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뒤 파리, 3년 뒤 오사카 도심에서 하늘길 모빌리티가 뜬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는 이제껏 공상과학 영화 속에나 나오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2~3년간 도심 상공을 날아 이동하는 비행체 개발이 큰 성과를 거두면서 하늘을 나는 차량이 영화가 아닌 현실 속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특히 프랑스가 2024년 파리 올림픽, 일본이 2025년 오사카•간사이 만국박람회를 하늘을 나는 차량의 시험 무대로 계획하고 있어 개발에 박차가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코노미조선’은 하늘을 나는 차량의 현주소와 미래에 대해 집중 조명해 봤다. [편집자 주]
지난 2월 슬로바키아의 스타트업 클라인비전(Klein Vision)이 만든 ‘에어카(AirCar)’가 세계 최초로 정부 공인 비행 인증을 받았다. 에어카는 지상에서는 날개를 접고 자동차처럼 달리다가 하늘을 날고 싶을 때는 날개를 펴고 비행할 수 있다. 주행 모드에서 비행 모드로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은 3분이 채 안 된다. 에어카가 받은 슬로바키아 정부의 인증은 유럽항공안전청(EASA) 규정을 충족하는 것이어서 에어카는 슬로바키아뿐 아니라 유럽연합(EU) 내 모든 국가에서 비행할 수 있다. 클라인비전 측은 이미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승인도 신청해 둔 상태다. 이제껏 상상 속에만 존재했던 하늘을 나는 자동차의 시대가 한 발짝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국제경영컨설팅 회사 롤랜드버거(Roland Berger)는 2020년 기준 제로에 불과한 AAM(Advanced Air Mobility·선진 항공 모빌리티) 서비스 시장 매출이 2050년에는 900억달러(약 11조6990억원)로 커질 것으로 바라봤다. AAM은 주로 승객을 태우고 도심을 날아서 이동하는 운송 수단을 일컫는 UAM(Urban Air Mobility·도심 항공 모빌리티)을 비롯해 소방·재난 분야에 쓰이는 드론 등을 모두 포괄한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도심을 날아서 이동하는 수단을 가리킬 때 ‘플라잉카’ ‘에어택시’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클라인비전의 에어카 등 일부 경우를 제외하면 현재까지 대부분은 외형이 자동차보다 헬리콥터와 유사하다. 때문에 업계에선 보다 정확한 용어로 UAM을 채택했는데, 이 역시 운송 목적을 택시 용도로 제한하는 한계가 있어, 2020년 3월 미 우주항공국(NASA)은 공식 명칭을 AAM으로 변경했다.
이렇듯 AAM이 차세대 새로운 먹거리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각국 기업들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AAM 시장에 뛰어든 개발 주체는 ① 보잉·에어버스 등 항공기 제작사, ② 아우디·벤츠·지리 등 자동차 회사, ③ 스타트업 등 크게 세 분류다. 대한항공 같은 항공사와 SK텔레콤 등 통신사도 경쟁 대열에 뛰어들면서 합종연횡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보잉과 포르셰처럼 항공·자동차 업계가 제휴를 맺거나, 도요타처럼 AAM 스타트업에 투자하거나, 중국 지리(吉利)자동차처럼 AAM 사업을 위해 기존의 플라잉카 스타트업과 드론 스타트업을 인수·합병해 새로운 회사(Aerofugia Technology·에어로푸지아 테크놀로지)를 세우는 다양한 유형의 협업이 나타나고 있다.
개발 방식만큼이나 차량 형태도 다양하다.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도로를 달리다 날개를 펴서 하늘로 날아가는 차량도 일부 존재하지만, 대개는 헬리콥터 같은 수직 이착륙 비행체 형태다. 파일럿이 운전하는 모델, 완전 자율주행 형식을 따르는 모델,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모델, 100% 전력을 이용하는 모델 등 운행 방식과 연료 사용 방식도 제각각이다.
이처럼 여러 업체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AAM 시장에서 경쟁하는 최근 1~2년 사이 주목할 만한 성과가 잇따르고 있다. 독일 PAV(개인 항공기) 업체 볼로콥터(Volocopter)는 올해 3월 말 프랑스 파리 인근 퐁투아즈비행장에서 2인승 차량 ‘볼로시티(VoloCity)’에 사람을 태우고 50~70m 상공을 나는 시험 비행을 진행했다.
작년 6월 무인 원격 조종으로 30m 상공을 약 1㎞ 정도 나는 비행을 성공한 후 약 9개월 만이다. 올해 5월엔 미국 PAV 업체 조비에비에이션(Joby Aviation)이 FAA에서 에어택시의 상업적 운영을 허가하는 항공운송업자 인증을 받았다. 미국 내 에어택시 서비스 상용화를 위해선 모두 세 개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조비에비에이션이 그 첫 관문을 먼저 통과한 것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뉴욕증시에 상장했다. 이외에도 독일 릴리움(Lilium), 네덜란드 PAL-V 등 다양한 스타트업도 AAM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을 가속화하는 중이다. 특히 프랑스는 2024년 파리 올림픽, 일본은 2025년 오사카·간사이 만국박람회를 AAM 시험 무대로 계획하고 있어 향후 2~3년 내로 AAM 분야에서 급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AAM이 본격화하면 교통, 환경, 라이프 스타일 등에서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첫째, 이동 시간 단축이다. 국토교통부가 2020년 발표한 ‘한국형 도심항공교통 로드맵’에 따르면, UAM을 이용하면 승용차로 한 시간 걸리는 거리를 20분 안에 이동할 수 있다. 둘째, 교통 혼잡 비용 감소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연간 국내 교통 혼잡 비용 38조5000억원(2020년 기준)의 82%가 대도시권에서 발생하는데,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은 AAM이 현실화하면 서울에서만 연간 429억원, 국내 전체로는 2735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셋째, 요즘 개발 중인 AAM은 대체로 전기를 동력으로 이용해 헬리콥터처럼 수직 이착륙하는데, 이는 배기가스를 절감시켜 환경 오염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개인 비행체 개발 및 운용 스타트업 민트에어의 설립자 최유진 대표는 “1차 항공 혁명이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개발, 2차 혁명이 (마하 속도로 날아가는) 제트 동력 비행기 발명이라면, 3차 혁명은 AAM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도 지난 2020년 정부가 “2025년까지 UAM(발표 당시 명칭)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네 개 그룹 컨소시엄이 경쟁하는 등 국내 기업들도 차세대 항공 운송 경쟁에 뛰어들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현대자동차가 기체(機體)를 개발하고, 제조·운용하는 한편, 현대건설은 이착륙장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SK텔레콤은 올해 2월 조비에이베이에션과 사업 협력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카카오모빌리티도 작년 11월 볼로콥터와 제휴해 볼로콥터가 기체 개발, 카카오모빌리티는 교통 데이터를 제공하기로 했다.
하지만 AAM이 상용화하려면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기술적으로는 우선 배터리 개발을 꼽을 수 있다. 기체 중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배터리가 작고 가벼워야 날기 쉬운데, 무거운 기체를 날게 하려면 배터리는 커질 수밖에 없다. AAM 시대를 앞당기려면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다.
AAM을 위한 인프라 마련도 필요하다. 클라인비전이 만든 에어카의 경우, 이륙하려면 활주로 역할을 할 300m 정도의 도로가 필요하다. 수직 이착륙 방식의 AAM은 그만큼 넓은 도로는 필요 없지만, 기체가 뜨고 내리려면 평지나 고층 건물 옥상 등에 헬리콥터 이착륙지(helipad)는 마련돼 있어야 한다. ‘이코노미조선’은 이륙 준비하는 AAM의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 봤다. 앤드루 모리스(Andrew Morris) 영국 러프버러대 산업디자인 부문 교수는 “AAM이 상용화하기 전에 엄격하고 철저한 안전 규정을 먼저 마련해야 향후 일어날지 모르는 치명적인 사고에 대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plus point
하늘을 나는 차, 100년 전에도 존재했다
하늘을 나는 차량 개발이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지만,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시도는 100년 전에도 있었다.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의 창립자로, ‘자동차의 왕’이라 불리는 헨리 포드도 한때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만들려고 시도했다. 포드는 1926년 자신의 63번째 생일날 ‘스카이 플리버(Sky Flivver)’라는 하늘을 나는 1인승 차량을 대중에게 선보였다. ‘플리버’라는 이름은 20세기 초 싸구려 차량을 일컫는 은어에서 따 왔다. 외관으로만 보면 플리버는 자동차라기보다는 경비행기에 가까웠는데, 도로를 주행하다 하늘을 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늘을 나는 차량을 만들겠다는 포드의 야심 찬 계획은 2년 뒤 그가 가장 아끼는 직원이자, 플리버 개발의 주요 멤버였던 해리 브룩스가 플리버를 타다 추락사하면서 좌절됐다. 포드는 사업을 접으면서도 “비행기와 자동차가 합쳐진 발명품은 반드시 나올 것이다. 지금은 내 말을 비웃겠지만, 언젠가는 현실이 될 것이다”라고 자신했다.
현재의 모습에 가까운 모델은 1949년 몰턴 테일러가 만든 ‘테일러 에어로카(Taylor Aerocar)’다. 항공기 엔진 전문 업체 ‘라이커밍(Lycoming)’의 엔진을 장착한 테일러 에어로카는 외관상은 자동차에 가깝다. 커다란 스티어링 휠로 방향을 틀고, 수동 변속기는 비행할 때 프로펠러를 구동하는 레버로 사용됐다. 비록 사람이 직접 접었다 폈다 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지만, 날개를 접고 펼 수 있게 설계됐고 도로에서는 시속 96㎞, 하늘에서는 시속 176㎞로 날 수 있었다. 하지만 쇄도하는 주문에도 불구하고 테일러 에어로카는 생산 시설이 부족해 6대만 생산하는 데 그쳤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테일러 에어로카는 4대로, 이 중 2대는 스미소니언 등 박물관에 전시돼 있고, 2대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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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Part 1. 하늘길로 출근하는 시대 열린다
①현실로 다가온 ‘하늘을 나는 자동차’의 시대
②[Infographic] 미래 항공 시장 이끌 AAM
Part 2. 플라잉카, 어디까지 왔나
③[Interview] 발키즈 사리한 에어버스 UAM전략 이행·파트너십 부문 총책임자
④[Interview] 후쿠자와 도모히로 스카이 드라이브 최고경영자(CEO)
⑤[Interview] 전기비행기 배터리 개발 스타트업 모비우스에너지 최유진 대표
⑥UAM 시장 공략 선두 완성차 업체 현대차·지리차
Part 3. 전문가 제언
⑦[Interview] 앤드루 모리스 러프버러대 교수
⑧[Interview] 정기훈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스마트항공모빌리티 선행연구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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