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수술 병원 간 기록이 구글에? 신상정보 다 꿰는 빅테크 논란
판례 변경 따라 수사기관 처벌에 악용 가능
구글이 1일(현지시간) "인공 임신중절 수술(낙태)을 위해 의료기관을 방문한 경우 그 내용을 이용자의 위치 기록에서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임신과 관련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한 '로 대(對) 웨이드' 판례를, 미국 연방대법원이 새로운 판결로 뒤집은 지 일주일 만이다.
그러나 구글이 이용자의 처벌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방문 정보를 지우겠다고는 했지만, 대형 기술 기업(빅테크)들이 이런 민감한 정보까지 낱낱이 수집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 알려지며 또 다른 사생활 침해 논란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젠 피츠패트릭 구글 수석 부사장은 블로그 공지를 통해 위치 정보 기록 삭제 결정을 전하면서 △낙태 관련 기관뿐 아니라 △상담 센터 △가정폭력 보호소 △불임센터 △중독 치료시설 △체중감량 클리닉 등 개인이 민감해 할 수 있는 장소의 방문 사실까지 삭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구글, 넌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니?
구글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여론의 압박 때문이다. 구글은 자사 지도와 위치정보서비스(GPS)를 이용해 지도 타임라인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소지하고 이동하는 경우, 이용자가 갔던 장소와 시간을 자세히 기록하고 이동 경로까지 보여주는 서비스다. 과거 내가 이동했던 기록을 한눈에 보여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문제는 이번 대법원 판결 이후 주법으로 낙태가 불법화되는 경우 이런 종류의 기록이 수사기관의 처벌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온라인에서 관련 정보 삭제 여론이 일었고,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의 노동조합은 "수사기관이 요구할 수 있을 모든 종류의 개인 정보를 삭제하라"고 회사 측에 요구했다.
낙태 관련 기관 방문 기록은 삭제한다고 밝혔지만, 구글은 낙태 관련 내용을 검색사이트에서 찾았던 기록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선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또 수사기관의 위치나 검색 등 관련 정보 요청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용자의 검색 기록은 방문 기록 못지않게 수사기관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고, 실제 수사나 기소 단계에서 피의자나 피고인의 범죄 의도를 보여주는 증거로 많이 활용된다. 올해 상반기 구글 내 검색량 추이를 보면 '내가 코로나에 걸렸나'를 검색한 건수보다 '내가 임신했나'를 찾은 건수가 더 많았고,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사후피임약(플랜B)을 검색한 건수는 '코로나'와 '임신'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
개인정보로 장사하는 '감시 자본주의'
'로 대 웨이드' 판례 이후 불거진 구글의 위치정보 논란은 빅테크들이 평소 얼마나 광범위하게 이용자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는지를 새삼 일깨워 준 계기가 됐다. 구글은 신속하고 정확한 검색 서비스와 동영상 서비스 등을 무료로 제공하면서, 이용자의 선호 관련 정보를 차곡차곡 모아 개별 이용자에게 걸맞은 맞춤형 광고를 팔았다. 페이스북은 이용자가 누른 '좋아요' 기록으로 장사를 했고, 아마존은 이용자의 구매 내역을 분석해 개개인의 특성을 속속들이 꿰고 있다. 애플 역시 아이폰 위치 추적 기능과 애플리케이션(앱) 설치 기록을 통해 개개인의 신상 정보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렇게 파악한 정보를 수익 창출에 이용하는 행태를 '감시 자본주의'라고 명명한 쇼샤나 주보프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모든 기기는 우리의 잠재적인 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수익성 높은 개인정보 수집 사업에서 기업이 손을 뗄 가능성은 거의 없는 만큼, 개개인이 '추적당하는 것'을 최소화해 스스로 인권을 지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위치 공유 기능은 가능한 한 꺼둘 것 △휴대폰 잠금엔 얼굴, 지문 등 생체인식보다는 복잡한 비밀번호를 이용할 것 △건강 상태 체크 서비스를 이용할 땐 기록 범위와 저장 기간 등을 따질 것 △메시지 내용을 고도로 암호화해 저장하는 앱을 이용할 것 등을 제안했다.
실리콘밸리= 이서희 특파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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