렸다.
▲날씨에 구애 받지 않는 페라리
가는 날이 장날이다. 출발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시동을 켜고 동시에 운전 모드를 바꿀 수 있는 마네티노 스위치를 'WET'으로 돌렸다. 해당 모드는 젖은 도로를 자동으로 감지해 최적의 접지력을 확보한다. 시스템이 젖은 도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출력을 비롯해 자세제어장치, 토크 배분 등 접지를 높이기 위한 시스템 응답을 사전 조정한다.
결과는 놀라웠다. 먼저 엔진 토크는 더욱 부드러워지고 변속 반응도 한결 여유로워졌다. 속도를 높일수록 주행안정성은 월등히 좋아진다. 실제 운전하면서 체감이 가능할 정도다. 흔들림이 적고 빠르게 가속해도 자세가 무너지지 않는다. 차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커지고 스포츠카는 빗길에서 위험할 거라는 편견도 사라진다.
도로 흐름에 맞춰 천천히 주행을 하는 순간은 여느 세단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만큼 편안하고 쾌적한 이동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천장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함께 낮은 음색의 엔진음을 들으니 감성은 한층 증폭된다. 룸미러로 엔진룸 덕트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볼 수 없지만 조각품처럼 잘 생긴 사이드미러와 이를 통해 보는 풍만한 뒤 팬더는 아쉬움을 충분히 잊게 한다.
요철을 지날 때는 계기판에 슬립 경고등이 이따금 들어오지만 충분히 컨트롤 가능한 범위에서 차가 움직여 전혀 불안하지 않다. 오히려 600마력이 훌쩍 넘는 고성능차를 빗길에서 이렇게 쉽게 다룰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사만 나올 뿐이다.
▲나만의 프라이빗 라운지
천천히 주행을 하다 보니 짧은 트랙 주행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센터페시아 형상과 쓰임새 좋은 버튼 위치, 각종 디지털 요소 등이다. 먼저 전체적인 실내는 듀얼-콕핏 구조가 기본이다. 운전석과 조수석을 대칭 형식으로 철저히 분리시켰다. 여기에 높은 센터페시아 디자인으로 앉았을 때 안락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10인치가 넘는 커브드 계기판은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그래픽이 훌륭하며 직관성도 한결 나아졌다. 페라리를 상징하는 중앙 타코미터는 그대로이며 7,500부터 시작하는 레드존과 1만 rpm 수자는 보기만해도 흥분을 자극한다. 세로 형태 센터페시아 모니터도 마찬가지다. 물리적 버튼은 변속레버가 전부이며 나머지는 전부 터치로만 조작할 수 있다.
이 외에 조수석 대시보드 앞에는 가로로 긴 화면을 탑재했는데 생각보다 알찬 정보를 많이 제공한다. 실용적이고 지루함을 덜기에도 좋다. 스티어링 휠 구성은 전통적인 페라리와 맥을 같이한다. D컷 형태로 손에 쥐는 맛이 좋고 크고 긴 패들시프트와 방향지시등은 물론 램프 및 와이퍼, 마네티노 스위치도 익숙한 위치에 붙어있다.
시대 흐름에 맞춘 기능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센터터널 아래에는 휴대폰 무선충전 패드가 있고 애플 카플레이를 연결하면 계기판 모니터에 구현된다. 터치로 바뀐 시동 및 사이드미러 조절 버튼도 신선하며 열선, 통풍 시트는 그랜드 투어러에 꼭 맞는 아이템 중 하나다.
소재는 호화롭고 사치스럽다. 경량화 또는 내구성에 집중한 스포츠카와 선을 긋는다. 질 좋은 가죽을 눈에 보이는 모든 부분에 덮었고 탄소섬유 패널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다. 천장에는 알칸타라로 도배를 했다. 패널이 맞물리는 부분에는 금속 소재를 사용해 화려함을 나타냈고 직접 수 놓은 자수와 스티치는 정교함의 끝을 보여준다. 하염없이 보고 쓰다듬고 싶을 정도로 우수한 퀄리티를 가졌다.
▲숨막히는 비율과 감각적인 라인
강한 장맛비 속에서도 슈퍼 GT는 여유롭게 질주했고 덕분에 부담 없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촉촉히 젖은 차가 한 없이 대견해 보였다. 로마의 겉모습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페라리의 편견을 잊게 만든다. 공격적인 형상과 과격한 인상을 지닌 슈퍼카와 전혀 다른 느낌이다. 부드럽고 우아하며 시선을 훔치는 요소로만 가득하다.
입체적인 디자인의 헤드램프는 가로로 날렵하게 눈꼬리를 찢어 존재감을 나타낸다. 그릴은 차체 컬러와 맞춘 사각 패턴이 사뭇 새롭다. 1950년대 페라리 250 GT의 모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으로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모난 곳 없이 완만하게 처리한 범퍼와도 잘 어울리며 전통과 현대를 적절히 조율한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옆은 프론트 미드십 타입에 걸맞은 긴 보닛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풍만한 펜더와 보닛의 경계 면이 환상적이다. 굵은 캐릭터 라인과 함께 부풀린 형상이 차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매끄러운 도어를 지나 뒤쪽으로 갈수록 완만하게 내려앉은 지붕선이 조화를 이룬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 곡선이 주는 아름다움을 넋 놓고 바라보게 된다. 살이 얇은 20인치 휠과 큼직한 브레이크 시스템도 뛰어나지만 차가 주는 디자인에 비해 강렬함이 덜 할 정도다.
뒤는 페라리 라인업에서 볼 수 없던 새 테일램프가 특징이다. 빛은 가로 형태로 얇게 들어오며 트렁크 끝 단에 위치해 독특한 인상을 자아낸다. 마치 램프를 차 안으로 쏙 하고 박아놓은 기분이다.
절개선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C필러와 둥근 유리창, 일체형 스포일러 등 시선을 훔치는 요소도 가득하다. 통 카본으로 감싼 범퍼는 페라리의 정체성을 알게 해준다. 굵은 4개의 배기구와 날카로운 디퓨저는 변함없는 가치와 성격까지 짐작할 수 있다.
▲빠른데 편하고 강력한데 부담스럽지 않다
요란한 비가 물러가고 둘째 날에는 강한 햇빛이 내려왔다. 차를 경험하기에 더 없이 좋은 날씨다. 강원도 정선에서 평창, 홍천으로 향하는 굽이치는 산길은 로마의 진가를 알 수 있는 최적의 코스다. V형 8기통 3.9ℓ 터보 엔진과 8단 듀얼클러치는 환상의 하모니를 보여주며 최고 620마력, 최대 77.5㎏·m를 발휘한다. 정지 상태에서 100㎞/h까지 가속하는 데 3.4초, 200㎞/h까지 9.3초면 충분하다. 안전 제한을 건 최고시속은 310㎞다.
마네티노 스위치를 한 단계 올려 스포츠 모드에 두자 한층 높아진 사운드와 엔진 반응이 운전자를 자극한다. 가속 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시원하게 앞으로 달려 나가는데 강한 사운드와 함께 속도는 비현실적으로 올라가고 주변 사물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다. 몰입감이 역대급이다. 체감 속도가 상당하며 맨 앞에 있는 곳으로 향해 빨려 들어가는 환상마저 든다. 이성의 끈을 잡기 위해 엄청난 집중을 해야 할 정도다.
여기에는 사운드가 한 몫 한다. 엔진 회전 수 상관없이 어느 위치에서든 독특한 음을 전한다. 저속에서는 '둥둥' 거리는 공명음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이후 고속으로 갈수록 포효하는 소리가 산길을 가득 울리며 정신을 아찔하게 만든다. 스로틀을 열어 레드존에 붙이면 요동치는 뇌우 소리도 들을 수 있는데 귀가 멍할 지경이다. 어제 운전한 온순했던 GT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반전 매력을 보여줬다.
F1 기술을 물려받은 변속기는 주행 모드별로 상극의 성격을 보여주며 즐거움을 높인다. 직결감이 상당하고 단수를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반응도 반 박자 빠르다. 컴포트에서는 고단으로 올려 보다 쾌적한 엔진 회전질감을 구현하고 스포츠에서는 레드존 끝까지 주행을 유도한다.
참고로 신형 8단 듀얼 클러치는 이전 7단 변속기 대비 크기도 작아지고 무게도 6㎏ 가벼워졌다. 연비와 배기가스 배출 감소뿐 아니라 더 빠르고 부드러운 변속이 이뤄진다는 뜻이다. 트랙은 물론 도심 주행이나 국도에서 잦은 출발 및 정지 상황에서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코너에서는 탄탄한 섀시와 최신 제어기술 능력이 돋보인다. 경량화 및 첨단 생산 기술에 맞게 재설계됐으며 실제로 부품 70%가 완전히 교체됐다. 그 결과 로마는 동급 최상의 출력 대 중량비를 지녀 핸들링 성능 및 반응성이 한층 더 강화됐다. 사이드 슬립 컨트롤(SSC) 6.0도 핵심이다. 차가 미끄러지는 순간을 정밀하게 예측해 이를 온보드 컨트롤 시스템에 제공하는 방식이다. 접지력을 더욱 손쉽게 제어할 수 있고 주행 즐거움도 같이 높인다.
짜릿함과 재미는 저절로 높아지고 운전 실력과 자신감도 같이 커진다. 앞머리가 무겁지 않아 안쪽으로 깊게 넣을 수 있고 탈출 시에도 뒤가 곧잘 따라와 빠른 속도로 나갈 수 있다. 당장 서킷에 들어가 랩타임 경쟁을 해도 충분한 실력이며 앞뒤, 좌우 균형감이 주는 탄탄한 자세가 마음에 든다. 다루기가 정말 쉽고 타이어 한계를 파악한 뒤 접지만 잘 활용하면 어떤 GT카보다 빠르고 역동적인 실력으로 코너를 통과할 수 있다.
서울로 오는 길에는 컴포트 모드에 두고 흐름에 맞춰 여유롭게 주행했다. 차는 또다시 성격을 고쳐 차분한 그랜드 투어러로 변모했다. 반자율주행 기능을 적극 활용하면 플래그십 세단 못지 않은 안락한 승차감도 보장한다. 어느덧 누적 거리는 500㎞에 육박했지만 모든 과정에서 피곤하거나 불편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반납 시간이 다가올수록 운전석에서 차와 교감할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슬펐다.
▲총평
페라리 로마는 다재다능한 능력을 갖춘 이상적인 GT다. 힘들이지 않는 유연함과 일관적인 반응은 우아한 그랜드 투어러의 조건으로 손색이 없다. 여기에 모드를 바꾸고 나면 이 큰 차가 보여주는 퍼포먼스에 놀라게 된다.
스티어링의 풍부한 정밀도, 완벽에 가까운 차체 제어능력, 지칠 줄 모른느 제동력, 끊김없이 울려퍼지는 배기, 재빠른 변속도 같은 부분이다. 심각하게 빠르면서도 극도로 안정감이 넘친다. 도심을 빠져 나와 장거리 고속 주행은 물론 굽이치는 산길, 국도길 까지 어느 상황에서든지 깊은 만족을 주는 페라리다.
로마의 가격은 3억2,500만원부터 시작하며 7년 메인터넌스 프로그램이 기본 제공된다. 구매 후 첫 7년 간 정기적인 유지보수를 다루는 독자적인 서비스이며 가장 기본으로 제공되는 정기 점검(2만㎞ 마다 1회 또는 마일리지 제한 없이 연 1회 시행)은 마라넬로에 위치한 페라리 트레이닝 센터에서 직접 교육받은 전문 테크니션이 오리지널 장비를 사용해 가장 현대적인 최신 진단 방법으로 진단한다.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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