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정훈 서울대 교수 "無당·알코올·글루텐.. 지금은 더하기보다 빼기가 중요한 시대"

김은영 기자 2022. 7. 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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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취향 소비 증가.. 글루텐 프리·저당 음료·무알코올 맥주 시장 성장
코로나로 뜬 밀키트, 엔데믹 시대에 위기..냉동 혁신해야
엔데믹에도 '와인 홈술'은 살아남을 것
구이 요리 선호하는 한국.. 대체육보다 배양육 승산 있어

“이전엔 뭘 더 첨가해 맛을 낼까가 중요했다면, 이젠 무엇을 더 뺄 것인가가 중요한 시대입니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건강과 다이어트, 개인의 취향에 대한 소비가 증가함에 따라 식품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다며, 식품업체들이 새로운 시장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의 전통 식품시장과 룰이 다른 만큼 빨리 시장을 선점해 승기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급성장한 밀키트(간편 조리 세트)와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 시장의 변화도 예상했다.

밀키트는 엔데믹(풍토병화)에 접어들면서 수요가 감소함에 따라 냉동 혁신과 기업간거래(B2B) 사업 확장으로 생존을 고민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홈술 시장은 맥주와 소주가 외식으로 빠져나간 자리에 와인이 ‘취향 소비’의 중심으로 더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문 교수는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에서 학·석사 학위를 받고 뉴욕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 카이스트에서 경영학을 가르쳤고 현재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며 푸드비즈니스랩을 이끌고 있다. 푸드비즈니스랩은 식품 구매 데이터를 분석하며 식품 업계가 발전하는 방안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조선비즈는 지난 2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문 교수를 만나 엔데믹 이후 식품시장 트렌드의 변화, 그에 대한 기업들의 대응책을 듣는 자리를 가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홍다영 기자

코로나19 영향으로 식품업계 트렌드가 달라졌는데.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으로 집밥 수요가 급증하면서 밀키트 시장이 급성장했다. 기존의 가정간편식(HMR)은 건강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단점을 보완해 건강을 챙기면서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밀키트를 찾는 소비자들이 부쩍 늘었다.

국내 밀키트 시장은 2017년쯤 대기업이 뛰어들고, 2020년 코로나가 확산하면서 급성장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엔데믹 기조에 접어들며, 가정에서 요리하는 빈도가 줄며 위기를 맞게 됐다.

밀키트는 식자재의 신선도 유지를 위해 유통기한이 2~3일에 불과한데, 외식이나 회식으로 못 먹고 버리는 일이 많아지면서 구매하지 않는 소비자가 늘어난 것이다.”

밀키트 업체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냉동 혁신으로 유통기한을 늘려야 한다. 업계에선 2020년 여름부터 냉동 밀키트가 등장했다. 당시 전체 시장에서 냉동 매출 비중은 10%가 채 안 됐는데, 지금은 비중이 40%까지 올라간 것으로 보고 있다. 냉동에 투자하지 않는 곳은 경쟁력이 없다는 걸 방증하는 대목이다.

냉동 혁신에서 중요한 것은 재료의 식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밀키트에 들어있는 깻잎·상추 등 채소를 냉동했다가 해동하면 물이 생기고 흐물흐물해진다.

신선한 엽채류를 얼렸다가 해동할 때 품질을 유지하는 기술을 가진 기업이 세계적으로 많지 않은데, 이 기술에 투자해 재료의 식감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또 냉동고 크기를 고려해 포장을 압축하는 기술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엔데믹 시대에 식품·외식 소비는 어떻게 재편될 것으로 보나.

“소비와 시장,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소비 측면에선 주류시장의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가 끝나면 맥주와 소주는 외식으로 넘어가겠지만, 와인은 홈술로 남아 취향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본다.

농촌진흥청 소비자 패널 데이터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엔 와인 한 병의 구매 금액이 1만원 내외였으나, 코로나가 지나며 3만원 이상 구매가 3분의 1이상을 차지했다. 고가·취향 소비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와 함께 와인과 페어링(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 조합)하는 치즈와 샤퀴테리(햄·소시지 등 가공육)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해외에서 샤퀴테리를 배워온 셰프들이 코로나 기간 레스토랑 운영이 어려워지자 샤퀴테리 공방을 만들어 온라인으로 판매해 새로운 수입원을 찾은 경우도 볼 수 있다.”

시장 측면에서의 변화는?

“시장 측면에선 인건비 문제가 관건이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이 9160원인데, 식당에선 시간당 1만5000원을 아르바이트생이 안 온다고 한다. 홀 서빙보다 주방은 더 심각하다. 양파 등 재료를 손질해야 하는데 사람이 없다.

이 부분을 밀키트 업체가 파고들 수 있다. 밀키트 B2C(기업과 소비자 거래)도 있지만 B2B로 재료 준비(Prep)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예컨대 밀키트 공장에서 양파를 까고 소스까지 배송해주는 식이다. 동네 작은 식당은 고용이 쉽지 않으니 재료를 주문하는 게 편하다.

식당에 튀김용 3cm 슬라이스 감자가 필요하다고 가정하면, 대기업 식재료 업체에 튀김용 감자를 주문해서 공급받을 수는 있어도 3cm 슬라이스 같은 세세한 요구를 하기는 힘들다. 그걸 밀키트 업체가 서비스하면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다.

결국엔 이런 변화에서 (소비자와 시장이) 필요한 부분을 찾아서 파고드는 기업이 코로나 이후 살아남을 것이다.”

푸드테크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는데.

“푸드테크 시장은 대체육보다 배양육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국내에선 채식주의자 비중이 서양만큼 많지 않은 데다, 덩어리 고기를 구이 형태로 즐기는 요리법이 발달해 식물성 대체육으로는 고기 맛을 내는 데 한계가 있다.

대체육은 콩과 같은 식물성 재료로 육류와 흡사한 맛과 모양을 구현한 것이고, 배양육은 소나 돼지, 닭 등 가축의 줄기세포를 배양해 실험실에서 살코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배양육이 육류의 질감과 맛을 더 재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상기후와 우크라이나 전쟁, 환율 상승 등으로 사료 가격이 폭등하면서 축산물 가격이 치솟고 있어 고기를 대체하는 육류의 대중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서양에선 햄버거 패티를 중심으로 대체육 시장이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만두나 국물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를 시작으로 배양육 시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아직 국내 채식 시장은 뷰티, 다이어트 트렌드와 연결된 인플루언서(인터넷 유명인) 중심의 시장이지만, 이런 식으로 소비하다 보면 점차 가치가 확산하리라 생각한다.”

향후 식품 시장을 이끌 트렌드를 꼽는다면.

“예전엔 뭘 더해서 맛있게 만들지가 키워드였다면, 지금은 무엇을 더 뺄 것인가가 중요한 시대다. 취향과 건강(뷰티)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글루텐(불용성 단백질) 프리, 저당 음료, 무알코올 맥주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이들 시장은 기존 시장과는 룰이 다르다. 예컨대 기존 콜라 시장에선 코카콜라가 1등이지만, 제로 콜라 시장에선 펩시가 1등이다. 식품업체들은 새로운 시장에서 기회를 찾을 필요가 있다.”

K푸드의 성장 가능성은?

“흔히 한식의 세계화하면 현지에 한식 레스토랑을 여는 것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식을 세계적으로 성장시키려면 외식 외에도 식재료와 요리법을 지원하는 B2B 시장의 성장과 현지 주요 유통업체 입점 등 3박자가 함께 가야 한다. 흔히 생각하는 파인다이닝(격식을 갖춘 식사) 한식만으로는 승산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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