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공석 '서초동 미스터리'
2022. 7. 4. 08:07
후보추천위도 안 꾸려 추측 난무..'준비된 식물총장' 예고
검찰 안팎에서는 검찰총장 공백이 길어지는 이유를 두고 여러 추측이 난무한다. ‘하려는 사람이 없다’, ‘오는 9월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 법안 시행 전에 수사 성과를 내려 한다’ 등이다. 특히 문재인 정권의 주요 인사들이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대부분 직권남용 혐의와 관련이 있다. 수사·기소 분리 법안이 시행되면 검찰은 직권남용 범죄를 수사할 수 없게 된다.
법무부는 최근 대규모 인사를 단행해 검찰 조직을 재정비했다. 수사를 본격화할 채비를 마쳤다. ‘사정 정국’, ‘사정 바람’ 등의 단어가 시민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누가 맡으려 하겠나” 한동훈 법무부 장관(사법연수원 27기)은 취임 이후 최근까지 세차례 인사를 냈다. 고위 간부인 대검검사급(고검장·검사장) 검사와 중간간부 및 일반 검사 등 모두 716명을 승진·전보했다. 검찰총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소폭 인사를 한 전례는 있지만, 대규모 인사를 단행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인사의 특징은 문재인 정부 시절 정권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던 검사들이 대거 좌천됐다는 점이다. 이성윤 전 서울고검장(23기), 이정수 전 서울중앙지검장(26기), 김관정 전 수원고검장(26기), 심재철 전 남부지검장(27기)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 전 고검장은 지난해 6월 피고인 신분임에도 서울중앙지검장에서 서울고검장으로 승진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 한 장관과 인연이 있는 검사들은 요직을 맡았다. 대부분 지난 정부에서 정권을 상대로 수사를 벌였다가 한직으로 밀려났던 검사들이다. 검찰총장 직무대리인 이원석 대검찰청 차장검사(27기),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29기), 신봉수 대검 반부패강력부장(29기) 등이다. 이 차장검사는 2017년 3월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를 직접 조사했다.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 주요 부서에도 윤 대통령과 가까운 검사들이 들어왔다.
검찰총장 공석 상태에서 단행한 대규모 인사를 두고 절차 위반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에게 인사를 제청하기 전에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검찰의 독립성·중립성을 담보한다는 취지다. 이에 법무부는 인사 보도자료에서 “검찰총장 직무대리와 실질적으로 협의하면서 일선 기관장의 의견도 충실히 반영하는 등 검찰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신임 검찰총장은 ‘식물 총장’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검찰 안팎에서 나온다. 검찰총장의 ‘입’ 역할을 하는 대검 대변인도 인사를 냈다. 대검 부장 등 검찰총장의 참모 역할을 하는 자리도 새롭게 진용을 갖췄다. 검찰이 한 장관의 직할 체제가 됐다는 비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검찰총장이 와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분석이다.
한 장관이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을 때부터 검찰총장이 제 역할을 못 할 것이란 우려는 일찌감치 나왔다. ‘소통령’이라고 불릴 만큼 존재감이 강한 한 장관의 그늘에 가려 검찰총장이 조직 장악력을 발휘하지 못하리란 관측이었다.
양홍석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총장을 할 만한 마땅한 인물이 없을 수도 있다. 또 한 장관의 직할 체제가 인사를 통해 완성되면 관리형 총장을 세우기 위해 미루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짚었다.
전 정권 수사 속도 내나 “검찰에 산적한 업무가 많다는 걸 다 이해할 것 같다. 그런데 몇 달 이상 걸리는 검찰총장 인선 이후로 모든 인사를 미룬다는 건 ‘일을 제대로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빨리 체제를 갖춰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 한 장관이 지난 6월 2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한 장관이 언급한 ‘산적한 업무’ 중에는 문재인 정권의 주요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수사도 포함됐다는 시각이 많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연루 의혹을 받는 ‘경기 성남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이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기획사정 의혹’, 여성가족부의 ‘대선 공약 개발 의혹’ 등도 수사 중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이 눈길을 끈다. 최근 수사가 한창인 산업통상자원부 외에도 외교부, 통일부,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이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현옥 전 청와대 인사수석,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 등 10명이 고발당한 상태다.
최근 정치적 논쟁으로 비화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도 지난 정부 청와대의 주요 인사들이 줄줄이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김종호 전 민정수석, 서주석 전 국가안보실 1차장 겸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장 등이다. 유족 측은 문재인 전 대통령 고발 여부도 검토 중이다.
이처럼 민감한 수사들에 속도를 내기 위해 검찰총장 인선이 늦어지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검찰총장이 지명되면 정식 임명 전까지 주요 수사를 본격적으로 벌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검사 출신인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총장을 지명하면 사퇴하는 검사들도 생길 것이고, 총장 나름의 운용 방침이 나오기 전까지는 특수수사 등 일선의 수사가 활발히 이뤄지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9월부터 공직자범죄 수사 못 해 주목할 점은 지난 정권의 주요 인사들이 연루된 사건의 대부분이 직권남용죄와 관련이 있다는 데 있다. 직권남용은 검찰이 현재 직접 수사할 수 있는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가운데 공직자범죄에 해당한다.
지난 5월 공포된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 법안(개정 형사소송법·검찰청법)이 시행에 들어가면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개정 검찰청법은 9월부터 시행되는데,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는 부패·경제 등 2가지로 한정된다. 직권남용이 포함된 공직자범죄는 검찰의 직접 수사가 불가능해진다.
9월 이전에 검찰이 수사를 개시해 진행하고 있는 공직자범죄는 어떻게 될까. 개정 형사소송법·검찰청법의 통과 과정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민주당은 지난 4월 15일 소속 의원 전원이 참여해 두 법안을 발의했다. 최초 법안 내용은 검찰이 6대 범죄 중 하나도 수사할 수 없도록 했다. 이 때문에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라고 불렸다.
특히 형사소송법·검찰청법 부칙에는 검찰이 개정안 시행 이전에 수사하던 사건도 모두 경찰에 이관토록 규정했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수사를 무마하기 위한 ‘방탄법’이라고 비판했다.
이후 박병석 당시 국회의장이 중재안을 제시하면서 민주당은 대안 법률을 만들었다. 이때 6대 범죄 중 부패·경제범죄의 수사권은 존치토록 했다. 아울러 검찰이 기존에 수사하던 사건은 경찰로 넘겨야 한다는 내용의 부칙을 삭제했다. 오영환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민의힘이 문재인 정부 수사를 막기 위해 법안을 발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런 사실과 다른 정치적 비난을 잠재우기 위해 삭제한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라는 제도적 필요에 따라 법안을 추진했다는 설명이다. 이어 “개정안 시행 전에 검찰이 수사하던 사건은 검찰이 마무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검·경 수사권 조정을 시행할 당시에도 검찰이 벌이던 기존 수사는 계속할 수 있게 한 전례도 있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초선 의원은 “(부칙 삭제는) 잘못한 것이다. 민주당이 계속 물러난 것인데, 검찰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라며 “일단 개정안 시행 전에 직권남용으로 고발이 들어오면 앞으로 계속 수사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을 끌면서 전 정권을 흔드는 행태를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정 형사소송법·검찰청법에 명문화된 규정을 담지 않았기 때문에 해석을 두고 논란의 여지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을 해석할 때 입법자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그 의도대로만 해석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문구 자체에 대한 객관적 해석이 우선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공백이 생기면 명확하지 않은 상태가 돼버린다”고 말했다.
‘검찰이 계속 수사할 수 있다’는 취지의 규정을 담았더라도 논란이 완전히 사그라지는 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기존 사건을 계속 수사할 수 있다는 내용의 부칙은 검찰의 수사권을 배제하는 본칙과 배치되기 때문에 논란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런 논란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9월 전에 지난 정권 수사에 최대한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장관은 야권에서 검찰 수사를 ‘정치 보복’이라고 반발하자 “중대한 범죄 수사를 보복이라고 한다면 상식적으로 국민께서 전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직권남용’ 부메랑 되나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행위다. 형법 제123조에 나와 있다. 쉽게 말해 공무원이 정당한 권한을 벗어나는 지시를 내려 다른 공무원이 부적절한 업무를 처리하게끔 했을 때 적용하는 죄목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적폐청산’ 수사도 직권남용이 주요한 무기가 됐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도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했다. 적폐청산 사건 이후 직권남용의 적용 사례가 대폭 늘어났다. ‘사법농단’ 사건도 잇따라 무죄 판결이 나긴 했지만, 검찰은 직권남용으로 걸었다.
직권남용죄는 다른 부패 범죄로 나아가는 마중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한동훈 장관은 지난 5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직권남용죄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지금은 과거처럼 금품 범죄로 바로 드러나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 공직범죄, 그러니까 직권남용이나 허위공문서처럼 외형적으로 투명하게 단서가 드러나는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그 동기가 됐던 금품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 입장에서도 방어권이 굉장히 발전하고 법률적인 기술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공직비리 수사는 단순하게 6대 범죄나 전체 권력비리 범죄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전체 권력비리 수사의 입구이다. 그 입구를 틀어막아 버리면 단지 6분의 1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2분의 1, 4분의 3이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시행령 개정으로 수사권 유지하나 이번 정부에서 출범한 검·경 협의체 논의도 주목된다. 협의체는 검찰의 직접 보완수사 확대, 경찰의 불송치 사건을 대상으로 한 송치 요구 확대 등이 주요 의제이다. 아울러 9월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 법안에 따른 하위 법령 정비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이다. 검사와 경찰의 협력 방안과 절차와 관련한 사항을 담고 있다. 또 검찰의 구체적인 직접 수사의 범위를 명시한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도 손봐야 한다. 두 규정은 모두 대통령령이다.
협의체의 본격 논의 전부터 경찰 내부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협의체 구성 자체가 검찰에 편향됐다는 이유에서다. 협의체는 ‘실무위원 협의회’와 ‘전문가·정책위원 협의회’로 꾸린다. 실무위원들이 협의를 통해 안건을 올리면 전문가·정책위원들이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을 거친다. 10명인 실무위원은 검찰 3명, 법무부 2명, 변호사 2명, 경찰 3명 등으로 구성한다. 검찰과 법무부가 절반을 차지하는 구조다.
의사결정을 하는 전문가·정책위원은 검찰·법무부·경찰에서 각 2명, 대한변호사협회와 학계 전문가 6명 등 총 12명으로 참여한다. 학계에서는 검찰에 가까운 정웅석 서경대 법학과 교수(형사소송법학회장)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자문위원을 지낸 인물 2~3명도 참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검·경 협의체를 법무부가 주관하는 것도 논란거리다. 이미 수사준칙에는 대검, 경찰청, 해양경찰청이 ‘수사기관협의회’를 통해 수사와 관련한 제도 개선 및 정책 제안 등을 협의·조정할 수 있게 규정됐다. 지난해 수사준칙이 시행된 이후 수사기관협의회를 가동한 적은 한차례도 없다.
수사기관협의회를 ‘패싱’하고 법무부 주관으로 별도의 협의체를 꾸린 의도가 법무부 의도대로 결론을 내려는 것 아니냐고 경찰은 의심한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수사·기소 분리 법안 시행 이후에도 검찰의 수사 범위를 최대한 유지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인물난’일까, 의도한 공백일까. 검찰총장 얘기다. 전임 김오수 검찰총장의 사표를 수리한 지난 5월 6일 이후 6월 30일 현재 55일이 지났다. 그러나 검찰총장 인선의 첫 관문인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조차 꾸리지 않았다. 2012년 후보추천위 제도를 도입한 이후 전임 총장의 퇴임부터 후보추천위 구성까지 이번처럼 긴 시간이 걸린 적이 없다.
검찰 안팎에서는 검찰총장 공백이 길어지는 이유를 두고 여러 추측이 난무한다. ‘하려는 사람이 없다’, ‘오는 9월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 법안 시행 전에 수사 성과를 내려 한다’ 등이다. 특히 문재인 정권의 주요 인사들이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대부분 직권남용 혐의와 관련이 있다. 수사·기소 분리 법안이 시행되면 검찰은 직권남용 범죄를 수사할 수 없게 된다.
법무부는 최근 대규모 인사를 단행해 검찰 조직을 재정비했다. 수사를 본격화할 채비를 마쳤다. ‘사정 정국’, ‘사정 바람’ 등의 단어가 시민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누가 맡으려 하겠나” 한동훈 법무부 장관(사법연수원 27기)은 취임 이후 최근까지 세차례 인사를 냈다. 고위 간부인 대검검사급(고검장·검사장) 검사와 중간간부 및 일반 검사 등 모두 716명을 승진·전보했다. 검찰총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소폭 인사를 한 전례는 있지만, 대규모 인사를 단행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인사의 특징은 문재인 정부 시절 정권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던 검사들이 대거 좌천됐다는 점이다. 이성윤 전 서울고검장(23기), 이정수 전 서울중앙지검장(26기), 김관정 전 수원고검장(26기), 심재철 전 남부지검장(27기)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 전 고검장은 지난해 6월 피고인 신분임에도 서울중앙지검장에서 서울고검장으로 승진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 한 장관과 인연이 있는 검사들은 요직을 맡았다. 대부분 지난 정부에서 정권을 상대로 수사를 벌였다가 한직으로 밀려났던 검사들이다. 검찰총장 직무대리인 이원석 대검찰청 차장검사(27기),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29기), 신봉수 대검 반부패강력부장(29기) 등이다. 이 차장검사는 2017년 3월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를 직접 조사했다.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 주요 부서에도 윤 대통령과 가까운 검사들이 들어왔다.
검찰총장 공석 상태에서 단행한 대규모 인사를 두고 절차 위반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에게 인사를 제청하기 전에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검찰의 독립성·중립성을 담보한다는 취지다. 이에 법무부는 인사 보도자료에서 “검찰총장 직무대리와 실질적으로 협의하면서 일선 기관장의 의견도 충실히 반영하는 등 검찰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신임 검찰총장은 ‘식물 총장’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검찰 안팎에서 나온다. 검찰총장의 ‘입’ 역할을 하는 대검 대변인도 인사를 냈다. 대검 부장 등 검찰총장의 참모 역할을 하는 자리도 새롭게 진용을 갖췄다. 검찰이 한 장관의 직할 체제가 됐다는 비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검찰총장이 와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분석이다.
한 장관이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을 때부터 검찰총장이 제 역할을 못 할 것이란 우려는 일찌감치 나왔다. ‘소통령’이라고 불릴 만큼 존재감이 강한 한 장관의 그늘에 가려 검찰총장이 조직 장악력을 발휘하지 못하리란 관측이었다.
양홍석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총장을 할 만한 마땅한 인물이 없을 수도 있다. 또 한 장관의 직할 체제가 인사를 통해 완성되면 관리형 총장을 세우기 위해 미루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짚었다.
전 정권 수사 속도 내나 “검찰에 산적한 업무가 많다는 걸 다 이해할 것 같다. 그런데 몇 달 이상 걸리는 검찰총장 인선 이후로 모든 인사를 미룬다는 건 ‘일을 제대로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빨리 체제를 갖춰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 한 장관이 지난 6월 2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한 장관이 언급한 ‘산적한 업무’ 중에는 문재인 정권의 주요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수사도 포함됐다는 시각이 많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연루 의혹을 받는 ‘경기 성남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이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기획사정 의혹’, 여성가족부의 ‘대선 공약 개발 의혹’ 등도 수사 중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이 눈길을 끈다. 최근 수사가 한창인 산업통상자원부 외에도 외교부, 통일부,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이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현옥 전 청와대 인사수석,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 등 10명이 고발당한 상태다.
최근 정치적 논쟁으로 비화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도 지난 정부 청와대의 주요 인사들이 줄줄이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김종호 전 민정수석, 서주석 전 국가안보실 1차장 겸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장 등이다. 유족 측은 문재인 전 대통령 고발 여부도 검토 중이다.
이처럼 민감한 수사들에 속도를 내기 위해 검찰총장 인선이 늦어지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검찰총장이 지명되면 정식 임명 전까지 주요 수사를 본격적으로 벌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검사 출신인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총장을 지명하면 사퇴하는 검사들도 생길 것이고, 총장 나름의 운용 방침이 나오기 전까지는 특수수사 등 일선의 수사가 활발히 이뤄지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9월부터 공직자범죄 수사 못 해 주목할 점은 지난 정권의 주요 인사들이 연루된 사건의 대부분이 직권남용죄와 관련이 있다는 데 있다. 직권남용은 검찰이 현재 직접 수사할 수 있는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가운데 공직자범죄에 해당한다.
지난 5월 공포된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 법안(개정 형사소송법·검찰청법)이 시행에 들어가면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개정 검찰청법은 9월부터 시행되는데,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는 부패·경제 등 2가지로 한정된다. 직권남용이 포함된 공직자범죄는 검찰의 직접 수사가 불가능해진다.
9월 이전에 검찰이 수사를 개시해 진행하고 있는 공직자범죄는 어떻게 될까. 개정 형사소송법·검찰청법의 통과 과정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민주당은 지난 4월 15일 소속 의원 전원이 참여해 두 법안을 발의했다. 최초 법안 내용은 검찰이 6대 범죄 중 하나도 수사할 수 없도록 했다. 이 때문에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라고 불렸다.
특히 형사소송법·검찰청법 부칙에는 검찰이 개정안 시행 이전에 수사하던 사건도 모두 경찰에 이관토록 규정했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수사를 무마하기 위한 ‘방탄법’이라고 비판했다.
이후 박병석 당시 국회의장이 중재안을 제시하면서 민주당은 대안 법률을 만들었다. 이때 6대 범죄 중 부패·경제범죄의 수사권은 존치토록 했다. 아울러 검찰이 기존에 수사하던 사건은 경찰로 넘겨야 한다는 내용의 부칙을 삭제했다. 오영환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민의힘이 문재인 정부 수사를 막기 위해 법안을 발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런 사실과 다른 정치적 비난을 잠재우기 위해 삭제한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라는 제도적 필요에 따라 법안을 추진했다는 설명이다. 이어 “개정안 시행 전에 검찰이 수사하던 사건은 검찰이 마무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검·경 수사권 조정을 시행할 당시에도 검찰이 벌이던 기존 수사는 계속할 수 있게 한 전례도 있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초선 의원은 “(부칙 삭제는) 잘못한 것이다. 민주당이 계속 물러난 것인데, 검찰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라며 “일단 개정안 시행 전에 직권남용으로 고발이 들어오면 앞으로 계속 수사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을 끌면서 전 정권을 흔드는 행태를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정 형사소송법·검찰청법에 명문화된 규정을 담지 않았기 때문에 해석을 두고 논란의 여지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을 해석할 때 입법자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그 의도대로만 해석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문구 자체에 대한 객관적 해석이 우선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공백이 생기면 명확하지 않은 상태가 돼버린다”고 말했다.
‘검찰이 계속 수사할 수 있다’는 취지의 규정을 담았더라도 논란이 완전히 사그라지는 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기존 사건을 계속 수사할 수 있다는 내용의 부칙은 검찰의 수사권을 배제하는 본칙과 배치되기 때문에 논란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런 논란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9월 전에 지난 정권 수사에 최대한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장관은 야권에서 검찰 수사를 ‘정치 보복’이라고 반발하자 “중대한 범죄 수사를 보복이라고 한다면 상식적으로 국민께서 전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직권남용’ 부메랑 되나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행위다. 형법 제123조에 나와 있다. 쉽게 말해 공무원이 정당한 권한을 벗어나는 지시를 내려 다른 공무원이 부적절한 업무를 처리하게끔 했을 때 적용하는 죄목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적폐청산’ 수사도 직권남용이 주요한 무기가 됐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도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했다. 적폐청산 사건 이후 직권남용의 적용 사례가 대폭 늘어났다. ‘사법농단’ 사건도 잇따라 무죄 판결이 나긴 했지만, 검찰은 직권남용으로 걸었다.
직권남용죄는 다른 부패 범죄로 나아가는 마중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한동훈 장관은 지난 5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직권남용죄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지금은 과거처럼 금품 범죄로 바로 드러나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 공직범죄, 그러니까 직권남용이나 허위공문서처럼 외형적으로 투명하게 단서가 드러나는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그 동기가 됐던 금품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 입장에서도 방어권이 굉장히 발전하고 법률적인 기술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공직비리 수사는 단순하게 6대 범죄나 전체 권력비리 범죄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전체 권력비리 수사의 입구이다. 그 입구를 틀어막아 버리면 단지 6분의 1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2분의 1, 4분의 3이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시행령 개정으로 수사권 유지하나 이번 정부에서 출범한 검·경 협의체 논의도 주목된다. 협의체는 검찰의 직접 보완수사 확대, 경찰의 불송치 사건을 대상으로 한 송치 요구 확대 등이 주요 의제이다. 아울러 9월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 법안에 따른 하위 법령 정비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이다. 검사와 경찰의 협력 방안과 절차와 관련한 사항을 담고 있다. 또 검찰의 구체적인 직접 수사의 범위를 명시한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도 손봐야 한다. 두 규정은 모두 대통령령이다.
협의체의 본격 논의 전부터 경찰 내부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협의체 구성 자체가 검찰에 편향됐다는 이유에서다. 협의체는 ‘실무위원 협의회’와 ‘전문가·정책위원 협의회’로 꾸린다. 실무위원들이 협의를 통해 안건을 올리면 전문가·정책위원들이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을 거친다. 10명인 실무위원은 검찰 3명, 법무부 2명, 변호사 2명, 경찰 3명 등으로 구성한다. 검찰과 법무부가 절반을 차지하는 구조다.
의사결정을 하는 전문가·정책위원은 검찰·법무부·경찰에서 각 2명, 대한변호사협회와 학계 전문가 6명 등 총 12명으로 참여한다. 학계에서는 검찰에 가까운 정웅석 서경대 법학과 교수(형사소송법학회장)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자문위원을 지낸 인물 2~3명도 참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검·경 협의체를 법무부가 주관하는 것도 논란거리다. 이미 수사준칙에는 대검, 경찰청, 해양경찰청이 ‘수사기관협의회’를 통해 수사와 관련한 제도 개선 및 정책 제안 등을 협의·조정할 수 있게 규정됐다. 지난해 수사준칙이 시행된 이후 수사기관협의회를 가동한 적은 한차례도 없다.
수사기관협의회를 ‘패싱’하고 법무부 주관으로 별도의 협의체를 꾸린 의도가 법무부 의도대로 결론을 내려는 것 아니냐고 경찰은 의심한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수사·기소 분리 법안 시행 이후에도 검찰의 수사 범위를 최대한 유지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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