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예술고 탈락→24살에 독일 '종신 수석' 이승민의 반전

임석규 2022. 7. 4.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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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크스부르크 필하모닉 타악기 수석 이승민
중2 때 본격 시작한 타악기 공부
예고 못 갔지만 빈 음대 최연소 입학
오케스트라 종신 관문 통과까지
"독일은 시험 순간 실력보다 가능성 평가
한국 학생 지도하게 되면 적용할 것"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타악기 종신수석’ 이승민. 이승민 제공

초등학교 5학년이 돼서야 뒤늦게 악기와 조우한다. 이후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하지만, 예술고등학교(예고) 입시에 떨어진다. 신동과 천재가 즐비한 클래식 음악 세계에서 예고 입시에 실패하면 낙오자 취급받기 십상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예고가 거절한 이 학생을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두달 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타악기 종신수석’으로 최종 확정된 이승민(24)씨 얘기다. 아우크스부르크에 거주 중인 그를 지난달 29일 온라인 화상으로 만났다.

“독일 공립 오케스트라의 단원 선출 절차는 상당히 까다로워요. 특별한 일 없으면 평생 자리를 보장해주는 종신수석 자리는 더 복잡하고요.”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타악기 종신수석’ 이승민. 이승민 제공

첫 관문은 악기 실력을 테스트하는 오디션이다. 실기를 통과하면 1년의 수습 기간을 거쳐야 한다. 다른 단원들과 섞이고 화합할 수 있는지, 적응력은 있는지, 사운드 측면에서 오케스트라와 어긋나지 않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하는 기간이다.

다음은 전체 단원들의 찬반 투표. 투표에 앞서 당사자는 불참한 가운데 찬반 토론을 펼친다. 이때 지휘자와 다른 타악기 주자들의 의견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어 진행되는 투표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야 종신수석으로 확정된다.

지난 4월 이 모든 절차를 통과한 이승민은 타악기 주자 4명 가운데서도 가장 젊다. 독일엔 130여개 전문 오케스트라가 있다. 단원 규모에 따라 에이(A)에서 디(D) 등급으로 분류하는데, 아우크스부르크 필하모닉은 2023년 에이 등급 승급을 앞두고 있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타악기 종신수석’ 이승민. 이승민 제공

“수습 기간이 시작됐는데 지휘자가 갑자기 인사도 잘 받지 않고 쌀쌀하게 대해 속이 상했어요. 리허설 중간에 다른 악기 연주자들에게 연주를 멈추게 하고 저 혼자만 연주하도록 할 땐 무척 떨리고 긴장됐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지휘자의 의도된 테스트였다. “3개월쯤 지났더니 지휘자가 저를 불러 ‘그동안 잘했다’며 격려를 해줬어요.” 그제야 이 모든 과정이 종신수석이 되기 위한 검증 절차였다는 걸 알게 됐다.

그가 지휘자의 신임을 얻게 된 결정적인 연주가 있었다. ‘딴~따다다, 단~, 딴~따다다, 단~’ 도입부에 스네어드럼의 리듬이 끝없이 반복되는 작곡가 라벨의 관현악곡 <볼레로>였다. 처음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연주하다 점점 소리가 커지는데, 단순한 듯하지만 연주하기 어려운 곡으로 꼽힌다.

그는 자신의 주특기인 스네어드럼의 장기를 마음껏 펼쳤고, 지휘자는 흡족해했다. 그날 이후 자신을 대하는 지휘자의 태도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었다.

종신수석 찬반 투표에서 반대표는 고작 4표. 나머지 70표는 모두 찬성표였다.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된 것이다. 한때 자신을 냉랭하게 대했던 그 지휘자와 동료 타악기 주자들이 찬반 토론에선 오히려 자신을 후하게 평가해줬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마음가짐부터 달라졌어요. 자신감이 생겼고요. 마음이 안정되면서 연주도 이전보다 좋아진 것 같습니다.”

그가 여기까지 오는 길엔 사연과 곡절이 많았다. 초등학교 시절은 좌충우돌, 천방지축이었다. 코 킁킁거리고 눈 깜박거리며, 자꾸 코를 만지고 고개를 돌리는 ‘틱’까지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볼펜으로 책상 두들기며 리듬을 맞추는 ‘펜 비트’에 손목이 시퍼렇게 멍들 정도로 빠져드는 아이였다.

바이올린 배우려고 다닌 학원에서 드럼에 더 흥미를 느꼈다. 학교 밴드부에 들어가 신나게 드럼을 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틱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타악기 공부를 시작했다. 유명하다는 선생님에게 레슨도 받았지만 여러 측면에서 뜻이 맞지 않았다. 주변에서 말렸지만 예고 입시 2개월을 앞두고 다른 선생님을 찾았다.

예고 실기시험장에 들어갔지만 제대로 기량을 펼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스네어드럼은 어느 정도 연주했지만, 마림바는 1분 정도, 팀파니는 불과 20초쯤 연주했는데 중도에 멈추게 했다. 결과는 낙방이었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타악기 종신수석’ 이승민. 이승민 제공

어머니가 동네 상가에서 피아노 학원을 운영했다. 방학을 맞아 그 학원에 연습하러 온 오스트리아 유학생이 “빈 국립음대의 요제프 굼핑거 타악기 교수가 평이 좋으니 연락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밑져야 본전이란 심정으로 메일을 보내 테스트라도 한번 받게 해달라고 했어요.” 놀랍게도 빈 국립음대 방문 일시를 담은 답장이 날아왔다.

굼핑거 교수는 “이건 이렇게 한번 해볼래?”라면서 레슨이라도 하듯 1시간 넘게 여러 연주를 해보게 했다. “재능이 있으니 와서 공부해보면 좋겠다”는 굼핑거 교수의 조언에 따라 2014년 빈 국립음대 예비과 시험을 치렀다. 40분에 걸친 실기시험에서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예비학교를 거쳐 이듬해엔 이 대학 학사과정에 최연소로 입학했다. 16살이었다. 빈 음대를 졸업하고 2019년엔 스위스 취리히 국립예술대에 편입했고, 현재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어머니 유미경씨는 아들의 예고 낙방부터 빈 국립대 입학에 이르는 과정을 담은 책 <궤도 밖에도 길은 있다>를 2017년에 펴냈다.

“(독일은) 시험 당일, 그 순간의 실력보다 가능성을 보고 평가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인지 이런저런 질문도 많이 받았고요.”

이승민은 독일과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다른 것 같다고 했다. “학생들이 학교 이름에 앞서 선생님이 누구인지를 보고 선택을 해요. 미리 그 선생님을 찾아가 수업도 들어보고 그러더라고요.” 그는 “국내에서 이렇게 하면 무슨 편법이라도 동원하려는 것처럼 이상한 눈으로 볼 것”이라며 “국내에선 아직 이런 부분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형성돼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그의 꿈은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한국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게 되면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직접 경험한 시스템을 적용해보고 싶어요. 악기를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는 발전할 가능성과 신뢰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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